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속옷 광고는 1960년대부터 시작했다. 당시는 실제 인물을 광고에 내보내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 시절 속옷 광고는 그림을 이용하거나 마네킹을 사용했다. 1980년대가 되면서 실제 인물이 속옷 광고에 등장했지만 대부분 외국 모델이었다. 199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비비안은 속옷 업계 최초로 국내 유명 연예인을 속옷 광고 모델로 선보였다. 당시로는 파격이었다. 연예인의 이미지를 속옷 제품과 연결시키는 모험을 강행한 것이다.
㈜남영L&F의 대표 속옷 브랜드인 비비안은 1974년 태어나 지금까지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업계 1위를 다투고 있는 비비안의 선전에 힘입어 남영L&F는 지난해 순이익만 90억원이 넘었다. 1년에도 여러 개의 브랜드가 나타났다 사라지는 속옷 시장에서 비비안이 30년 넘게 장수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유명 연예인을 모델로 기용
비비안은 1995년 개성 있는 신세대를 대변하는 패션모델 김지연을 모델로 세워 화제를 뿌렸다. 이후 비비안은 당대 최고의 젊은 여성 연예인을 모델로 기용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이는 젊은 여성들이 닮고 싶은 모델을 내세워 매출을 높이는 동시에 기존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서였다. 비비안이 30년 이상 한 브랜드로 지속되다 보니, 젊은 층에는 '어머니가 입는 속옷'이라는 이미지가 깊이 박혀 있었다. 고급스럽기는 하지만 고루하다는 이미지가 강했던 것이다. 이런 이미지에서 탈출하기 위해 비비안은 박지윤, 김남주, 한은정, 송혜교, 그리고 현재 김아중에 이르기까지 한 시대를 대표하는 젊은 여성 연예인을 모델로 활용, 젊은 감각으로의 변신에 성공했다.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디자인
비비안은 제품 디자인에 있어 유행을 이끌면서도 기본에 충실하겠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또 다른 장수비결이 숨어 있다.
겉옷과 마찬가지로 속옷에도 계절이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유행하는 디자인과 색상이 있다. 이때 유행에만 너무 신경을 쓰면 금방 식상해져 반짝 인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기본에만 충실하면 큰 인기를 얻기 힘들다. 남영L&F 홍보실의 박종현 실장은 "비비안은 착용감이나 소재, 기능 등의 품질을 바탕으로 최신 유행 디자인의 제품을 만든다는 것을 브랜드 출범 당시부터 지금까지의 큰 원칙으로 삼아왔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에선지 비비안 제품은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다는 평을 받는다.
자유분방한 신세대들의 욕구를 그대로 드러낸 볼륨업브라, 몸에 꼭 끼는 옷의 유행에 따라 등장한 노브라, S라인의 열풍을 타고 가슴의 라인을 한층 살려주는 라인핏브라 등이 비비안의 대표 제품이다.
◆유통구조 개선과 브랜드 다각화
유통문제에 일찍 관심을 가진 것도 장수 비결로 꼽힌다.
남영L&F는 다른 속옷 업체들이 기존의 유통 구조를 고수하며 유통매장 수 확장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유통혁신에 눈을 떴다. 먼저, 외곽상권과 중복상권에는 점포를 열지 않기로 했다. 박 실장은 "새 점포를 엄선해서 열었고, 같은 상권 안에서는 경쟁력 있는 지점으로 통합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채택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비비안'은 1997년에 약 2000여개였던 매장 수를 2000년에는 1000여개, 2003년에는 약 300여개까지 정리했다.
이와 함께 1990년대 초·중반부터 급성장을 한 할인점에 빨리 눈을 돌렸다. 당시 속옷업체들은 대부분 하나의 브랜드를 가지고 있었다. 유통에 따른 제품의 차별성이 없는 상황이었다. 남영L&F는 1993년 할인점 1호인 이마트 창동점에 할인점 전용 브랜드인 '드로르'를 만들어 넣었다. 이를 통해 주력 고급 브랜드인 비비안과 차별화를 꾀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비비안은 브랜드 생성 초기부터 '할인을 하지 않는다'는 마케팅 전략을 통해 고급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더욱 강화시켰다.
속옷 업계 최초로 전국 대도시에 수선센터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는 것도 사후 관리를 통한 브랜드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데 한몫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