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삼성전자 휴대폰사업부문은 초비상 경영 상태다. 유가·원자재 가격 폭등 등 잇따른 충격에도 꾸준히 두 자릿수를 유지하던 영업이익률이 급속한 원화절상으로 인해 한 자릿수로 추락했기 때문이다. 한 전무급 임원은 "매일 비상 회의를 열어 보지만 뾰족한 대책은 없다"며 답답해했다. 다른 제품은 몰라도 휴대폰만은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철옹성'이라고 자부해 온 삼성전자였다. 때문에 "최근 위기감의 강도와 깊이는 예전과 다르다"고 관계자는 전했다. 글로벌 명품 '애니콜'도 환율 태풍 앞에서는 절절 매고 있는 형국이다.
이학수 그룹 전략기획실장도 "원화가 10원 절상되면 그룹 이익이 4000억원씩 줄어든다"고 걱정했다. 작년 평균 1024원이던 원·달러 환율이 최근 930~940원대로 떨어졌으니, 올해 삼성그룹이 원화 절상으로 인해 날린 돈만 3조~4조원대라는 계산이 나온다.
◆"대기업들도 환관리 바닥수준"=2002~2003년 세계적인 중공업회사로 알려진 모 중공업그룹은 환차손으로 6000여억원을 날렸다. 원화 움직임에 둔감하다가, 환 헤지를 소홀히 한 탓이다. 수억달러짜리 배 한 척 계약단가는 100% 달러화 베이스지만, 건조 후 인도까지의 기간은 대체로 2~3년. 이 기간 동안 환율에 무신경하다가 원화가 급속 절상되자 선박 인도시점에서 수천억원을 허공에 날린 셈. 2~3년 동안 수만명 직원이 달려들어 30만t급 유조선 3~4척을 건조해야 겨우 올릴 수 있는 매출이 물거품이 됐다. 이 때문에 자금 담당 고위 임원부터 말단 직원에 이르기까지 담당 임직원들이 줄줄이 옷을 벗었다. 이 회사의 현재 수주잔량도 100억달러가 훨씬 넘어 환변동에 따라 손익규모가 롤러코스터식으로 급변한다.
현대자동차의 환 헤지(위험관리) 비율도 수출 금액의 15%에 불과하다. 현대차 그룹이 올 초 '비상경영'과 '납품단가 10% 인하'를 선언한 배경에도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환 손실이 작용했다. 삼성전자는 원화 가치가 10원 오를 때마다 2000억원, LG전자는 700억원 이익이 줄어든다. 결제통화 다양화, 부품 현지 구매 등 갖은 방법을 동원하지만 뚜렷한 대책은 없다. 김쌍수(金雙秀) LG전자 부회장은 "원가 줄이고 매출 늘려야 한다. 기본이 최선"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환 헤지도 환율이 급격히 변할 때나 유용한 단기적인 수단이지, 원화 강세가 길어지면 묘약(妙藥)이 없다는 뜻이다.
◆중소기업들은 수출 전선에서 퇴출위기=중소기업은 환율 하락 폭풍이 몰아치면 수출전선에서 퇴출된다. 증권선물거래소는 최근 543개 상장회사들의 1분기 영업이익률이 평균 15% 떨어졌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의 1분기 영업이익이 24% 줄고, 현대·기아자동차그룹 순이익은 60% 감소했다. 포스코(-50%)·한진(-9%)·한화( -47%)·두산그룹(-38%)의 순이익도 급감했다. 이익이 줄면 투자 여력이 줄고, 투자가 줄면 성장동력도 잠식당한다. 우리 경제의 내일이 갈수록 어두워지고 있는 것이다.
◆"국제입찰이 걱정된다"=환율 충격은 이미 우리 기업들에 생존이 달린 화두로 자리잡았다. 한 조선회사 임원은 "우리 조선이 세계 1~7위를 싹쓸이하며 호황을 누리는 것 같지만 지금 가장 큰 고민은 입찰 가격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원·달러 환율 930~940원대로 계약을 하면 이익을 기대할 게 별로 없다. 헤지를 하자니 이익이 너무 적고, 하지 않자니 자칫 더 큰 손해가 날까 두렵다"는 이 관계자의 말에서 우리 기업들의 고민이 묻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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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 변동 위험,현시점 고정 의미
환 헤징(hedging)이란='헤지'의 원뜻은 '말뚝을 박는다'는 뜻. 환율변동 위험을 현 시점에 고정시킨다는 의미다. 대표사례로는 선물환(先物換)거래. 예를 들어 국내 기업이 외국에 달러 기준으로 제품을 수출할 경우, 보통 수출대금은 3개월 뒤에 받게 되지만 3개월 뒤의 환율에 따라 손에 쥐는 원화의 총액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이런 환율 변동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 미래 환율을 미리 고정시켜 원화 총액을 일정하게 하는 것이 선물환 헤징이다.
(특별취재팀)
(이광회팀장 santaf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