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욕구를 다섯 단계로 나눌 수 있다는 매슬로우(Maslow)의 '욕구 5단계설(說)'은 60년이 지난 지금도 조직행위 이론의 고전으로 자리잡고 있다. 생존을 위한 하위의 욕구에서 자아실현을 위한 상위의 욕구에 이르기까지 사람의 욕구가 단계적으로 옮겨간다는 가설은 시대에 상관없이 설득력을 지니는 것이다.
조직경영의 핵심이 조직원들의 동기(motivation)를 유발하는 데 있는 것처럼 제품개발의 요체도 고객의 요구(needs)를 만족시키는 데 있다. 따라서 경영학의 동기부여 이론과 공학의 제품개발 실무 사이에 상관성과 유사성이 존재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실제로 매슬로우 이론의 '단계구조'는 제품개발 기법의 고전인 '기술 트리(Technology Tree)'나 '패스트 다이어그램(FAST Diagram)'의 '계층구조'와 개념적 체계와 논리적 구조를 함께한다. 우선 매슬로우 이론에서 '인간의 욕구'를 여러 단계로 나누듯 기술 트리나 패스트 다이어그램에서는 '고객의 요구'를 상위기능-기본기능-부가기능 등의 계층으로 나눈다. 다음으로, 동기부여 이론에서 각 단계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관리요소'들을 찾아내는 것처럼 제품개발 실무에서는 각 계층의 니즈를 만족시키기 위한 '설계요소'들을 끌어낸다.
#제품 개발의 요체는 고객 요구 만족시키는 것
1960년대에 제시된 허즈버그(Herzberg)의 '2요인 이론'은 새로운 시각에서 인간의 욕구를 해석한다. 사람은 하위 욕구에 만족하면 더 높은 단계의 만족을 찾는다는 매슬로우 이론과 달리, 허즈버그 이론은 사람이 만족한다는 것과 불만족한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즉 인간의 욕구는 제공되면 만족을 느끼지만 제공되지 않는다고 해서 불만이 늘어나는 것은 아닌 '동기요인(motivation factor)'과, 제공되지 않으면 바로 불만이 생기지만 제공된다고 해서 만족이 커지는 것이 아닌 '위생요인(hygiene factor)'으로 처음부터 나뉘어져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근로조건이나 임금과 같은 위생요인을 개선하여 '불만을 없애는' 일과, 직무를 다시 설계하고 자율성을 확대하여 '만족을 느끼게' 하는 일은 근본적으로 다른 기준과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허즈버그의 2요인 이론을 일본의 제품개발 실무에서 직수입한 것이 '카노(Kano) 모형'이다. 이 모형에서는 고객의 요구(requirement)를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먼저 필수적(must-be) 요구는 제공되지 않으면 고객이 강한 불만을 느끼면서 아예 제품을 구매하지 않게 되는 니즈이고, 일차원적(one-dimensional) 요구는 기능이 제공되는 수준에 따라 고객의 만족도가 달라지는 니즈이며, 매력적(attractive) 요구는 기능이 제공되면 만족을 느끼지만 없다고 해서 불만이 커지는 것은 아닌 니즈이고, 무관심(indifferent) 요구는 제공 여부가 고객의 만족도에 아무 영향도 미치지 않는 니즈이다. 잠재고객들의 다양한 니즈를 파악해 각각의 니즈가 어떤 유형에 속하며 어떤 설계변수가 필요한지를 분석한 뒤 각 니즈의 특성을 변수의 설계와 구현과정에 반영하는 것이다.
1960년대에 나온 또 다른 조직관리 이론의 고전은 맥그리거(McGregor)의 'X-Y 이론'이다. 이 이론은 날 때부터 매사에 수동적이고 창의성도 부족한 X형 인간과 그 반대인 Y형 인간으로 구분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두 유형의 특성을 동시에 보유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한편으로는 X형 특성을 억누르기 위해 타율적인 감독기능이나 강제적인 교육훈련을 강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Y형 측면을 키워주기 위해 자율적인 의사결정이나 적극적인 경영참여를 유도하는 이중적인 관리기술이 필요하다.
#프로슈머의 시대, 생산자와 소비자 더 가까워져야
인간의 양면성은 제품의 기술적 상충(contradiction)에 대비시킬 수 있다. 같은 사람이 두 가지 특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것처럼 같은 제품 안에서도 하나의 기술요인이 동시에 상반된 값을 가진다거나 한 요인을 개선하면 다른 요인이 악화되는 딜레마가 존재한다. 이런 딜레마를 해결하는 제품개발 방법으로 러시아의 알트슐러(Altshuller)가 제시한 트리즈(TRIZ) 기법이 있다. 트리즈 기법은 상충과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분리의 원칙(separation principles)을 적용한다. 즉, 제품의 설계과정에 시간(time)에 의한 분리, 공간(space)에 의한 분리, 크기(scale)에 의한 분리 원리를 적용하는 것이다. 예컨대 성능의 정확성을 위해서는 제품의 길이를 늘여야 하고, 사용의 편의성을 위해서는 길이를 줄여야 하는 상충이 있다고 하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간에 의한 분리 원리를 적용하여, 제품이 작동을 하는 시간에는 길이를 길게 유지하고 제품을 휴대하는 동안에는 길이를 짧게 유지하는 방식으로 제품을 설계한다.
조직관리는 인문계가 하고 제품관리는 이공계가 하던 시대에는 행위이론이 경영학의 영역이었고 개발실무는 공학의 주제였다. 제품을 만드는 생산자(producer)와 제품을 쓰는 소비자(consumer)가 다르던 시절에는 제품개발은 CTO(최고기술책임자)의 몫이었고 고객관리는 CMO(최고영업책임자)의 일이었다. 그러나 단절의 시대에도 사람에 관한 이론과 제품을 위한 실무 사이에는 자연스러운 공감대와 연결고리가 존재했다. 하물며 기술과 경영이 접목되는 기술경영(techno-management)의 시대, 생산자와 소비자가 하나가 되는 프로슈머(pro-sumer)의 시대에 양자가 더 자주 만나고 더 가까워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명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