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로 재현한 화가들의 시선

화가의 몸에서 가장 중요한 곳은 아무래도 눈일 것이다. 그런데 모네, 드가, 렘브란트처럼 일반인에게 잘 알려진 화가들은 그 소중한 눈이 병에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림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과연 그들은 세상을 어떻게 보았을까. 미 스탠퍼드대 의대의 안과의사 마이클 마머 교수는 안과 질환이 화가들에게 미친 영향을 연구해 지금까지 200편이 넘는 논문을 발표했다.

모네의 1899년 작‘연못’①과 1912년 작‘지베르니의 일본풍 다리’②. 모두 프랑스 지베르니 연못③(현재 사진)을 그린 것이지만, 백내장에 걸려 고생하던 시기에 그린 그림 ②는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고 색채도 어둡고 흐리다. 사진④는 연못 사진③을 백내장에 걸린 모네의 눈에 비친 모습으로 수정한 것이다. 모네는 1923년 백내장 수술을 받고 나서야 원래의 화풍을 회복했다. 미 스탠퍼드대 제공

그는 작품에 나오는 색체와 묘사법을 분석해 그들이 앓았던 질병과의 연관성을 주로 분석해왔다. 그렇다면 병을 앓았을 때 그린 그림은 화가의 눈에 어떻게 보였을까. 스탠퍼드대는 지난 10일 보도자료에서 “마머 교수가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눈병에 걸린 화가들의 시선을 재현해냈다”고 밝혔다.

◆보이지 않는 여인 그려

인상주의의 대가 드가는 욕실에 있는 여인의 그림을 많이 그렸다. 드가는 1886년 작(作) ‘머리를 빗는 여인’에서 목욕탕에서 방금 나온 듯한 여인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머리를 빗는 모습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묘사했다. 그런데 1905년 작 ‘머리를 말리는 여인’을 보면 과거에 비해 화면 전체가 흐릿해 붓 터치를 파악하기 힘들 정도다.

마머 교수는 같은 질환의 환자들과 드가의 병력기록을 토대로 1905년 작품을 그릴 당시 그의 시력이 0.1에서 0.05 사이였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포토샵 프로그램으로 이 정도 시력을 가진 사람이 1905년 작품을 볼 때 어떤 모양이 될지를 재현했다.

그 결과, 1905년 작품은 우리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흐릿해졌다. 전체 윤곽만 보일 뿐 얼굴이나 머리칼은 거의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즉 드가는 자신의 눈에 보이는 대로, 우리가 지금 보는 것보다 훨씬 흐릿하게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드가는 1860년에서 1910년 사이에 망막 질환을 앓았다. 1870년대까지는 얼굴의 각 부위나 수건과 옷의 주름까지 세밀하게 묘사했다. 그러던 것이 1880년대 이후 세밀한 묘사는 점점 사라져 갔으며, 특히 병이 악화된 1900년 이후로는 모호함이 극도에 달했다.

◆노란 잎의 수련

미술사학자들은 화풍의 변화를 인상주의에 심취하면서 자연스럽게 일어난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화가가 앓았던 안과질환의 탓으로 해석한 것이다. 이는 모네에게서도 확인할 수 있다.

마머 교수는 지난해 12월 ‘안과학 목록’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드가와 함께 모네도 분석했다. 두 화가 외에도 안과 질환에 시달린 사람들이 많다. 그렇지만 이 둘은 병력에 대한 기록이 비교적 잘 남아있으며, 작가 자신이 직접 자신의 상태를 호소한 적도 많기 때문이다.

드가의 1886년 작‘머리를 빗는 여인’①과 1905년 작 ‘머리를 말리는 여인’②. 망막질환으로 시력이 나빠지면서 얼굴이나 옷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사라졌다. 그림③은 포토샵 프로그램으로 1905년 당시 드가의 눈으로 본‘머리를 말리는 여인’을 재현한 것이다. 망막질환에 시달리던 드가는 자신의 그림을 이렇게 흐릿하게 볼 수 밖에 없었다. 미 스탠퍼드대 제공

모네는 백내장을 10여 년 앓다가 1923년 수술을 받았다. 그의 유명한 ‘수련(睡蓮)’ 연작을 보면 백내장을 앓기 전에는 빛이 가득한 초록색이 주를 이루지만, 병에 걸렸을 때는 흐릿하고 어두운 노란 색조가 많이 쓰였음을 알 수 있다. 백내장에 걸리면 노란색은 잘 보지만 파란색 계통은 잘 보지 못한다.

마머 교수는 모네가 그린 프랑스 지베르니 연못의 현재 사진을 백내장에 걸렸을 당시 시력으로 봤을 때로 만들었다. 그 결과 모네가 백내장에 걸렸을 때 그린 그림처럼 연못은 거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고 색채도 어둡고 칙칙해졌다.

고려대 의대 법의학교실 문국진 명예교수는 “모네는 백내장에 걸린 눈에 보인 그대로 그림을 그린 것”이라며 “백내장 수술 뒤에는 원래의 화풍을 회복했다”고 설명했다.

장애를 극복한 화가들

유명한 화가 중에는 눈에 이상이 있었던 사람이 의외로 많다. 2004년 미국 하버드 의대의 리빙스턴 교수팀은 의학전문지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에 렘브란트가 사시였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렘브란트가 그린 자화상을 분석해 오른쪽 눈과 왼쪽 눈이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음을 확인, 그가 사시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고흐의 그림에 나타나는 소용돌이도 질병의 영향이라는 분석이 많다. 색소성 망막염에 걸리면 눈앞에 소용돌이가 어른거린다고 한다. 또 문국진 교수는 저서 ‘명화로 보는 사건’에서 “고흐의 그림에 노란색이 유독 많이 쓰인 것은 앱생트란 독한 술을 즐기다 사물이 노랗게 보이는 황시증(黃視症)을 앓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들의 그림이 명작으로 남은 것은 그 모든 장애를 극복한 예술 혼 때문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