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의 재도약은 잃어가는 꿈의 활력을 어떻게 복원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묵묵히 꿈과 비전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실패를 두려워 않고 1%의 가능성에 도전하는 기업인들…. 여기 꿈을 키워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1996년 여름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사업장의 제6라인에 황당한 일이 터졌다. 6라인은 당시 세계 1등이던 일본의 NEC·도시바를 누르려 준비한 비장의 무기. 그런데 본격 양산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갑자기 불량 웨이퍼(반도체 원판)가 쏟아져 나오는 것이었다.

공장은 온통 혼비백산에 빠졌다. 사내(社內)의 내로라하는 석·박사가 총동원돼 며칠 밤을 새웠지만 도무지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문제를 해결한 '영웅'은 당시 30세 생산직 직원이던 박수관(40·현재 차장)씨. 그는 웨이퍼를 올려놓고 반도체 회로 등을 새기고 깎는 받침대의 고정 나사들에서 미세한 결함을 발견해냈다.

받침대를 설치할 때 작업자들이 저마다 손으로 수십 개의 나사를 힘껏 조였지만 조일 때마다 '힘껏'의 기준은 천차만별이었고, 그 예민한 차이가 받침대에 미세한 진동을 일으키며 불량 반도체 칩을 만들었던 것이다.

박수관 차장은 이때부터 나사에 미쳤다. "여기서 끝내지 말고 제대로 한번 나사에 빠져 보라"는 공장장(김재욱 현 메모리 제조 담당 사장)의 권유가 고교(마산공고) 졸업 후 산업현장을 지켜 온 그에게 새로운 꿈을 주었다. 세계 최고의 나사 전문가가 되겠다는 꿈이었다.

그러나 길은 험난했다. 우선 독학으로 일본어를 공부했다. 국내에는 나사 분야를 파고든 전문가가 거의 없었다. 일본 책도 구해 보고 인터넷에서 나사에 관한 글을 훑었다. 손이 부르트도록 나사를 조이고 또 조여 봤다. 며칠 밤을 고민해도 풀리지 않는 의문점들이 생겼다. 그럴 때면 백발이 성성한 '사부(師父)'를 찾았다.

그의 사부는 일본 기업에서 평생 산업현장을 지키다 퇴역한 일본인 기술자. 그는 아들뻘인 박 차장에게 '원 포인트 레슨'을 전해 줬다. 일본인 기술자는 반도체 공정을 잘 모르고 나사 전문가가 아니었지만 공구에 관한 축적된 지식을 전수해 줬다.

이런 노력으로 박 차장은 정식 학위는 아니지만 삼성전자가 인정해 준 '나사박사' 1호가 됐다. 세계 1등 반도체 공장에서 최고이니, 세계 제1의 나사 전문가가 된 것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라인에 들어가는 수천만 개 나사의 트러블 관리를 그가 담당하고 있다.

반도체 라인에서 나사는 핵심 부품이다. 나노(10억분의 1m)의 세계인 반도체 공정에선 나사 하나에도 나노 이상 오차를 허용하지 않는다. 반도체 1개 라인당 들어가는 나사는 최소 300만~400만개. 눈에는 전혀 안 보이는 나사 한 개의 풀림이나 흔들림은 반도체 라인 전체에 치명적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그래서 신기(神技)의 관리가 필요한 것이다.

현재 그의 직책은 'A-1 프로젝트 팀원'. 삼성전자가 3조원 이상을 쏟아부으며 짓고 있는 제15라인 건설에 참여하고 있다. 대한민국 반도체의 미래가 달려 있는 이 꿈의 라인은 그의 나사 기술 없이는 지탱이 되지 않는다.

박 차장의 노트북 컴퓨터엔 재미난 엑셀 파일이 하나 있다. 세로 축엔 자신과 아내, 세 자녀의 이름이, 가로 축엔 2065년까지의 연도가 적혀 있다. 2065년은 그가 100세 되는 해. 우선 2018년까지 이뤄야 할 꿈과 목표가 연도별로 빼곡히 담겨 있다.

"저의 나사 기술 하나가 세상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그것이 저의 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