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들이 31일 아프리카 북부 리비아에서 벌어질 일을 주시하고 있다. 리비아 대법원은 이날 400명 이상의 어린이들에게 에이즈를 감염시켰다는 혐의로 총살형을 구형받은 불가리아인 간호사 4명과 팔레스타인 의사에 대한 마지막 재판을 진행한다. 검찰은 계속 총살형을 주장하고 있으나, 과학자들은 고문에 의한 진술 외에 어떤 증거도 없으며 에이즈 바이러스를 분석한 결과도 이들이 무죄임을 입증한다면서 석방을 주장하고 있다. 진실은 무엇인가?
◆426명 어린이에게 에이즈 주사 혐의
1999년 리비아 검찰은 북부 뱅가지의 한 병원에서 어린이 426명에게 에이즈 바이러스를 주입한 혐의로 당시 이 병원에서 근무하던 다섯 명의 외국인 의료진을 구속했다. 2004년 현지 형사법원은 이들에게 총살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리비아 대법원은 지난해 말 의료진이 고문을 받아 허위진술을 했다고 법정에서 밝히자 재판이 공정하지 못했다며 재심을 지시했다. 그동안 에이즈에 감염된 어린이 50여명이 사망했다. 검찰은 올 8월 다시 이들에게 총살형을 구형했으며, 대법원은 마지막 재판 후 늦어도 1주일 이내 최종 판결을 내릴 전망이다.
대법원의 판결이 목전에 다가오자 전세계 과학자들은 잇따라 성명을 내고 의료인들의 무죄 방면을 주장했다. 에이즈 바이러스의 공동 발견자인 미(美) 국립암연구소의 로버트 갈로 등 44명의 과학자들은 지난주 사이언스지(誌)에 '리비아 당국이 열악한 의료체계에서 비롯된 사고를 숨기기 위한 희생양으로 의료진을 삼으려 한다'고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사이언스와 함께 과학학술지 양대 산맥인 네이처도 지난주 리비아 검찰측의 주장을 담은 자료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의료인들에게 혐의를 둘 아무런 증거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영국 왕립학회와 미 뉴욕과학아카데미, 유럽의학아카데미연합도 리비아 정부에 의료인들의 석방을 요청하는 공개서한을 채택했다.
◆의료인 오기 이전 이미 감염돼
2003년 리비아 법원은 에이즈 바이러스의 공동발견자인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 뤽 몽타니에 박사와 이탈리아의 에이즈 연구자인 비토리오 코리찌 박사에게 이번 사건을 조사하도록 요청했다. 연구자들은 조사 결과 에이즈 감염은 병원의 열악한 위생상태에서 비롯된 것이며 외국 의료인들이 병원에 오기 전에 감염이 시작됐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법원은 리비아 전문가들의 반대 의견을 들어 이 보고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리비아 전문가들은 주사기를 다시 사용했다는 기록이 없다며, 몽타니에 박사팀의 보고서를 반박했다.
그러나 몽타니에 박사팀의 보고서는 이후 다른 과학자들의 분석결과에서도 입증됐다. 스위스 제네바대의 뤽 페렝 박사는 1998년 9월 채취된 148명의 에이즈 감염 어린이들과 46명의 부모 혈액을 분석한 결과, 에이즈 바이러스의 단백질은 감염된 지 1년이 넘은 바이러스와 같은 형태를 보였다고 네이처지에 밝혔다. 즉 어린이들은 의료진이 1998년 3월 리비아에 도착하기 전인 1997년 9월 이전에 에이즈에 감염됐다는 것이다.
혈액 분석에서는 에이즈 감염 어린이들의 절반이 B형, C형 간염에도 걸려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페렝 박사는 "만약 의료인들이 에이즈 바이러스를 주사한 것이라면 어린이들이 걸린 간염 바이러스도 같은 형태일 것"이라며 "실제로는 위생상태가 열악한 병원에서 수혈 등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에이즈와 간염에 감염됐기 때문에 서로 다른 형태를 보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위로금으로 극적 타결도 가능
일부에서는 이번 사건이 돈으로 해결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작년 말 리비아 대법원의 재심 결정은, 리비아와 유럽연합(EU)·미국간 협상을 통해 리비아에 에이즈로 피해를 입은 어린이 가족을 돕기 위한 구호기금을 마련키로 결정한지 3일 뒤에 나왔다. 리비아 정부도 서방 국가들이 피해자 가족들에게 57억달러에 이르는 위로금을 지불한다면 사건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