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국이 미국·일본으로부터 플래시 메모리 기술 독립을 선언하는 날입니다. 전기가 통하지 않는 물체를 이용한 반도체 기술을 획기적으로 개발했습니다."
삼성전자 황창규(黃昌圭) 반도체총괄 사장은 11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40나노미터(㎚)급 32기가비트(Gb) 플래시 개발은 세계 반도체 업계를 뒤집어 놓을 대사건"이라고 말했다. 그가 이처럼 강한 자신감을 보인 것은 32Gb 플래시에 처음 적용된 '차지 트랩 플래시(CTF)'라는 신기술 때문.
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를 뜻하는 측정 단위. 반도체에선 공정(工程)의 세밀도를 나타내며, 수치가 낮을수록 반도체 집적도가 높아진다. 삼성전자가 이번에 개발한 플래시는 엄지손톱 크기에 지구 인구의 약 5배에 해당하는 328억개의 트랜지스터가 촘촘히 세워져 있다.
플래시 메모리는 전원이 꺼져도 저장된 정보가 지워지지 않는 반도체로, 1971년 미국 인텔이 플래시 원조격(格)인 'EEPROM'을 개발한 이후 줄곧 '플로팅 게이트' 기술이 적용돼 왔다.
플래시는 보통 전하(電荷; 전기적 성질을 지닌 작은 입자)를 저장하고 지우는 방법으로 정보를 기록하는데, 플로팅 게이트는 전하를 저장하는 도구로 도체(導體; 전기가 통하는 물체)를 이용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플로팅 게이트는 도체를 이용하기 때문에, 집적도를 50나노 이하로 높이면 트랜지스터 사이에 서로 전기가 통해 작동 오류가 발생한다. 삼성전자는 이같은 기존 기술의 근본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전하의 저장 도구로 절연체(전기가 통하지 않는 물체)를 이용하는 CTF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황 사장은 이를 '콜럼버스의 달걀'과 같은 발상의 전환이라고 표현했다.
"전하를 절연체에 저장해 집적도를 높인다는 것은 지금까지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지난 35년 동안 인텔·도시바 등 세계 유수의 반도체 업체가 비슷한 기술 개발에 나섰지만 번번이 실패한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삼성전자는 이번 CTF 기술로 원천 특허 15건을 포함, 국내외에서 이미 155건에 달하는 특허를 땄다. 황 사장은 "앞으로 대용량 메모리 반도체를 개발하려는 업체는 삼성전자의 CTF 특허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면서 "이에 따라 해외 업체와 벌이는 반도체 특허 협상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을 전망"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D램·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부동(不動)의 1위 자리에 올라 있지만, 그동안 원천 특허가 없어 인텔·도시바·IBM·TI 등과 로열티 협상 때 상대적으로 입지가 약했었다.
삼성전자는 CTF 기술이 이 같은 불리함을 일거에 뒤엎는 계기가 될 것은 물론, 특히 CTF 특허 기술 사용료로 최대 수조원에 달하는 부수입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다.
황 사장이 "플래시 기술 부문에서 해외 종속에서 벗어나는 계기"라고 말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는 "CTF 기술은 앞으로 20나노 256Gb급까지 확대 적용할 수 있으며, 특히 2010년 이후 꿈의 기술로 불리는 테라(1테라는 1024기가) 메모리 시대 진입의 토대가 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