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에서 20년 넘게 화폐디자인을 담당하고 퇴직한 인사가 "현재 유통중인 주화 디자인 체계는 우리나라 유통 주화 가운데 가장 졸작"이라고 주장했다고 21일 연합뉴스 등이 보도했다.

조병수 전(前) 한양대 디자인대학 겸임교수는 자신이 최근 집필한 단행본 `우리나라 기념주화(㈜오성K&C 출간)'에서 이같이 밝혔다.

조 전 교수는 "1982년 6월 500원짜리 주화 발행 후 83년 1월 나머지 1원, 5원, 10원, 50원, 100원 주화 모두의 디자인을 바꿔 신체계 주화를 도입했으나 사전 면밀한 연구 검토가 부족한 상태에서 실적위주로 단시일내에 발행을 추진, 디자인에서부터 제조에 이르기까지 많은 문제점을 남겨 우리나라 주화중에서 가장 조악한 화폐로 평가받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500원화를 예로 들면서 "디자인 소재로 두루미(학) 말고도 의의가 있고 미적 감각을 가진 소재가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에 15종이 분포한 두루미과 가운데 어떤 종류인지도 알 수 없는 두루미가 선정됐고 세부 묘사도 사실에 근거한 정확성이 결여돼 있다"고 했다.

또 500원화는 비슷한 시기에 일본의 500엔화와 같은 크기로 제작돼 500원 주화가 일본으로 유출돼 자판기 등에 대거 사용된 문제가 발생한 것과 관련, 조 전 교수는 "당시 일본 주화와 동일규격으로 정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강력히 주장했으나 한은의 중간결재 과정에서 이런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벼이삭을 소재로 한 50원화와 거북선을 도안으로 한 5원화도 기존 주화의 디자인을 바꾸면서 자연스러운 세련미는 사라지고 인각 화선들이 후진국 주화처럼 조잡하게 표현됐다고 조 전 교수는 주장했다.

이처럼 디자인이 퇴보하게 된 배경에 대해 조 전 교수는 "당시 조폐공사의 디자인실장이던 강 박 실장이 53세의 나이로 유명을 달리해 디자인실이 안정되지 못한 상황에서 화폐 디자인 경험이 일천한 디자이너가 주화 도안을 담당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당시 조폐공사 사장이 군장성 출신이었고 한은의 발권책임자도 군 장교 출신으로 특채돼 발권업무에 경험이 없는 사람이어서 화폐디자인 전문가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채 주화발행 업무가 처리됐다"고도 했다.

조 전 교수는 1965년 한국조폐공사에 입사한 후 73년 한은으로 옮겨 20년 넘게 화폐디자인 업무에 종사했으며 90년대는 한양대 겸임교수로 재직하면서 화폐디자인 연구에 주력해왔다.

한편 이러한 주장에 대해 한은 발권국의 한 관계자는 "이 책에서 언급된 내용들은 전적으로 조 전 교수의 개인적 의견일 뿐이며 한은의 입장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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