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에 사는 S씨는 1년 전 일본 이동통신회사 KDDI의 서비스에 가입하면서 흰색 산요 휴대폰을 공짜로 얻었다. KDDI가 휴대폰 비용을 S씨 대신 지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였다. S씨는 월 평균 10만원이 넘는 요금이 나와, 휴대폰을 사용할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는다. 휴대폰엔 음악감상·카메라 등 많은 기능이 있지만 실제 사용하는 것은 음성통화와 문자메시지 보내기 또는 간혹 인터넷에 접속해 날씨정보를 확인하는 정도다. S씨는 "휴대폰을 공짜로 받은 대신 비싼 사용료를 물고 있다"면서, "기능이 단순해도 통화요금이 저렴한 휴대폰 서비스가 나오면 곧바로 선택하겠다"고 말했다.
요즘 일본 정부가 이동통신사들의 휴대폰(단말기) 보조금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고 있다. 휴대폰 보조금이 결국 통신요금에 전가돼 요금을 높이는 결과를 낳고, 소비자와 통신업계, 휴대폰 제조업 모두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일본 정부가 보조금 정책을 개선하는데 성공할 수 있을까.
휴대폰 보조금 조사하는 일본 정부
요즘 일본에서 팔리는 최신 휴대폰에는 이메일·인터넷 검색, 디지털카메라, 내비게이션(길 안내장치), 도난 경보, 바코드 인식, MP3감상, TV시청, 휴대용 게임 등 다양한 기능이 들어있다.
이들 최신 휴대폰 한대의 가격은 보통 50만원이 넘는다. 일본 1위 이동통신 회사 NTT도코모는 소비자들이 과도한 가격에 놀라지 않도록 휴대폰 1대당 30만원 정도를 보조금으로 제공한다. NTT도코모에 가입하면 50만원짜리 최신 휴대폰을 20만원에 살 수 있다는 말이다.
일본 2위 이동통신 업체 KDDI와 3위 소프트뱅크는 더욱 공격적이다. NTT도코모보다 보조금이 6만원 이상 많다. 가입자가 받을 수 있는 보조금이 총 36만원을 넘는다.
이뿐만 아니다. 새로 이동통신에 가입하는 소비자에겐 출시된 지 1년이 넘은 재고 휴대폰을 공짜로 나눠 준다.
전문가들은 일본의 이동통신 업체들이 연간 지출하는 단말기 보조금이 약 15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일본 통신업체들은 이렇게 지출한 막대한 휴대폰 보조금을 어떻게 회수할까. 물론 이것은 공짜가 아니다. 단말기 보조금은 휴대폰 요금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일본 소비자 단체는 휴대폰 통화료가 미국보다 최대 5배 비싸다고 지적한다.
이 때문에 일본 정부는 올 1월부터 휴대폰 보조금이 소비자에게 유익한지, 해로운지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조사 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향후 통신정책이 크게 변할 수 있어, 업계 전체가 예의 주시하고 있다. 휴대폰을 공짜로 받고 비싼 통화료를 낼 것인지, 아니면 저렴한 휴대폰을 사서 쓰면서 통화료를 낮출 것인지 일본 소비자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휴대폰 보조금에 얽힌 다양한 문제들
휴대폰 보조금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이동통신 업체들은 보조금이 최신 기술을 선호하는 일본의 9700만 휴대폰 이용자를 만족시키는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보조금 덕택에 소비자들이 첨단 기능의 휴대폰을 낮은 가격에 구입해 사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첨단 휴대폰 소비를 촉진시켜 관련산업 발전에 기여한다는 명분도 있다. 국내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의 주장과 비슷한 맥락이다.
NTT도코모는 정부 조사단에 제출한 답변에서 보조금 때문에 휴대폰이 저가에 판매되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보조금을 낮춰 휴대폰 가격을 40만~50만원으로 올릴 경우 판매가 급격히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반대론도 강하다. 휴대폰 요금을 통화료에 전가하면 결국은 소비자 부담이 커진다는 것이다. 휴대폰 제조사들이 경쟁적으로 비싼 휴대폰을 만들어 평균 가격을 올린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히토츠바시 대학의 제프리 펑크(Funk) 교수는 "다양한 기능에 관심이 없는 소비자는 요금이 싸고 기능이 단순한 휴대폰을 원한다"고 지적한다.
보조금을 없애는 것은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이동통신 시장에 신규 사업자가 늘어날 수 있도록 진입 장벽을 낮추고, 접속료 인하·송신탑 공유·로밍 등의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국내에서도 최근 휴대폰 보조금과 이동통신 요금인하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SK텔레콤·KTF·LG텔레콤 등 이동통신 3사가 지난해 가입자 1명을 늘리는데 사용한 비용은 평균 216만원에 이른다. 이중 상당부분이 휴대폰 보조금이다. 올해는 영상통화가 가능한 3세대 이동통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동통신 업계의 비용은 더욱 증가할 전망이다. 이 때문에 소비자단체와 국회를 중심으로 휴대전화 요금인하 압력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유럽 등 대부분의 나라는 휴대폰 보조금을 허용하고 있다. 국내에서 50만원이 넘는 삼성·LG전자의 최신 휴대폰을 외국에서 50~100달러에 파는 것은 대부분 이동통신사가 지급하는 보조금 때문에 가능하다.
키워드… 휴대폰(단말기) 보조금
이동통신 서비스 회사가 가입자의 휴대폰(단말기) 구매비용을 일부 보조해 주는 것. 통신회사는 수십만원 하는 휴대폰을 정가보다 훨씬 싸게 제공해 가입자를 늘리는 수단으로 보조금을 사용한다. 정통부는 통신업체의 과열경쟁을 막기 위해 한동안 보조금 자체를 엄격히 금지했으나, 현재는 가입자의 월평균 통화료와 가입기간에 따라 업체가 지급할 수 있는 보조금 상한선을 정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