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시는 것과 보는 것, 먹는 것과 느끼는 것의 이미지를 결합시켜야 마케팅에 성공하는 시대다. 삼성전자가 지난 4월초부터 내놓은 LCD(액정화면)-TV '보르도'는 소비자의 그런 욕구를 정면에서 공격적으로 파고 들어갔다.
삼성전자가 보르도를 국내외 시장에 본격 선보인 것은 지난 4월초. 출시 이후 3개월 동안 60여만대가 팔려 나갔다. 출시 이후 6개월이 되는 오는 9월말까지 누적 판매량은 100만대를 돌파할 전망이다. TV 판매량치곤 이례적 기록이다.
◆"은은한 분위기를 담는 TV 개발하라"
보르도는 신개념 TV 개발을 위해 지난해 4월 삼성전자가 내부적으로 정한 프로젝트 이름이었다. 최지성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 총괄 사장은 "웰빙이 생활 속 화두(話頭)가 되면서, 와인 산지를 뜻하는 프로젝트 이름을 제품 이름으로 연결시켰다"고 설명했다. '웰빙 시대의 주 소재는 와인이다. 집에서 TV를 보면서 은은하게 와인 한잔을 나누는 분위기를 상상해보라. TV가 그런 무드를 잘 살려준다면…' 뭐, 그런 콘셉트였다.
회사측은 지난해 4월부터 디자인·회로·패널·구매·마케팅 등 각 부문 핵심요원 11명으로 구성된 TF(태스크포스)를 구성했다. 시장조사부터 했다. 거실에 TV가 차지하는 공간이 커지면서, 결정적으로 TV 자체가 멋진 인테리어 요소가 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늦가을 첫 시제품이 나왔다. 품평회에선 "이대론 곤란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디자인이 문제였다. 두 번째 시제품도 반응이 시원찮았다. 2번의 시제품 개발에 들어간 금형비만 20억여원. 최 사장은 "한번 깔끔하게 만들어 보자. 비용은 걱정하지 말고 목업(모형)대로 만들 순 없느냐"며 직원들을 채근했다. 결국 영상사업부 디자인그룹의 이승호 책임연구원이 기초작업을 한 대로 와인 잔을 연상시키는 디자인이 나왔다.
문제는 모형의 두께가 종전 TV 제품보다 40%정도 얇은 8.7㎝에 불과했다는 점. "와인 잔처럼 V자를 그리며 밑으로 내려오는 부분에는 회로(回路) 설치가 힘들다"는 엔지니어들의 불만도 있었다. 결국 모든 인력이 총동원돼 얇은 두께에 맞는 새 부품과 기술을 개발하고, 드디어 와인 잔을 닮은 보르도를 내놓았다.
◆보르도, 세계인의 눈길을 끌다
삼성전자는 지난 4월 보르도를 한국·북미·유럽 등에 동시에 선보였다. 국내 시장에선 출시 한 달 만에 1만대가 팔렸고, 지금까지 모두 4만여대가 판매됐다.
회사측은 국내 와인 전문 레스토랑에다 보르도를 한 달 정도 설치해놓고 눈길을 끌었다. "분위기있던 와인 바에서 보았던 그 TV가 생각난다"는 연상작용을 타깃으로 했다. 행운권 추첨을 해서 TV를 증정하기도 했다.
보르도는 해외에서도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보르도의 인기에 힘입어 지난달 이후 북미 TV 시장에서 일본 소니를 누르고 LCD-TV 부문 점유율 1위에 올랐다.
또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스페인 등 유럽 메이저 5개국에서 유럽 맹주(盟主)인 네덜란드 필립스를 제치고 LCD-TV 시장 1위를 독차지하고 있다. 특히 프랑스에선 32인치 보르도가 출시 6주일 만에 히트상품 1위에 등극했다.
최지성 사장은 "보르도로 삼성전자의 TV 디자인이 한 단계 도약했다"며 "현재 제2, 제3의 보르도를 준비하고 있으며 기대해도 좋다"고 말했다. 보르도 TV가 히트를 치면서, 최근 프랑스 보르도 지방에서는 주한 프랑스 대사관을 통해 '보르도의 이름을 널리 알려주어 고맙다'는 감사장을 전해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