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계 펀드 '론스타'가 한국 투자에서 수조원대를 벌고도 세금을 내지 않은 것은 론스타가 일단 벨기에에 회사를 세운 뒤, 이 회사가 한국에 투자하는 형식을 취했기 때문이다. 한·벨기에 조세조약은 벨기에 법인이 한국에서 기업 주식을 거래한 경우 한국 정부가 아니라 벨기에 정부가 과세권을 갖도록 하고 있다.
론스타가 약 5조원의 투자수익을 올린 외환은행 역시 벨기에 법인이 법적인 소유주로 돼 있다. 외환은행의 '주요주주 소유 주식 보고서'에는 최대 주주가 'LSF-KEB 홀딩스'로 돼 있고, 이 회사의 주소지는 '벨기에 브뤼셀 불바드 드 라 플렌느 9번지'로 적혀 있다. 한국 내 일각에서는 이 회사가 '페이퍼 컴퍼니'(사실상 활동을 하지 않는 서류상의 회사)라고 지목하고 있다.
기자는 17일 그 주소를 찾아갔다. 도심에서 조금 비켜난 벨기에자유대학(VUB) 캠퍼스 주변 오피스 빌딩가의 건물 2층이었다. 사무실은 조용했다. 500㎡(약 150평)가 넘어 보이는 널찍한 사무실 한편에서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젊은 회계사 4~5명이 일본 투자 문제에 대한 회의를 하고 있었다.
론스타의 2인자인 엘리스 쇼트 부회장과 법률고문 마이클 톰슨의 이름이 붙어 있는 방도 있었지만, 비어 있었다. 그리 고급으로 보이지 않는 사무용 책상과 의자 1개가 전부였다.
그런데 입구에 간판이 걸린 회사 이름이 달랐다. 'LSF-KEB 홀딩스'가 아니라 '론스타 캐피털 매니지먼트'였다.
'매니징 디렉터'라는 직함의 필릴 드투르네(Philippe Detournay)씨가 기자의 취재에 응해 주었다. 그는 "맞게 찾아왔다. 우리가 LSF-KEB 홀딩스다"라며 "이 사무실에서 한국·일본 그리고 유럽 각국에 대한 론스타의 투자와 관련된 총 21개 회사를 매니징(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론스타 캐피털 매니지먼트'라는 이름을 사용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스타타워 빌딩을 소유했던 '스타홀딩스'의 주소지도 바로 여기"라고 했다. 이름만 다를 뿐 21개의 법인을 사실은 한 회사가 관리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론스타의 한국 투자와 관련해서는 ①외환은행 소유주인 'LSF-KEB 홀딩스' ②강남 스타타워를 사고 판 '스타홀딩스' ③극동건설을 보유하다 매각한 'KC홀딩스' 3개사를 모두 이곳에서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사무실 직원은 20명에 불과했다. 단순 계산으로 따지면 직원 1인이 1개 회사꼴로 담당하고, 한국 투자는 불과 3명의 직원이 맡고 있다는 얘기다.
론스타는 외환위기 이후 한국에 진출해 외환은행 인수에 1조3833억원을 들였고, 극동건설·스타타워 등을 사들이면서 10조원대를 투자했다. 3명이 10조원대 투자를 주물렀던 셈이다.
그는 "우리도 한국 사람들처럼 효율적으로 일하기 때문에 사람이 많이 필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 말을 하면서 웃지 않았다.
그는 국세청의 론스타 세무조사에 대해 "한국 국세청을 이해한다. 세금 문제를 조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는 한·벨기에 조세조약 때문에 론스타가 한국에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곤 "지금도 진행 중인 사안이라 더 이상은 언급할 수 없다"고 말을 멈췄다.
론스타는 국세청이 스타타워 빌딩 매각 차익에 대해 1017억원의 추징금을 부과한 것에 불복, 국세심판원에 이의를 제기했지만 지난 5일 기각됐다. 론스타는 법원에 소송을 낼 예정이다.
"론스타는 왜 하필 벨기에에 법인을 두고 한국 투자를 했는가"라고 묻자 핵심을 벗어난 대답이 길게 이어졌다.
"여러 이유가 있다. 브뤼셀은 비즈니스 환경이 좋다. 벨기에 사람들은 여러 언어에 능통하고 한국인들처럼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다. 론스타는 독일에 상당한 투자를 하고 있기도 하다."
그는 "존 그레이켄 회장과 엘리스 쇼트 부회장이 모두 영국 런던에 살고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한·벨기에 조세조약이 한국 진출에 어떤 유리한 점이 있는지에 대한 대답은 없었다.
그는 "나는 2주에 한 번씩 한국에 간다"면서 "한국 검찰이 외환카드 주가조작 혐의로 LSF-KEB 홀딩스를 기소, 법정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2001년 외환카드에 대한 허위 감자(減資)설을 발표해 403억원의 부당 이득을 얻었다"며 LSF-KEB 홀딩스를 기소했다.
취재 막바지에 그는 정색을 하고 기자에게 역질문을 해 왔다. "우리는 한국에서 론스타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졌으면 한다. 어떤 방법이 있겠느냐." 기자가 "어려운 질문이다"라고 하니 "나도 매우 어려운 질문이란 걸 알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