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길다. 아니 길어졌다. 한국 남자의 평균수명은 74.2세, 여성은 81.5세에 이른다. 사오정(45세 정년)의 격랑을 헤치고 운 좋게 오륙도(56세 이상 회사를 다니면 도둑놈)에 상륙해도 퇴직 후 20년 이상 남는다. 특별한 수입 없이 20년을 지내야 한다는 뜻이다. 국민연금만으론 버티기 힘들고, 그렇다고 '연봉제' 세상에서 풍족한 퇴직금을 바랄 수도 없다. 이제 재테크도 1년, 2년이 아니라 10년, 20년, 30년 길게 준비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그래서 나온 상품이 라이프사이클(Lifecycle) 펀드다. 나이에 따라 차별화된 투자전략을 세우고 10년 이상을 '친구'처럼 따라 다니는 상품이다. 젊은 시절엔 주식 투자비중을 높여 고(高)수익을 노리고, 나이가 들수록 가급적 위험을 피해 안정적인 채권 등에 주로 투자한다. 그리곤 만기가 지나면 연금처럼 나눠 탈 수 있다.
라이프사이클 펀드도 적립식 펀드처럼 매달 혹은 수시로 돈을 넣는다. 그러나 적립식 펀드는 가입할 때 결정한 주식이나 채권 편입비율이 끝까지 그대로 가지만 라이프 사이클 펀드는 퇴직 등 돈이 필요한 시기가 가까워질수록 보수적으로 변한다. 국내에서는 생소한 이름이지만 미국에선 일반 적립식보다 인기가 높다. 라이프사이클 펀드에 대해 알아보자.
◆은퇴후를 준비한다…미국서 인기몰이
미국에서는 1996년 60억달러에 불과하던 라이프사이클 펀드 설정 규모가 지난해 1670억달러로 무려 27배나 증가했다. 은퇴 후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라이프사이클 펀드는 퇴직연금 상품으로도 인기다. 미국에서는 2005년 신규로 퇴직연금에 가입한 근로자 10명중 4명이 라이프사이클 펀드를 선택했다. 다른 퇴직연금에 가입했던 사람 4명중 1명(26%)도 라이프사이클 펀드로 갈아탔다.
미국의 라이프스타일 펀드는 고객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펀드매니저가 알아서 주식편입비율을 조절할 정도로 발전했다. 고객은 매달 돈을 부으면서 수익률만 확인해 나가면 된다.
◆국내서는 걸음마 단계
아직은 손에 꼽는다. 삼성투신운용의 '삼성웰스플랜'과 미래에셋의 '라이프사이클연금투자신탁' 정도다. 국내 라이프사이클 펀드는 대부분 모자(母子)펀드 형식이다. 주식편입비율이 다른 여러 개의 자(子)펀드를 만들어 놓고 나이가 들수록 주식편입 비율이 높은 펀드에서 낮은 펀드로 갈아타는 방식으로 설계 돼 있다.
삼성투신운용의 삼성웰스플랜은 주식투자비율이 80%, 65%, 50%, 35%, 30%, 20%인 6개의 주식형 펀드와 채권형 1개 펀드 등 총 7개의 펀드로 이뤄져 있다. 주식투자비율이 80%인 펀드에서 출발하여 1년마다 주식 편입비가 낮은 펀드로 한 단계씩 옮겨가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설계이지만 나이와 성향에 따라 기간과 옮겨 타는 펀드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가입기간은 최소 1년 이상이고, 90일 이내에 환매(해약)하면 수익의 70%를 환매 수수료로 물어야 하므로 환매에 신중해야 한다. 그러나 최초 가입 후 1년이 지나면 환매수수료는 면제된다.
지난해 출시된 미래에셋자산운용의 '라이프사이클연금투자신탁'은 주식형인 '라이프사이클 2030'부터 주식·채권 혼합형인 '라이프사이클 3040, 4050, 5060'. 채권형인 '라이프사이클 6090'까지 다섯 개 펀드로 구성되어 있다. '2030'의 경우 주식편입비율이 80~100%, 3040은 60~80%, 4050은 40~80%, 5060은 30%, 6090은 채권에 80~100%를 투자한다. 개인연금 펀드 형식이어서 1년에 300만원까지 소득공제가 가능하고 만 18세 이상이 가입할 수 있다. 성향에 따라 1년에 2번에 걸쳐 펀드간 전환도 가능하다.
미래에셋투신운용 김승길 상품기획팀 부장은 "우리나라 라이프스타일 펀드는 미국처럼 펀드매니저가 알아서 주식편입비율을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직접 비율을 조정하는 형태"라며 "아직 시작에 불과하지만 우리나라도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어 이런 형태의 펀드가 활성화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