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 실험 발표 이후 외국인들이 한국 증시에서 왕성한 식욕을 과시하고 있다.
외국인들은 북한 외무성이 지난 3일 오후 6시 핵 실험 계획을 공식 선언한 다음날인 4일 995억원어치를 순매수(주식을 산 금액에서 판 금액을 뺀 것)한 데 이어, 추석연휴 직후 핵 실험을 발표한 9일에는 4777억원, 10일에도 1194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핵실험 장세가 시작된 후 증시가 열린 사흘간 7000억원에 가까운 주식을 사들인 것이다.


같은 기간, 개인 투자자들은 7067억원어치를 팔았고, 국내 기관들도 661억원을 사는 데 그쳤다. 외국인들은 11일 2차 핵실험 소동 와중에서도 약 200억원을 순매수했다.

그들이 지난 5월부터 9월까지 내다판 14조원과 비교하면 아직은 적은 액수다. 하지만 한국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증폭된 '핵 폭풍' 상황에서 외국인들이 강한 매수세를 보였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과연 그들은 무슨 주식을 샀을까?

◆어떤 주식을 샀나=한마디로 요약하면, 외국인들은 핵 위협에도 견뎌낼 만한 '실적 좋은 국가대표 우량주'를 선택했다. 지난 4일부터 10일까지 외국인이 가장 많이 산 종목은 포스코로 735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포스코는 3분기에 1조2000억원대의 양호한 영업이익이 예상되고 있다. 세계 철강산업의 구조조정을 주도할 수 있는 선도기업이란 점에서 외국인들의 '사자' 주문이 몰린 것 같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외국인 매수세에 힘입어 이 기간 포스코 주가는 0.82% 올랐다.

외국인들은 국민은행(523억원), 한국전력(512억원), 현대중공업(480억원), 대한통운(474억원) 주식도 많이 샀다. 국민은행 역시 3분기 실적이 양호할 것으로 추정되고 한국전력도 1조4000억원대 순익이 기대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조선업 호황에 따른 최대 수혜주다. 외국인들은 같은 조선주인 삼성중공업도 310억원 순매수했다. 대한통운은 내년 매각을 앞두고 현 대주주인 골드만삭스와 국내 인수 희망 업체들 사이에 물밑 지분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외국인들이 M&A 호재를 봤다는 얘기다.

◆왜 사나=익명을 요구한 일본계 증권사의 한 임원은 "외국인들도 이제 한국에 대해서 알 만큼 안다. 북핵사태가 터져도 고객 문의전화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북핵 이슈 자체로는 더 이상 새로운 악재가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A증권사 임원은 "요즘 외국인 돈을 굴리는 펀드매니저의 절반 이상이 한국 교포거나 한국인"이라며 "전쟁이 나지 않는 한 한국 주식은 언젠가 다시 오름세를 탈 것이고, 주가가 떨어졌을 때 우량주를 사 차액을 남기겠다는 것이 외국인들의 기본 생각"이라고 말했다. 외국인들은 지난 1993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선언 이후 9차례에 걸친 북한 관련 악재 속에서 5번이나 주식을 순매수했고, 그중 3번은 한 달 만에 주가가 올라 짭짤한 수익을 거뒀다.

◆"단기 매수에 그칠 수도"=전문가들은 외국인들의 최근 매수세가 단기 급락에 따른 반발매수일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즉 한국경제나 주식시장의 미래를 좋게 보고 장기적으로 매수에 나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메릴린치증권의 이남우 전무는 "외국인 투자자들을 만나보면 요즘 한국경제를 외환위기 이후 가장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며 "최근 며칠간의 반발매수를 가지고 외국인이 '바이 코리아'에 나섰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크레디트스위스증권의 윤석 전무도 "주가 하락에 따른 단기적인 매수세일 뿐"이라며 "요즘 미국 등 국제증시 상황이 좋다 보니 한국에도 펀드자금이 몰리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