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나 연예인에게는 가십(gossip), 즉 뒷소문이 많다. 사람들은 명백히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을 때도 가십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이러다 보니 '뒷담화'란 국적불명의 신조어를 내세운 각종 방송 연예프로그램들도 인기를 끌고 있다. 왜 인간은 가십에 약한 것일까.
◆털 고르기 대신 가십 발달
영국의 인류학자 로빈 던바(Dunbar) 박사는 "가십은 원숭이가 상대의 털을 손질해 주는 행위를 보다 효과적으로 발전시킨 형태"라고 분석했다. 원숭이는 상대의 몸을 단장해 주고 가볍게 두드리는 등의 행동으로 집단의 유대감을 강화시킨다. 문제는 이런 행위는 수가 적은 집단에서만 가능하다는 데 있다. 수가 많으면 동료의 털을 골라주느라 시간을 다 보내게 된다. 인류는 대신 언어를 발전시켰다. 사냥을 하러 가면서 동료의 외모가 어떤지, 다른 사람의 행동이 어땠는지를 말로 하면서 집단의 유대감을 돈독히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언어는 털 고르기를 대신한 가십 덕분에 진화했다는 말이다.
이렇게 생겨난 가십은 인간 사회를 유지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사람들은 가십을 통해 누가 믿을 만한지, 누구의 평판이 나쁜지를 알게 된다. 또 자신에 대한 나쁜 가십이 돌지 않도록 이기적인 행동을 자제한다. 인류학자들은 가십은 이처럼 '간접적인 호혜주의(indirect reciprocity)'를 발전시켜 인간사회를 가능하게 했다고 본다.
◆평판 없인 협동 불가능
그렇다면 가십은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데 얼마나 큰 역할을 할까.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생물학연구소의 랄프 조머펠트(Sommerfeld) 연구원은 '미국립과학원회보(PNAS)' 인터넷판 10월15일자에 발표한 논문에서 가상 투자게임을 통해 가십의 역할을 분석했다.
연구팀은 126명의 학생에게 10유로씩을 주고, 9명씩 짝을 지어 서로 투자하게 했다. A학생이 B학생에게 1.25유로를 투자하면, 연구팀이 B학생에게 0.75유로를 추가로 투자해주는 방식을 썼다. 결국 서로를 믿고 투자하면 최종적으로는 모두가 이익을 보는 게임이다.
실험 과정에서 학생들은 투자하려는 상대가 그전에 다른 사람에게 돈을 많이 줬는지 여부에 대한 과거 기록을 볼 수 있었다. 또 때로는 다른 사람이 상대를 '관대한 사람' 또는 '비열한 구두쇠' 등으로 평가한 일종의 가십도 볼 수 있었다.
예상대로 학생들은 기록상 다른 사람에게 후했던 상대에게 더 많은 돈을 줬다. 평판이 좋은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반면 과거 투자기록이나 평판을 전혀 보지 못한 상태에서 실험을 하면 모든 학생들이 투자를 꺼려 결국 협동이 깨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진실보다 평판이 더 중요
그렇다면 객관적인 기록과 주관적인 가십 중 어느 것이 더 투자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칠까. 놀랍게도 가십이 진실보다 더 강력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십이 좋은 내용이면 투자비율이 20% 높아지고 반대로 가십이 부정적이면 투자비율이 20% 하락했다. 심지어 상대가 구두쇠였던 것으로 기록에 나와 있어도 평판이 좋으면 기꺼이 돈을 내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평판이 나쁘면 아무리 후한 사람으로 기록돼 있어도 돈을 주지 않았다.
연구팀은 "인간은 다른 사람을 직접 보는 것보다 그에 대한 정보를 듣는 것에 더 적합하도록 진화했기 때문에 가십이 그렇게 큰 힘을 발휘한다"고 설명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항상 관찰할 수가 없기 때문에 가십에 더 기대게 된다는 말이다.
물론 현실 세계는 게임처럼 단순하지 않다. 미 위스콘신대의 인류학자 케빈 크니핀(Kniffin) 교수는 "현실 세계에서는 특정인의 의견이 다른 사람보다 더 영향력을 갖게 되는 경우가 있다"며 "힘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험담 나누면 우정 돈독해져
그런데 왜 하필 가십은 나쁜 내용이 많을까. 미 오클라호마대의 제니퍼 보슨(Bosson) 교수는 지난해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제3자에 대해 자신과 똑같이 나쁜 말을 하면 더 친밀하게 여긴다는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또 과거 연구에 따르면 지위가 높은 사람에 대해서는 나쁜 내용의 가십을, 친구끼리는 좋은 가십을 주로 전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결국 정치인이나 연예인은 또래 집단의 친밀감을 높이기 위한 가십의 희생양이 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