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저서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서 이렇게 썼다. "종전의 세계화는 '운송 비용' 하락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철도·증기선·자동차 발명 덕분에 사람들은 더 저렴한 비용으로 더 많은 곳을 빨리 갈 수 있게 됐다. 반면 오늘날 세계화는 '통신 비용' 하락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인터넷·위성·광케이블 등 신기술은 세계를 더 단단하고 촘촘하게 엮어주고 있다."
세계적 통신장비 업체인 미국 시스코(Cisco)가 최근 발표한 차세대 영상회의 시스템인 텔레프레즌스(TelePresence)는 통신 기술의 발전이 세계를 어떻게 더 단단하고 촘촘하게 엮는지를 엿보게 했다.
지구 반대편 CEO가 코 앞에 등장
텔레프레즌스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이 영상을 통해 얼굴을 보며 회의하는 시스템이다. 예전에도 영상회의 시스템이 있었지만, 음성 품질이나 화면 화질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시스코가 이번에 개발한 텔레프레즌스는 3개의 풀 HD급 화면(각 65인치)에 4개 채널의 음향 설비 등을 갖췄다. PDP 화면에 등장하는 인물은 실제 사람 크기와 똑같다. 각 화면에는 2명까지 나온다. 화면마다 다른 나라를 연결할 수 있기 때문에 최대 4개 지역이 동시 회의를 진행할 수 있다.
시스코 CEO(최고경영자)인 존 체임버스 회장은 미국 새너제이 본사에 앉아, 홍콩 지사를 찾은 기자들과 화상 인터뷰를 했다. 그는 홍콩에서 1만1200㎞나 떨어져 있었지만 기자들 눈을 일일이 맞추며 질문에 답했다.
체임버스 회장은 "커뮤니케이션의 60% 이상이 표정 등 비언어적 요소로 이뤄진다"며 "이번 제품은 상대방이 시선·표정·몸짓으로 말하는 것까지 전달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포커 게임이나 한 판 할까요"라며 좌중을 웃겼다.
20여분 간의 화상 인터뷰 동안 '화면 끊김'은 없었다. 오라프 기술이사는 "동영상 압축기술과 네트워크 기술이 핵심"이라고 했다. 초보적 형태인 화상전화는 집에서도 가능하지만, 실제 사람과 코 앞에서 대화하는 듯한 느낌은 달랐다.
가격 얼마나 떨어질까?
3개 화면으로 구성된 한 세트 가격은 약 3억원(30만달러). 1대1 대화에 적합한 1개 화면짜리도 8000만원대(8만달러)다. 아직 일반 가정에서 사용하기 어려운 가격이다. 앞으로 스크린 가격이 계속 내려가고, 화상 압축기술이 더욱 발전하면 가정용 시스템 개발도 가능하다고 시스코측은 밝혔다.
화상회의 시스템은 글로벌 사업이 많은 기업일수록 경쟁력이 있다. 3억원짜리 시스템을 두 지역(총 6억원)에 설치하면, 각 지역당 6명씩 모두 12명이 회의에 참석할 수 있다. 서울에서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6명이 출장을 떠난다고 하자. 6명의 왕복 항공료(비즈니스 클래스)는 2873만원이고, 6명의 1일 숙식비(1급 호텔)는 252만원쯤이라고 시스코측은 계산했다. 하루만 자고 돌아오는 회의를 강행하더라도 3000만원 이상이 든다. 단순 계산으로 현지 회의 20번 비용이면 설치할 수 있다.
영상회의는 회의 장소까지 오가면서 낭비하는 시간 등 비효율도 크게 줄일 수 있다. 때문에 최근 들어선 국내 기업이나 공공기관들도 영상회의 시스템을 속속 도입하고 있는 추세다.
어디에 응용될까?
체임버스 회장은 "원격 의료상담"을 가장 먼저 언급했다. 풀 HD급 화질 덕분에 환자의 혓바닥 색깔이나 환부의 상태를 의사가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 환자 체온만 잴 수 있으면 미국 의사가 의사가 한국 환자에게 처방전을 쓸 수도 있다.
금융 상담도 가능하다. 외국 전문가가 고객 눈 앞에서 각종 차트와 표를 보여주며 실시간으로 투자 종목 등을 추천할 수 있다. 이밖에 행정·고객 상담·원격 인터뷰 등에도 유용하다. 호주의 한 방송기자는 65인치 화면에 마이크를 갖다대며 인터뷰를 시도하는 모습을 찍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