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컴퓨터 제조업체 사장인 이모(35)씨가 가입한 생명보험은 7개다. 그런데 가족을 위해 가입한 보험 2개뿐. 나머지 5개는 거래처의 보험 영업 실적을 높여주기 위한 것도 아니다. 이씨가 생명보험에 많이 가입한 이유는 투자자들로부터 사업자금을 빌리기 위한 담보로 쓰기 위한 것이다. 회사 문을 닫지 않기 위해 생명을 담보로 맡긴 셈이다.

그는 "대개 수천만원에서 억대의 돈을 빌릴 때 보험 담보를 주로 사용한다"며 "시쳇말로 '죽어서라도 돈을 갚으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요즘 종신보험 등 생명보험 상품이 자금난에 허덕이는 영세기업 사장들에게 '최후의 자금줄'로 활용되고 있다. A보험사 계약관리 담당 직원은 "주로 사업을 하는 고객들이 고액 종신보험(보험금 10억원 이상)에 가입하고 질권(質權·채권의 담보로 잡은 물건을 우선 변제받을 수 있는 권리)을 설정하는 경우가 많다"며 "요즘도 일주일에 2~3건씩 담보 설정 신청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기업체 사장들이 생명까지 담보로 잡아가며 사업 자금 구하기에 나선 이유는 은행에서 돈 빌리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중소기업협동중앙회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자금사정을 알아볼 수 있는 중소기업건강도지수(SBHI)가 지난 3월 81.3에서 4월 82.4, 5월 79.6으로 점점 악화되고 있다. SBHI는 기준지수인 100보다 더 낮아질수록 상황이 악화되고 있음을 뜻한다.

기계설비 수입업체를 운영하는 장모(42) 사장도 극심한 자금난을 벗어나기 위해 보험을 담보로 대출을 받으려고 애쓰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고 장 사장은 말한다.

그는 "요즘 금융기관에서 담보 없이 돈을 빌리는 건 거의 하늘에서 별 따기"라면서 "보험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것도 '보험료를 꼬박꼬박 내겠다'는 믿음을 줘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한국금융연구원 강경훈 연구위원은 "한국에선 돈을 빌려줄 때 물적 담보, 인적 보증을 너무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며 "금융기관들 간에 개인 신용정보 공유 시스템을 강화해 신용대출을 더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