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이 남다른 기업들이 있다. 일제 치하 독립운동의 중심이었던 기업이나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경영하는 기업들이다. 그래서 누구보다 독립운동가를 기리고 그 후손들을 돌보는 일에 누구보다 앞장서고 있다.

올해 창립 110주년을 맞은 동화약품공업은 그 자체가 독립운동의 중심이었다. 초대 사장인 민강 선생은 1919년 회사에 상해임시정부의 국내 비밀연락처인 연통부(聯通府)를 설치, 각종 정보와 군자금을 임시정부에 전달했다.

동화약품 현대화의 기틀을 마련한 5대 사장 보당 윤창식 선생은 민족경제 자립을 목적으로 한 비밀결사체 조선산직장려계(朝鮮産織奬勵契)를 조직했으며, 독립운동단체인 신간회(新幹會) 간부로도 활동했다. 윤창식 사장의 아들인 윤광렬 현 회장도 일제 말기 학도병으로 징집됐다가 탈출해 광복군 중대장으로 활약했다.

안희제 선생이 1914년 세운 백산상회(白山商會)도 독립운동의 중심이었다. 도매상으로 출발한 백산상회는 중국과 무역을 하는 백산무역주식회사로 발전했으며, 독립운동 자금 마련과 독립운동 비밀 공작원의 연락거점 역할을 했다. 안 선생은 동화약품 민강 사장과 함께 비밀결사조직인 대동단(大同團)에서 활약했다.

1926년 유한양행을 설립한 유일한 박사도 독립운동의 선봉에 섰다. 유 박사는 1930년 후반부터 미국에 체류하면서 유럽과 중국 시장개척에 노력하는 한편,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해외한족대회'를 개최하는 등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일제 말기에는 미군 전략정보처 OSS(현 CIA의 전신)의 한국담당 고문으로 재미 한인들을 훈련시켜 국내에 침투시키는 '냅코(NAPKO)작전계획'에 참여했다. 유일한 선생은 1936년 유한양행에 국내 최초로 종업원지주제를 도입,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민족자본 형성에도 앞장섰다.

광복 후 독립운동가 후손이 세운 기업들로는 교보생명이 대표적이다. 창업주 신용호 전 회장의 부친인 신예범 선생과 형인 용국·용율씨가 모두 항일운동에 참여했다. 신창재 현 회장은 신용호 전 회장의 큰 아들.

장치혁 전 고합그룹 회장의 부친은 대한매일신보의 마지막 주필이자 민족사학자였던 장도빈 선생. 장 전 회장은 어린 시절 독립운동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만주와 시베리아 지역을 돌아다녔던 인연으로 블라디보스토크 러시아 국립극동대학에 한국학대학을 설립하기도 했다.

김호연 빙그레 회장은 백범 김구 선생의 손녀 사위로 220억원을 출연해 김구재단을 만들었으며,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회 부회장과 이봉창의사기념사업회 회장 직도 겸하고 있다. 음향기기 제조업체 가락전자 장병화 회장도 광복군으로 활약한 장이호 선생의 아들로, 민족문제연구소 이사, 대한민국 임정기념사업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