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2년 5월 10일. 영국계 증권사 UBS워버그는 D램 가격 하락을 이유로 삼성전자 주식 1200억원어치를 팔아 치웠다. 그날 삼성전자 주가가 8% 가까이 내렸음은 물론, 주식시장 전체가 영향을 받아 코스피지수가 2% 이상 폭락했다. 삼성전자 한 종목이 한국 증시를 쥐락펴락하던 시대였다.
그러나 5년이 지난 2007년 5월. 삼성전자는 닷새만 빼고 연일 내리막을 걸으며 5% 넘게 떨어졌지만, 코스피지수는 28일도 사상최고치 행진을 계속하며 1650을 훌쩍 넘겼다.
이에 따라 28일 삼성전자 시가총액(주가에 주식 수를 곱한 금액)이 전체 증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년 만에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삼성전자=한국증시'이던 시대의 막을 내리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한국 증시가 삼성전자로부터 '독립(獨立)'을 선언한 것이다.
◆삼성전자 시총 비중 10% 아래로
28일 삼성전자 주가는 0.7% 하락, 시가총액이 80조7200억원으로 줄었다. 반면 코스피지수는 13포인트(0.8%) 포인트 상승한 1657.91을 기록, 시가총액이 814조5120억원으로 늘어났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가 유가증권시장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9%로 줄었다. 삼성전자 비중이 한 자릿수로 떨어진 건 1999년 10월 이후 7년 7개월 만이다.
이 비율은 1990년대 말 IT 붐과 함께 꾸준히 늘어 2004년 4월23일엔 최고치인 23.0%를 기록하기도 했다. 당시엔 한국 증시의 4분의1을 삼성전자 한 종목이 차지했던 셈이다.
◆왜 부진한가?
한국 증시에서 삼성전자 영향력이 떨어진 것은, 세계 IT(정보기술) 경기 불황에 따른 삼성전자 실적 부진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또 최근 몇 년 사이 조선·기계 등 중국 경제 성장 관련 수혜주와 금융주가 급등세를 보이면서 상대적으로 삼성전자 영향력은 급격히 감소됐다.
포스코의 경우 증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05년 말 2.7%이던 것이 최근 4.7%로 2배 가까이 늘어났다. 현대중공업도 주가가 급등하며 0.9%에서 2.7%로 증가했다.
지난 2월엔 삼성전자가 속해 있는 전기·전자 업종이 8년 만에 시가총액 1위 자리를 금융업종에 내주기도 했다. 금융업은 최근 4년 사이 시가총액이 세 배 가까이 늘어나 18.0%에 달했다.
◆산업 구조 다양화 측면에서 긍정적
한화증권 이종우 리서치센터장은 "국내 증시에서 삼성전자 비중 하락은 제조업과 IT로 대표되던 한국 산업구조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말했다.
한국밸류자산운용 이채원 전무도 "특정 산업, 종목에 의존하는 경제 구조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외국은 금융·헬스 등의 다양한 업종이 고루 분산돼 있고 이는 경제 선진화를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IT 업황이 개선될 경우 삼성전자 주가가 다시 오를 수는 있겠지만, 과거와 같은 영향력을 다시 찾는 것은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동부증권 신성호 상무는 "그동안 한국 증시는 '형님(삼성전자)' 눈치를 봐야 했고 형님의 뜻에 따라 움직였지만, 이제는 삼성전자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할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