26일 일본 소니가 삼성전자가 아닌 일본 샤프와 차세대 LCD 합작(合作)회사를 설립하기로 함에 따라 삼성전자에 비상이 걸렸다. 소니가 지난 4년간 LCD 공장을 함께 운영해온 삼성전자는 제쳐 놓은 채 샤프와의 차세대 LCD 공장 합작 계획만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소니가 차세대 시장에서는 더 이상 삼성전자와 사업을 같이 하지 않겠다는 뜻을 공표한 셈이다. 이로 인해 삼성전자는 유·무형의 커다란 손실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세계 전자업계 판도 역시 국경을 넘나드는 협력관계에서 '국내 기업 대 일본 기업' 식의 치열한 맞대결 구도로 바뀌게 됐다.
◆삼성전자 유·무형 막대한 피해=삼성전자는 현실적으로 합작 공장(S-LCD)의 차세대(10세대) 투자비용을 고스란히 다 부담해야 한다. 10세대는 조만간 다가올 60인치대 LCD시대를 열어줄 공장으로 건설비용만 약 5조원으로 추산된다. 그동안 신규 LCD 공장 건설 때마다 삼성전자와 소니가 절반씩 비용을 분담해온 점을 감안할 때 삼성전자의 막대한 추가 부담(2조5000억원)이 불가피한 셈이다. 소니는 지난 2004년과 2006년 공장 신설 때마다 약 1조~1조3000억원씩을 투자하며 삼성전자의 부담을 줄여줬다.
게다가 10세대 라인 가동시 발생되는 연매출(4조원) 가운데 절반에 해당하는 소니로의 수출분(2조원)도 사라진다. 소니가 차세대 제품에 대해서는 샤프와의 합작 공장에서 받아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소니는 지난 4년간 매년 약 2조~3조원어치의 물건을 사갔다.
브랜드 이미지 손상도 불가피하게 됐다. 삼성전자는 합작 결정시점인 2003년 당시 세계 디지털 TV시장 1위를 달리던 소니에 LCD를 공급함으로써 '부품 기술력이 뛰어난 업체'라는 이미지를 다졌고, 이를 통해 세계 LCD TV시장 1위로까지 도약했다. 이젠 비록 LCD와 LCD TV시장서 1위에 올라 있긴 하지만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치열한 경쟁 상황 속에서 소니와의 협력 종결이 삼성전자에 좋은 이미지를 남길 리 없기 때문이다. 합작기업인 S-LCD는 삼성전자 이재용 전무도 등기이사로 참여하고 있는 회사다.
◆일본 vs. 한국 전선(戰線) 형성=소니가 이런 결론을 내린 이유는 복합적으로 분석된다. 이와 관련, 소니가 2003년 합작 설립 이후 일본 재계에서 배척되는 분위기가 형성됐던 점, 또 당시와는 달리 삼성전자가 세계 디지털 TV시장서 소니를 압도한 데 따른 소니 내부의 반감, 일본 샤프가 공격적 LCD 증산에 나서면서 투자 파트너를 적극적으로 찾아왔던 점, 2003년 합작을 주도했던 소니의 구다라키 겐 사장 퇴임 이후 삼성 인맥 부재 등 여러 가지 이유로 해석된다. 템피스투자자문 민후식 상무는 "소니로서는 여러 원인들이 축적된 가운데 삼성 특검사태에 따른 컨트롤 타워 부재시점인 지금을 결단의 적기라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이런 기저를 관통하는 것은 일본 전자업체들의 반(反)한국 기업 분위기라는 게 일반적 해석이다. 일본 전자기업들은 90~1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최근 5~10년 사이 한국 전자업체들에 잇따라 세계 선두 자리를 내줬다. 1980~90년대 휩쓸었던 메모리반도체시장은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에 내줬고 벌써 30여년 전에 첫 LCD 제품을 내놨던 샤프는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LG필립스LCD에 계속 밀려 왔다. 최근엔 'TV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소니 역시 디지털 TV시장 정상 자리를 삼성전자에 빼앗기면서 절치부심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최근 일본 전자업체들은 대대적인 투자에 나서며 권토중래(捲土重來)를 꿈꾸고 있다. LCD사업은 이런 가운데서도 두 나라 전자기업 사이에 협력이 이루어지던 유일한 분야였으나 이번 '삼성·소니 대 샤프' 구도가 '삼성 대 소니·샤프' 구도로 바뀌면서 '일본 기업 단결'이라는 분위기의 영향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내부 책임론도 제기될 듯=이에 따라 국내 기업들 간에도 긴밀한 대응이 요구되고 있다. 실제 최근 디스플레이산업협회를 중심으로 국산 장비 공동 사용과 부품 소재 개발 지원을 추진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와함께 LCD 총괄 등 삼성전자 내부 책임론이 제기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일본 소니가 이미 작년 말 신규 라인 투자에 참여하지 않기로 하고 대만 구입물량을 늘리는 등 LCD시장을 둘러싼 여러 상황이 소니의 이탈 가능성을 시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전에 적절한 대비책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본 샤프 역시 지난해 중반 10세대 투자를 공언한 이후 파트너를 꾸준히 찾아 왔던 만큼 삼성전자가 이런 상황에 제대로 대응 못하다 허를 찔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