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는 하늘에 떠있는 별만큼이나 많은 와인이 존재한다고 흔히 말한다. 매년 새로운 와인들이 쏟아져 나오고 지역에 따라, 빈티지(생산연도)에 따라 맛이 다르다. 금방 마셔 버려야 할 와인이 있고, 장기 숙성시켜도 될 와인이 있다. 대중들뿐 아니라 애호가들조차도 접근할 수 있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다.
어떻게 와인을 고르고 선택할 것인가. 비단 이는 와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영화 한 편을 보는 데에도, 그림 한 점을 사는 데에도 필요한 정보일 것이다. 와인과 소비자, 영화와 관객 사이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게 평론의 역할이다. 평론가마다 자신이 중점적으로 다루는 생산지가 있는가 하면, 전 세계 주요 와인을 대상으로 테이스팅해서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보르도 와인은 로버트 파커, 부르고뉴 와인은 클라이브 코츠 같은 평론가들이 전문성을 띠고 있다. 그 외에도 여러 평론가와 전문지들이 있지만 각각 자기 취향이 존재함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와인 평론가로는 로버트 M. 파커(Robert M. Parker)가 꼽힌다. 1975년부터 와인 향과 맛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한 그는 1982년 보르도 빈티지가 전설적이라고 판단 내리면서 스타 평론가로 자리를 잡아 나갔다. 1985년 발간한 그의 저서 '보르도'는 개정판을 거듭 내고 있으며, '와인 구매자 안내서'(Wine Buyer's Guide)는 전 세계 8000여 종이 넘는 와인에 대한 설명을 담고 있다.
파커 이전까지 와인에 점수를 부여할 때는 유럽 평론가들이 하던 방식대로 20점 만점이 관례였다. 그러나 파커는 100점 만점 제도를 정착시키면서 일반인들이 보다 이해하기 쉽게 점수를 매겼고, 그가 높은 점수를 준 와인은 전 세계적으로 뜨는 현상이 일어났다. 결국 2003년 빈티지 샤토 파비(Pavie·프랑스 생테밀리옹 지역에서 생산되는 메를로와 카베르네 프랑 품종 포도로 만든 와인)에 대해 파커가 극단적인 호평을 하자 잰시스 로빈슨(Jancis Robinson)으로 대표되는 영국계 평론가들이 들고 일어났다. 로빈슨은 20점 만점에 12점을 주었고 "포트 와인처럼 단 와인이 굳이 생테밀리옹에서 나올 필요가 있느냐"는 반박을 하면서 첨예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잰시스 로빈슨도 파커와 같은 해인 1975년부터 '와인 & 스피리트'(Wine & Spirit)에 글을 기고하면서 평론가로 데뷔했다. 그녀는 유명 와인가이드 북인 '옥스퍼드 컴패니언 투 와인'(The Oxford Companion to Wine)을 책임지고 있으며, '파이낸셜 타임스'에 와인 평을 기고하면서 영국의 와인 애호가들에게 신뢰를 얻고 있다. 그녀가 전 세계 포도원을 방문하면서 제작된 다큐멘터리는 국내에도 '잰시스 로빈슨의 와인 코스'라는 제목으로 출시돼 있다.
휴 존슨(Hugh Johnson)은 '월드 아틀라스 오브 와인'(The World Atlas of Wine)이라는 저서에서 전 세계 와인 산지를 폭넓고 깊이 있게 다뤄,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평론가다. 그는 1977년부터 매년 '포켓 와인 북'(Pocket Wine Book)이라는 구매 가이드를 발간하고 있다. 그의 평은 보다 객관적인 면을 견지하고 있으며, 로버트 파커에 대해서는 '맛의 독재자'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마이클 브로드번트(Michael Broadbent)는 와인 평론가이자 크리스티 와인 경매를 총괄하고 있다. 오랫동안 경매 현장에서 골동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올드 빈티지 와인들을 시음해 왔기 때문에 올드 와인에 관한 한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캘리포니아와 보르도의 1971년 빈티지를 비교 시음했던 '파리의 심판'이 30년 만에 다시 펼쳐지자, 잰시스 로빈슨 등과 함께 평가를 맡기도 했다.
와인 생산의 본 고장이랄 수 있는 프랑스나 이탈리아보다 체계적인 소비자들이 많은 영어권 필자들이 평론계에서는 더 우위에 있다. 마찬가지로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읽히는 전문지도 미국의 '와인 스펙테이터'와 영국의 '디캔터'이다. 채점 방식은 '와인 스펙테이터'는 100점, '디캔터'는 별 다섯 개를 최고 점수로 친다.
미국이나 영국이나 평론가들의 스타일과 잡지의 경향은 유사하다. '와인 스펙테이터'는 지역이나 와인 스타일에 따라 선임 평론가를 두어 전문성을 도모하고 독자적인 취향을 고수하고 있으며 매년 100대 와인을 선정해 발표함으로써 영향력을 행사한다. 평론가나 잡지마다 판단 방법이나 점수가 다르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다양한 자료들을 취합해 판단을 내린다면 보다 객관적으로 와인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