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한국과 일본, 중국, 러시아에서 온 해양과학자들이 부산에 모였다. 선박의 균형을 잡기 위해 배 밑바닥에 넣는 선박평형수(平衡水·ballast water)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선박평형수는 세계 곳곳의 생물을 여기저기로 퍼트려 생태계를 교란하는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북미의 해파리가 유럽의 북해에서 발견되거나 유럽의 홍합이 미국 오대호에서 주인 노릇을 하는 것도 모두 선박평형수 때문이다.
◆추진력 얻으려면 선박평형수가 필수
20만t의 석유를 실은 유조선이 대양을 가로질러 간다고 하자. 직경 7~8m의 프로펠러가 수면 아래에서 바닷물을 힘차게 밀치며 전진할 것이다. 하지만 기름을 실으러 떠날 때는 유조선이 가벼워 프로펠러가 수면 위에 있게 된다. 프로펠러가 수면 위에 있으면 추진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가 없다. 이 때문에 짐이 없을 때는 출항 전에 항구에서 바닷물 7만t 가량을 길어 배 밑바닥에 싣는다. 이것이 바로 선박평형수다.
선박평형수가 들어가면 유조선이 적절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프로펠러의 추진력을 이용할 수 있다. 또 배가 물 위로 너무 떠올라 전복될 위험도 낮춰준다. 선박의 무게중심이 너무 위에 있으면 파도에 기우뚱하다 넘어질 공산이 커진다.
항구에 도착한 유조선이 석유를 싣게 되면 어떻게 될까? 이제는 반대로 석유 무게에 해당하는 만큼의 선박평형수를 버리게 된다. 가져오는 짐과 자국의 물 7만t을 교환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선박평형수로 이동하는 물이 세계적으로 연간 30억~100억t에 달한다.
◆배를 따라 이동하는 생물들
이런 선박평형수 덕분에 바닷물뿐만 아니라 매일 7000여 종의 해양 생물도 항구를 따라 이주한다. 서식지를 옮긴 생물의 대부분은 죽지만 일부는 살아남아 생태계를 교란시킨다.
1982년 북미에서만 서식하던 빗해파리(comb jelly)가 선박평형수를 따라 유럽의 북해로 유입됐다. 그곳에서 빗해파리는 어족 자원의 먹이가 되는 플랑크톤을 엄청나게 잡아먹어 최대 5000억원의 어업 손실을 발생시켰다.
미국과 캐나다의 오대호(Great Lakes)에는 1959년 이후 현재까지 130여 종의 생물이 선박평형수를 따라 유입됐다. 그 중 유럽산 홍합류는 생태계 교란뿐만 아니라 발전소나 공장의 물 흐름까지 막아 큰 문제를 일으켰다. 미국과 캐나다는 홍합 퇴치를 위해 1989~2000년까지 약 1조원 가량의 비용을 써야 했다.
국제해사기구(IMO)에 따르면 1950년대 이후 지금까지 콜레라와 유럽녹게, 아시아 다시마, 북태평양 불가사리 등이 선박평형수를 통해 세계 각지로 이주해 생태계 교란, 인체에 해로운 병원균 유입 등의 피해를 낳았다. 이로 인한 연간 피해액도 세계적으로 100조원에 달한다.
우리나라도 1950년대에 지중해가 원산지인 지중해 담치(홍합의 일종)가 들어와 왕성한 번식력으로 토종 홍합을 밀어내고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선박평형수를 통해 유입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거대한 정수기, 선박평형수 정화장치
IMO는 선박평형수로 인한 생태계 피해를 막기 위해 2004년 선박평형수 정화 규정을 도입했다. 선박평형수 1㎥에 50㎛(마이크로미터·1㎛는 100만분의 1m) 이상 크기의 생물이 10개 이하가 되도록 하고, 이 규정을 준수하지 못한 선박은 오는 2009년부터 항구에 입항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대양을 항해하는 배에는 선박평형수에서 생물을 걸러내는 정화장치 설치가 필수적이 됐다.
선박평형수를 정화하는 방법은 화학약품을 뿌리는 방식과 전류를 흘리는 방식 등 두 가지가 있다.
화학적 멸균 방식은 독일이 개발한 페라클린이라는 약품이나 오존을 뿌리는 방법이 주로 쓰인다. 전기분해 방법은 전류를 흘러 생물을 죽게 하는 방식인데, 전기분해 과정에서 발생하는 염소가 이중으로 바닷물을 정화해주는 장점이 있다. 한국해양연구원 김은찬(55) 박사는 "선박평형수 정화시설 시장은 전 세계적으로 연간 1조원에 이를 전망"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지역에 따라 선박평형수 규제가 달리 적용돼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같은 생태계 지역을 오가는 배라면 선박평형수에 들어 있는 생물도 거의 같아 굳이 규제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김 박사는 "동북아의 한·중·일 3국이 선박평형수 규제의 예외지역이 될 수 있는지도 이번 부산 모임의 주된 의제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