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 조감도 한번 보세요. 여기 있는 국도랑 장지IC를 통하면 곧바로 서울 강남입니다. 교통 편리하죠, 주변 환경 좋죠, 입주민을 위한 전용 영화관에 카페테리아, 피트니스 센터… 단지 안에 편의시설도 많습니다. 어떠세요, 이런 집에서 한번 살고 싶지 않으세요?”

22일 오후 현대홈쇼핑 채널. 화면 속에서 쇼핑 호스트가 상품을 소개하고 있다. 그녀가 팔고 있는 것은 ‘광주 탄벌 경남아너스빌’ 아파트. 그녀가 낭랑한 목소리로 투자 조건을 설명하는 동안, 화면에선 아파트 단지를 조망하는 동영상이 수차례 반복됐다. 이날 방송의 시청률은 0.27%. 평소보다 2배 이상 높았다.

에어컨, 보험, 장례 대행, 격투기 티켓에 해외 연수, 이민 상품까지…. 안 파는 게 없는 TV홈쇼핑에 이제 아파트까지 등장했다. 현대홈쇼핑 오형주 대리는 “브랜드를 홍보하면서 분양 예정 단지의 투자 조건, 입지 여건 등을 소개하는 ‘분양 광고’였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며 “21일 오픈한 모델하우스 방문객이 금요일 1500명, 토요일 3000명에서 방송이 나간 후 일요일 하루에만 1만명이 넘었다”고 했다.

26일 오전 강서구 GS홈쇼핑 스튜디오에서‘극세사 침구’생방송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9일 밤 GS홈쇼핑GM대우의 소형 해치백(뒷문이 위로 열리는 차)인 '젠트라 엑스'를 판매했다. 등장한 쇼핑 호스트만 12명. 제작 인원은 60명이 동원됐다. 화면에선 주행성능 테스트 장면, 충돌실험 영상, 도로를 질주하는 모습 등이 여러 번 돌아갔고, 쇼핑 호스트들은 성능과 디자인, 판매 조건 등을 반복해서 읊었다. 홈쇼핑이 본격적으로 자동차 판매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 시청률은 평소보다 5배 가량 높은 0.15%. 방송 중 상담 예약 건수도 899건이나 됐다.

의류와 주얼리가 대부분이었던 홈쇼핑에 왜 자동차나 아파트 같은 고가의 상품까지 등장했을까. 박은홍 현대홈쇼핑 상품개발팀장은 “지상파 TV광고는 15초 만에 아파트를 분양한다는 사실 전달에 그치지만, 홈쇼핑 방송에선 1시간 내내 현장을 직접 보여주고 자세하게 설명해줄 수 있어 아파트 홍보에 딱 맞다”고 했다.

◆원인은 매출 감소

단지 그 이유뿐일까. 더 큰 원인은 따로 있다. GS홈쇼핑 신형범 홍보팀장은 "2004년 이후 케이블 TV 시청 가구 수 증가세가 정체되면서 TV홈쇼핑 매출도 줄거나 미미한 성장에 그치고 있다"며 "끊임없이 새로운 상품을 개발해 화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주요 홈쇼핑 업체들의 실적은 2006년 이후 감소하는 추세다. GS홈쇼핑의 경우, 연도별 영업이익은 2003년 244억원에서 2004년 661억원으로 껑충 뛰었고 2005년 760억원까지 올랐으나 2006년 702억원으로 떨어졌다.

TV 홈쇼핑에서 판매한 '튀는 상품들'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

올해는 특히 예년에 비해 저조한 실적으로 몸살을 앓았다. GS홈쇼핑의 올해 3분기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2.5% 증가했지만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7.5%, 10.7% 감소했다. CJ홈쇼핑은 올해 TV홈쇼핑의 3분기 취급고(판매총액에서 부가가치세를 제외한 금액)가 2009억원, 매출액은 900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각각 13.9%, 9.4% 감소했다. 현대홈쇼핑도 전체 매출의 70% 가량을 차지하는 TV홈쇼핑의 3분기 매출이 전년보다 7~8% 줄었다.

반면 인터넷 쇼핑 부문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홈쇼핑의 사업 분야는 크게 세 가지. TV홈쇼핑, 인터넷 쇼핑몰, 카탈로그 등이다. GS홈쇼핑의 인터넷 쇼핑몰인 GS이숍의 경우, 올해 3분기 취급고가 419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8% 성장했다. CJ홈쇼핑의 인터넷 쇼핑 부문도 올해 3분기 취급고가 1029억원, 매출액 165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각각 2.3%, 5.8% 증가했다.

TV 홈쇼핑에서 판매한 '튀는 상품들' 서인숙 작가의 사진작품

때문에 업체들은 TV홈쇼핑의 비중을 줄이고 성장이 두드러지는 인터넷 쇼핑몰을 강화하고 있다. GS홈쇼핑의 경우, 2001년만 해도 TV홈쇼핑이 73.8%를 차지할 정도로 절대적이었으나 2006년에는 53.9%까지 떨어졌다. 대신 인터넷 쇼핑몰의 비중을 9.5%에서 36.5%까지 키우고, GS이숍에 명품 코너를 만들고 9월부터 해외구매 대행 서비스를 시작하는 등 콘텐츠를 다양화하고 있다.

◆튀는 상품을 찾아라

이색 상품을 발굴하려는 업체의 노력은 처절하다. 홈쇼핑계의 한 관계자는 “홈쇼핑 상품들은 대개 라이프 사이클이 짧아 기껏해야 수명이 1~2년 정도”라며 “수익 모델을 발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한때 홈쇼핑의 효자 상품이었던 보험 상품도 한 집에서 2~3개씩 필요한 게 아닌 만큼 이제는 수명이 거의 다했다는 것.

TV 홈쇼핑에서 판매한 '튀는 상품들' 엄정화 속옷 브랜드

업체들은 앞다퉈 톡톡 튀는 이색 상품을 쏟아내고 있다. 타이어, 보석 세트, 고가 사진 작품에 콘돔까지 등장했고, 50만원이 넘는 핸드백, 30만원대의 구두 등 '명품'도 속속 나온다. 관건은 '고급스러움'. GS홈쇼핑 신진호 과장은 "홈쇼핑에서 저가 상품이 잘 팔리던 시대는 끝났다"며 "요즘 고객들은 차별화된 '고급 상품'을 원하기 때문에 다양한 프리미엄급 제품을 선보이는 중"이라고 말했다.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 등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연예인 이름이 붙은 속옷 등을 출시하는 것도 이러한 흐름으로 볼 수 있다.

GS홈쇼핑은 최근 송년호 쇼핑 카탈로그에 ‘GS갤러리’라는 코너를 만들어 사진작품 판매에 들어갔다. 서인숙 작가의 작품 ‘향(香)’과 이원철 작가의 ‘The Starlight’ 시리즈 연작 중 각 3편. 각각 작가의 친필 서명, 작품당 판매량을 10점 이내로 제한해 희소성, 소장가치를 높였다. 작품당 150만원을 호가하는 ‘고급 상품’이다.

TV 홈쇼핑에서 판매한 '튀는 상품들' 일본산 프리미엄 타이어

CJ홈쇼핑은 지난 15일 일본산 프리미엄 타이어 브랜드인 'Toyo'의 자동차 타이어 판매 방송을 통해 약 2억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렸고, 지난 10월부터는 '현대종합상조 프리미엄형 장례 토털 서비스' 상품을 론칭하고 월 2회 판매 방송을 하고 있다.

현대홈쇼핑은 화산재로 만든 새집증후군 탈출 인테리어 ‘에코카라트 갤러리 시리즈’를 카탈로그 상품 목록에 올렸다. 롯데홈쇼핑은 지난 6월부터 스튜디오 사진 촬영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만삭부터 출생, 돌, 백일까지 총 4회에 걸쳐 아기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서비스다.

하지만 이색 상품 발굴이 정착하는 데는 진통도 따른다.

GS홈쇼핑 신형범 팀장은 “수입차를 홈쇼핑에서 방송한 적이 있었지만 가격이 워낙 고가라 호응이 낮았고, 국내 차는 기존 영업소에서 항의가 들어오는 등 기존 영업망과 충돌한다는 게 문제”라며 “부동산의 경우도 직접 판매 방송은 어렵고 광고 방송으로 진행해야 하는데 기존 TV홈쇼핑 성격과 차이가 있어 지속적인 카테고리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