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영국에서는 인공수정된 배아에서 질병 유전자를 갖지 않은 것만 골라내 자궁에 착상시킨 이른바 '맞춤 아기'가 세계 최초로 태어났다. 이에 대해 유전 질환을 가진 부모도 마음 놓고 아기를 낳을 수 있게 됐다는 긍정적 평가와, 질병 유전자를 가졌다는 이유로 하나의 생명인 배아를 파괴했다는 비판이 엇갈리고 있다. 이제 아기도 골라 낳는 시대가 오는 것일까.
◆수천 가지 질병 유전자 검사 가능
인공수정에서는 배란촉진제를 사용해 한 번에 여러 개의 난자를 생산하게 한다. 다수의 수정란을 만들어 임신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서다. 그런데 인공수정된 배아 모두가 자궁에 착상되는 것은 아니다. 가장 건강한 배아만 착상시킨다고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다른 이유로 배아를 골라낼 수 있는 여유가 있는 것이다.

영국의 맞춤 아기 부모는 난치병인 낭포성 섬유증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미 이 병에 걸려 고생하는 다섯 살 난 쌍둥이 딸을 두고 있었다. 쌍둥이의 부모는 인공수정된 배아를 자궁에 착상하기 전에 '착상 전 유전자 진단(PGH·pre-implantation genetic haplotyping)' 검사를 받았다.

배아에 대한 유전자 검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미국과 유럽에서는 또 다른 착상 전 유전자 진단인 'PGD(pre-implantation genetic diagnosis)'가 보편화돼 있다. PGD는 주로 염색체 수나 구조에 이상이 있는 선천적인 유전질환 환자들이 유전적으로 정상적인 아이를 임신할 수 있도록 돕는 기술이다. 인공수정 배아가 8세포기의 초기 단계에 도달하게 되면 한두 개의 세포를 추출해 DNA 검사를 한다.

이에 비해 영국 가이스 앤드 성 토머스 병원이 지난 6월 처음 발표한 PGH는 배아에서 추출한 DNA를 수백만 번 이상 증폭시켜 검사를 하기 때문에 PGD보다 30배나 많은 최대 6000종의 질병을 판별해낼 수 있다. 또한 PGD는 기능이 알려진 유전자의 돌연변이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PGH는 배아세포의 전체 유전자 정보를 부모나 친지와 비교하기 때문에 질병을 일으키는 유전자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해도 질병이 있는 배아를 판별해낼 수 있다고 연구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생명윤리 논란 일으켜
그러나 착상 전 유전자 검사는 부적합 판정을 받은 배아를 파괴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생명윤리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동일한 질병을 가진 환자를 부적합한 인간으로까지 여기게 할 수 있다는 문제점도 지적되고 있다.

가톨릭의대 구인회 교수(인문사회과학교실)는 "유전자 치료를 금지한 상태에서 배아와 태아에 대한 유전자 검사를 허용하는 것은 배아의 폐기나 태아의 낙태를 조장하는 일밖에 되지 않는다"며 "유전자 치료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유전자 검사도 금지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우리나라 생명윤리법은 대통령령이 정하는 63가지 희귀유전질환에 대해 배아와 태아의 유전자 검사를 허용하고 있지만 태아나 배아에 대한 유전자 치료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치료가 가능하지 않은 상황에서 배아가 유전질환을 갖고 있다면 폐기하는 것이 불 보듯 뻔하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공수정 시술에서 유전질환을 가지고 있는 배아를 선별하는 데 대한 뚜렷한 법률 조항이 없는 상태다.

반면 유전질환을 가진 환자들은 유전자 검사 대상 질환을 더욱 늘려야 하며, 부모에게 유전자 검사로 질병유전자를 갖지 않은 인공수정 배아를 선택할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선 성 감별로도 많이 이용
인공수정 배아에 대한 유전자 검사는 미국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 뉴욕타임스지는 지난 9월 "인공수정 배아에 대한 착상 전 유전자 검사가 늘고 있다"며 "유전자 검사에 들어가는 엄청난 비용이 사회적 차별을 가져올 수 있으며, 유전자 검사를 위해 배아의 세포를 떼내는 일이 나중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유전자 검사가 태아의 성(性)을 고르는 데 많이 쓰이는 것이 논란거리다. 최근 조사에 의하면 미국에서 이뤄지는 착상 전 유전자 검사의 9%는 성 감별을 위한 것이며 주로 딸을 골라 낳는 데 이용된다. 논란이 일자 최근엔 미국에서도 성 감별이 성비(性比)를 훼손할 수 있다며 아들이 있는 경우에만 딸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제한 조치를 두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미국의 산부인과 절반에서는 이 같은 제한 조치를 따르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전자 성 감별은 우리나라와 영국, 호주 등에서는 금지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