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매달리기 高手들

도로를 걷기보다 빌딩을 기어오르고 거꾸로 매달리기를 더 좋아하는 사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스파이더맨3’이 1일 우리나라에서 개봉된다. 하지만 봄철 계곡에는 스파이더맨을 비웃는 고수(高手)들이 즐비하다. 과학자들은 거꾸로 매달린 청개구리와 도마뱀의 발바닥을 통해 진짜 스파이더맨을 만들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마찰력으로 매달리는 청개구리

손가락 끝에 매달린 앙증맞은 청개구리. 그러나 몸집이 작다고 얕보면 큰 코 다친다. 몇m짜리 나무만 올라가도 자기 몸 길이의 백배 이상까지 올라가는 셈이기 때문이다. 비밀은 발바닥에서 분비되는 끈끈한 점액(粘液)에 있다. 쉽게 말해 발바닥에 풀을 바르고 그 접착력으로 높은 가지를 기어오른다.

그런데 만약 경사도가 90도를 넘어 아예 거꾸로 매달리는 상황이 되면 어떻게 될까. 일반적으로 점액은 발바닥과 천장 표면 사이에 마찰력이 생기는 것을 방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점액의 접착력만으로는 중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청개구리는 거꾸로도 잘 매달린다. 영국 글래스고대의 존 바네스 박사 연구팀은 실험을 통해 이런 모순을 해결하는 청개구리의 전략을 밝혀냈다.

연구팀은 투명한 유리판에 청개구리를 올려놓고 서서히 회전시켰다. 바닥이 천장이 되게 180도 유리판을 돌리자 청개구리는 다리를 완전히 뻗어 유리판과 평행하게 만들었다.

자연에는 스파이더맨보다 더 뛰어난 거꾸로 매달리기 고수들이 있다. 청개구리는 발바닥에서 분비되는 점액을 이용해 나무에 매달리며, 게코 도마뱀은 발바닥에 나있는 수십억 개의 미세 털들로 천장에 달라붙는다.

바네스 박사팀은 “청개구리는 발바닥을 천장과 평행하게 함으로써 마찰력을 증가시킨다”고 설명했다. 실험장면을 찍은 영상을 보면 이때 발바닥의 점액층이 매우 얇아져서 마찰력을 발생시키는 것을 볼 수 있다. 청개구리는 점액의 접착력과 마찰력을 동시에 사용해 거꾸로 매달린 것이다.

청개구리가 나뭇가지나 잎에 붙어있다가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는 발가락을 세운다. 이는 일상생활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투명 테이프의 끝을 잡고 수직으로 잡아당기면 쉽게 떨어진다. 그러나 테이프 끝을 수평방향으로 당기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마찰력 때문이다. 이번 연구결과는 지난달 열린 실험생물학회 연례 학술대회에서 발표됐다.

◆도마뱀은 발바닥의 미세 털 이용

게코(gecko) 도마뱀 역시 거꾸로 매달리기 선수다. 그러나 청개구리와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방법을 쓴다. 도마뱀의 발바닥에는 접착성 점액 대신 머리카락 굵기의 1000분의 1정도인 아주 작은 털들이 수십억 개나 나있다. 지난 2000년 미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연구팀은 이 털들과 물체 표면 사이에서 '반데르발스 힘'이라는 끌어당기는 힘이 작용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측정 결과 털 하나하나의 힘은 그리 크지 않지만 모이면 어린 아이가 매달릴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 게코 도마뱀의 발바닥은 새로운 접착제 개발에 응용되고 있다. 2003년 미국과 영국의 과학자들은 잇따라 게코 도마뱀의 발바닥에 나있는 미세 털 구조를 인공적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당시 영국 맨체스터대의 안드레 게임 교수가 ‘네이처 머티리얼즈’에 발표한 인공 도마뱀 발바닥은 사람도 천장에 붙어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 미국 카네기멜론대의 메틴 시티 교수팀은 미 국방부의 지원을 받아 로봇업체 아이로봇(iRobot)과 함께 인공 도마뱀 발바닥을 가진 로봇을 개발 중이다. 이 로봇은 우주선 표면에 매달려 각종 작업을 하게 된다.

◆자연 모방한 접착제 개발 잇따라

국내에서는 서울대 서갑양 교수가 최근 게코 도마뱀을 모방한 테이프를 개발했다. 한국기계연구원 김완두 박사 연구팀도 관련 연구를 진행 중이다. 미국 스탠퍼드대 박사 과정의 김상배씨는 지난해 벽을 타고 오를 수 있는 인공 도마뱀 로봇을 개발, 타임지가 뽑은 2006년 최고의 발명품에 선정되기도 했다.

개구리의 점액도 모방 대상이다. 지난 2004년 호주의 과학자들은 개구리 피부에서 분비되는 점액을 이용해 인간의 손상된 무릎 연골을 붙일 수 있음을 확인했다. 점액은 굳은 후에도 잘 휘기 때문에 연골에 안성맞춤이라고 연구팀은 밝혔다. 또한 굳은 막에 나 있는 작은 구멍 사이로 공기와 영양소가 통과할 수 있기 때문에 상처부위가 낫는 데도 도움을 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