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비를 맞으며 출근한 날이면 왠지 하루 종일 기분이 가라앉는다. 사람들은 햇빛을 보지 못해서라고 한다. 실제로 흐린 날이 많은 겨울이면 우울해지는 사람이 많아진다. 최근 햇빛이 기분을 좋게 할 뿐 아니라 각종 암 예방에도 좋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한편에서는 햇빛이 피부암을 유발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햇빛은 약(藥)일까, 아니면 독(毒)일까.

◆햇빛 쐬면 암 사망률 감소

미국 미시간대의 매튜 켈러(Keller) 박사는 2004년 실험을 통해 같은 운동을 하더라도 햇빛이 좋은 야외에서 하면 기분이 더 좋아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 햇빛을 자주 쐬는 사람들은 인지능력도 향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봄철에 햇빛의 효과가 크다고 한다.

최근에는 햇빛이 기분뿐 아니라 몸까지 좋게 한다는 연구결과가 잇따라 나왔다. 노르웨이 암연구소의 요한 모안(Mooan) 박사 연구팀은 지난 7일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햇빛을 많이 쐬면 피부암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지지만 다른 암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어 전체적으로는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더 많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햇빛을 쐬면 비타민D가 합성돼, 피부암에 걸리는 피해보다 각종 암의 사망률을 낮추는 이득이 더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그렇지만 시중의 선 크림은 자외선 중 비타민D 합성에 필요한 부분은 차단하고 피부암을 일으키는 파장은 통과시키는 문제점이 있다는 지적이다.

조사 결과, 호주처럼 햇빛을 많이 쐬는 적도 부근 국가에서는 노르웨이 같은 고위도 국가에 비해 피부암 발병률이 높지만 모든 종류의 암으로 인한 사망률은 낮았다. 원인은 햇빛을 쐬면 인체에 합성되는 비타민D. 연구팀은 "비타민D가 인체 면역기능을 활성화시켜 각종 암으로 인한 사망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며 "노르웨이의 경우, 사람들이 햇볕에 대한 노출을 두 배 가량 늘릴 경우 한 해 피부암 발병이 300건 증가할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다른 암에 의한 사망은 3000건 줄어든다"고 밝혔다.

비타민D는 뼈와 이에 칼슘이 가라앉는 것을 돕는다. 비타민D가 부족하면 어린이들은 키가 잘 자라지 못하고 팔다리가 휘며, 설사·기관지염·폐렴에 잘 걸린다. 어른들은 뼈가 부러지기 쉽다.

◆비타민D 생성 막는 선 크림

겨울에 뇌졸중 환자가 늘어나는 것도 햇빛을 많이 쐬지 못해 비타민D가 부족해지기 때문이라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하버드대 의대 토마스 왕(Wang) 박사팀은 지난 8일 미국 심장학회가 발생하는 '순환기학(Circulation)'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비타민 D가 부족하면 정상인에 비해 심장마비나 뇌졸중, 심부전 등의 심혈관 질환 발병 위험이 약 60% 가량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비타민D 부족은 특히 겨울철 햇빛이 약한 지역에서는 매우 빈번하게 나타난다.

그렇다면 햇빛을 쐬고 비타민D를 택할까, 아니면 선 크림을 바르고 피부암을 막을까. 연구팀은 실제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최근 비타민D는 햇빛 중에 파장이 짧은 자외선(UV)-B에 의해 생성되는데, 치명적인 피부암은 그보다 파장이 긴 UV-A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UV-B도 피부암을 유발하지만 생명에 지장을 주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시중에 판매 중인 선 크림은 그 반대로 작용한다는 데 있다. UV-B는 피부를 타게 하지만, UV-A는 보기 좋은 선탠 효과를 나타낸다. 때문에 대부분의 선 크림은 비타민D를 만들어주는 UV-B는 막고, 피부암을 일으키는 UV-A는 통과시킨다는 것. 과학자들은 모든 종류의 자외선을 차단하는 선 크림을 사용하되, 하루에 10~15분은 햇빛에 그대로 노출하는 게 건강에 좋다고 조언한다.

◆햇빛 노출에 반론도 거세

물론 반론도 만만치 않다. 미국 피부암재단은 모든 종류의 자외선은 피부 노화를 촉진시켜 피부암 발병률을 높인다고 주장한다.

보스턴대 의대의 딘 월포위츠(Wolpowitz) 교수팀은 햇빛에 많이 노출된 지역에서 암 사망률이 다른 지역에 비해 낮다는 연구결과는 공해나 개인별 유전적 요인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조건 햇빛을 쐬는 게 좋다는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월포위츠 교수는 "아주 짧은 시간만 햇빛을 쐬어도 인체가 요구하는 비타민D를 충분히 공급할 수 있다"며 "옷을 입고 있어도 그 정도 햇빛은 몸에 닿는다"고 주장했다. 그보다 과한 햇빛 노출은 비타민D 합성에는 더 이상 도움을 주지 못하고, DNA 손상만 일으킨다는 것. 그는 "비타민D 합성 때문에 피부노화나 피부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평균수명이 40세에 불과하던 1000년 전에나 통할 얘기"라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