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도(Reduce) 보고서를 내놓기 하루 전날, 잠 한숨도 못 잤습니다." 서울증권 박희운 리서치센터장은 동국제강, 현대제철 종목에 대해 '매도' 의견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한 지난 10월 16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머리가 아프다. 다른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대부분 긍정적으로 보는 철강주에 대해 "너무 비싸다"는 이유로 매도의견을 내놓으면서 투자자들과 해당 회사로부터 큰 욕 먹을 각오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고서를 내기 전날 9만5300원(종가기준)이던 현대제철에 대해 제시한 목표주가는 9만원, 6만3900원이던 동국제강에 대해서는 6만원 목표주가를 내놓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매도보고서가 나온 날부터 주가는 예측했던 대로 하락하기 시작했다. 11일 현대제철 주가는 7만9900원, 동국제강은 5만1400원으로 목표주가 밑으로 떨어졌다. 보고서를 직접 작성한 하종혁 애널리스트는 "이 두 종목의 주가가 많이 떨어진 만큼 조만간 재평가 보고서를 다시 내놓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어떤 종목이 매도 판정을 받았나

국내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연간 생산하는 기업분석 보고서는 대략 2만개 정도. 기업의 경영상태와 해당 산업의 전망을 바탕으로, 그 기업의 주식을 살 것인지 팔 것인지에 대한 의견을 내놓는다. 그러나 주식을 사라는 '매수' 보고서는 넘쳐나도, 팔라는 '매도' 보고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증권정보서비스 회사인 '에프앤가이드'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전체 보고서에서 매도의견이 들어간 보고서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1년 3.26% ▲2003년 1.21% ▲2005년 0.63% ▲2007년 0.17%에 불과했다. 갈수록 매도의견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소수인 매도의견을 맞은 기업들은 어디일까?

주요 기업들을 살펴보면 기아차, 삼성SDI, 현대 하이스코, KTF, CJ, 동국제강, 현대제철 등이었다.

예컨대 올 초부터 지금까지 현대하이스코에 대해 매도의견을 유지해 온 한국투자증권 김봉기 애널리스트는 "원재료 시장은 공급부족인 반면, 제품시장은 공급초과인 산업구조의 근본적 한계 때문에 현대하이스코의 수익성 창출에 한계가 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지난 10월 17일 기아차에 대해 매도의견을 내놓은 한화증권 용대인 애널리스트는 "3분기에 대폭적인 영업적자가 날 것으로 전망되면서 수익성에 의문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1주일 뒤인 10월 26일에는 "회사의 수익 창출력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에는 변화가 없다"면서도 "주가의 기술적 반등으로 목표주가를 상향조정(9100원→1만2000원)한다"고 밝혔다.

지난 9월 28일 CJ에 대해 매도의견을 내놓은 대신증권 이정기 애널리스트는 "내년 1월 예정된 CJ와 CJ제일제당 주식 간 교환을 통해 이재현 CJ그룹회장의 지배권 확보를 용이하게 하려는 회사 측 노력이 CJ 주가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중립의견도 상당부분 매도의견과 같아

한편 외국 증권사들의 기업분석 보고서에서 매도의견이 차지하는 비중은 10~20%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증권사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비율인 셈이다. 조용준 신영증권 리서치 센터장은 "중립의견(마켓 퍼포먼스)이라고 나오는 보고서의 일부는 매도의견에 가까운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애널리스트들이 투자자나 해당 기업으로부터 받는 유무형의 압력을 의식, 매도의견을 내야 하는 경우에도 제대로 발표하지 못하고 '중립의견'으로 포장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올해 전체 보고서에서 중립의견이 차지하는 비중은 13%(2522개). 익명을 요구한 한 애널리스트는 "중립의견까지 실질적인 매도의견으로 간주한다면, 우리나라 애널리스트들이 내놓는 매도의견 비율이 선진국 증권사들과 비슷하게 접근한다"고 말했다. 그는 "매도의견을 정확히 내놓을 수 있는 분위기가 정착되어야 투자자들도 정확한 정보에 입각해 투자를 할 수 있다"고 아쉬움을 털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