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는 학교 기금으로 무려 400억달러(약 38조원)를 굴리는 국제금융계의 큰 손이다. 그런데, 이 돈을 관리하는 하버드경영회사(HMC·Harvard Management Company)가 2003년 12월 약 50만에이커(약 20억㎡)에 달하는 뉴질랜드의 삼림(森林)을 매입해 화제가 된 일이 있다.
하버드대는 당시 보유한 190억달러의 금융자산 중 이미 투자되어 있던 지분을 포함해 10%가 넘는 자산을 삼림에 투자한 것이다. 이를 통해 하버드대는 뉴질랜드 삼림의 두 번째로 큰 소유주가 됐다.
삼림 투자의 개념은 간단하다. 일반적으로 삼림지역의 토지를 매수하게 되면, 삼림이 자라면서 가격이 매년 상승하므로 이를 통해 투자 이익을 얻는 방식이다. 투자 시 토지 가격의 상승은 거의 고려되지 않는 까닭에 상품(commodity) 투자에 가까운 성격을 갖고 있다. 특히 삼림투자는 귀금속, 석유 등 많은 상품투자 대상 중에서도 인플레이션을 회피하는 데 가장 탁월한 실적을 보여주고 있다. 인플레이션을 제외한 연 평균 투자 수익이 6~10% 정도로 평가된다.
삼림투자가 고수익으로 소문나면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투자자들은 남들이 가지지 못한 정보를 확보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이 경쟁에 최근 인공위성이 새로운 무기로 등장했다.
■지도 회사를 찾아온 제지업체
뉴질랜드 삼림은 영화 '반지의 제왕' 1·2편의 배경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삼림투자 업체들에게는 유망 투자상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비옥한 토양에서 최고급 목재가 자라는 데다, 벌목이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이다. 뉴질랜드 정부도 삼림자원을 적극적으로 개발해 수익을 창출해 왔다.
그러나 1997년 아시아를 덮친 금융위기는 이 지역의 경제성장을 지렛대 삼아 가치를 높여오던 뉴질랜드 삼림의 가격 하락을 불러왔다.
기회를 엿보던 주요 삼림투자 업체들은 2000년대 들어서면서 적극적인 매입을 시작했다. 그 중 하나가 하버드대이다. 하버드경영회사는 중국의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예상하고, 삼림투자에 앞장섰다. 하버드대의 금융자산이 2003년 190억달러에서 2005년 290억달러, 2007년에는 400억달러로 불과 4년 만에 2배 이상 증가하는데 전 세계적인 주식시장의 활황과 더불어 삼림 등 적절한 상품투자 전략이 기여한 바 크다.
2003년 하버드대가 뉴질랜드 삼림을 매입했을 때 필자는 시카고에 위치한 지도 정보 제공 벤처업체의 기술담당이사(CTO)로 있었다. 당시 필자는 인터내셔널 페이퍼(International Paper·IP)라는 세계 2위 종이 생산업체의 중국 투자와 관련된 컨설팅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인터내셔널 페이퍼는 시가총액이 약 150억 달러(약 14조3000억원)에 사원 수가 6만명에 이르며, 삼림 자산만 미국 내에 약 1000만에이커(약 400억㎡)를 보유하고 있던 회사였다.
그런데 지도 정보를 제공하는 신생 벤처가 이런 회사의 중국 투자라는 중요한 전략 수립에 어떻게 컨설팅을 할 수 있었을까? 열쇠는 '위성'이었다. 당시 필자가 재직한 벤처업체는 다양한 위성 영상 정보를 융·복합해서 특정 지역에 분포한 삼림자원의 수령(樹齡)을 평가하는 기술을 갖고 있었다. 쉽게 말하면 위성 영상을 이용해 나무의 종류와 나이를 재는 기술을 개발한 셈이다.
위성 영상은 전통적으로 국가 안보 및 군사 분야에 이용돼 왔다. 그러나 농작물 및 삼림자원의 관리와 모니터링에도 이용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삼림투자 위한 모든 정보 제공
위성은 지상의 카메라처럼 가시 광선을 이용하는 광학카메라 외에, 적외선, 자외선, 라디오파 등 다양한 전자기파를 이용해 지상을 촬영한다. 예를 들어 적외선 위성 영상으로 보면 침엽수는 활엽수에 비해 훨씬 어둡게 나타나 수종(樹種)을 구분할 수 있다. 또 특정 지역의 삼림을 30년 이상 다양한 위성 영상으로 촬영하면 목재의 나이가 어떤지도 알 수 있다. 레이더 영상으로는 나무의 키까지 확인할 수 있다.
이를 이용해 다양한 서비스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종이공장에는 종이 제조에 적절한 수종과 수령을 갖춘 삼림지역을 위성 영상을 통해 찾아내고 관련 정보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안정적인 자재 조달이 가능해진다. 인터내셔널 페이퍼에 제공했던 컨설팅 서비스가 이에 해당한다. 중국의 종이 수요 증가에 대비해서 종이 공장을 세운다면 어디에 세워야 하는지, 그리고 이 공장을 운영하기에 충분한 삼림 자원은 어디에 있는지 등에 대한 자료를 위성 영상 분석을 통해 제공했던 것이다.
다른 서비스로는 삼림투자를 검토하는 투자자들에게 투자대상 지역의 수종과 수령 분포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가 있다. 기존 삼림 소유자가 제공하는 정보가 맞는지 위성 영상을 통해 확인하고 감시하는 의미가 있다.
이러한 정보 서비스를 구입했던 삼림투자 업체로는 Hancock Timber, Campbell, GMO, Forest Investment Associates 등이 있었다.
■곡물 투자 전용 위성도 발사
곡물 거래도 위성 영상 처리 기술이 활발히 사용될 잠재력이 큰 시장이다. 곡물시장은 상품시장 중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으며 거래 규모도 삼림투자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곡물투자는 삼림투자와 비교해 매우 동적이다. 특히 다른 투자자보다 앞선 정보력이 주식시장 못지 않게 중요한 시장이다. 주식시장에서 상장기업의 올해 영업이익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면 큰 투자 수익이 가능한 것처럼, 옥수수 작황에 대한 정확한 예측이 가능하다면 큰 투자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많은 투자자들이 다양한 방법을 이용하여 곡물 생산량을 추정하고 있으며, 이 중 하나가 위성영상을 이용한 방법이다.
위성영상은 지역별 생산량 추정이 가능하다는 점이 강점이다. 장기 기상모델 등을 통해 추정되는 장기 전망과 달리 단기적인 전망이긴 하지만, 좀 더 정확한 추정이 가능해 헤지 펀드(hedge fund)로 대변되는 투기자본들이 애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곡물투자를 위한 전용 위성도 추진되고 있다. 미국의 '리소스(Resource)21'과 독일의 '래피드아이(RapidEye)'가 이에 해당한다.
리소스21의 경우 곡물 관련 업체들이 보잉과 같은 항공사와 함께 위성 개발을 추진했으나, 미 정부로부터 마지막 투자 유치에 실패해 좌절됐다. 그러나 래피드아이는 매우 구체적인 사업 계획으로 곡물 작황 모니터링 시장의 패권을 차지하려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래피드아이는 올 2분기 중에 첫 위성을 쏘아 올리고 향후 똑같은 성능과 크기의 위성을 다섯 개 더 쏘아 올려 지구의 어느 지역이든 상시 관측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야심 찬 계획을 갖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여섯 개 중 하나의 위성은 대만의 재원(財源)으로 제작될 계획이어서, 그만큼의 지분을 대만이 갖게 된다는 점이다.
■위성기술은 세계 10위, 활용은 미지수
우리나라는 지난해 3대 곡물인 밀, 콩, 옥수수 수입에 약 3조원을 사용했다. 따라서 위성 기술 등을 활용해 시장을 정확히 분석하고 투자해 수입 비용을 1%만 절감해도 300억원어치 상품을 수출한 것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한국의 영상 취득용 위성제작 기술은 세계 10위권으로 평가된다. 항공우주연구원이 주도한 아리랑 2호는 세계 최고 수준에 근접한 공간 해상도를 갖고 있다. 앞으로 다목적 실용위성 3호와 5호가 발사되면 명실상부한 위성 기술 강국의 자리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위성을 상품시장에 활용하는 노력은 아직도 부족하다. 필자가 소속된 연구그룹은 건설교통부에서 발주한 '국토모니터링'이라는 국가연구과제에 제안서를 제출한 바 있다.
최근 국가연구과제는 연구결과가 어떻게 쓰일지에 대한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도록 되어 있기에, 래피드아이의 투자의향서까지 확보하고 국내 유수의 곡물 수입 업체와 금융 투자기관을 접촉했다.
안타까웠던 것은 곡물 수입업체 중 단 두 곳만이 곡물시장에서 선물을 초보 수준의 위험 회피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금융 투자기관에서는 아예 이러한 상품 투자시장에 대해 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지난 7일, 상품 투자의 귀재인 짐 로저스는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역사상 최악의 경기 침체를 경고하며, 달러 자산의 매도와 곡물에 대한 투자를 조언한 바 있다.
삼림 및 곡물에 대한 투자와 위성 영상, 그리고 이를 통한 금융 이득. 미래는 전혀 관계 없어 보이는 이런 분야들을 서로 연결하라고 주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