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가(街)의 2006년은 은행 간 기(氣)싸움으로 시작됐다. 점잖던 은행장들이 원색적 언사로 상대방을 깎아내리는가 하면, 새해 벽두부터 공격적 마케팅으로 고객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은행장들은 신년사에서 '장산곶 매의 비장한 각오'(황영기 우리은행장), '견내량 봉쇄작전'(신상훈 신한은행장·이순신 장군이 견내량 해역으로 왜군을 유인해 초토화한 작전)' 등의 살벌한 출사표(出師表)를 던지며, 직원들의 전의(戰意)를 자극하고 있다. 보수적이기로 소문난 은행가에서 전례가 없는 일들이다.

◆전례 없는 구두(口頭) 공격

선공(先攻)에 나선 것은 우리은행이었다. 황영기 우리은행장은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어른이 아프면 장남(토종은행)집에 온다"는 '토종은행론'으로 도발했다. 황 행장은 "(다른 은행이) 자꾸 벨트 아래를 가격하면 나도 뒤통수를 칠 수밖에…"라고도 했고, "신한은행이 인수 대상이 될 수도 있다"고 걸고 넘어졌다.

다른 은행장들은 즉각 반격에 나섰다. 신상훈 신한은행장은 "동북아 금융허브를 지향하는 마당에 토종은행 운운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맞받았다.

하나은행의 반응은 더욱 격렬했다. 김종열 하나은행장은 "다른 은행은 다 비(非)애국자고, 자기(우리은행)만 애국자라니…"라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고 "(LG카드 사태 때) 우리은행이 지키긴 뭘 지켰나"(조선일보 인터뷰)라고 했다. 김 행장은 최대 은행 국민은행에 대해선 "덩치만 크다고 리딩뱅크인가"라고 동시다발로 포탄을 퍼부었다.

하나은행은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17일 별도 보고서를 통해 "(황 우리은행장이) 혹세무민식 퇴행적 감성을 자극, 금융산업의 시장질서와 규율을 교란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국민은행은 한 발 물러서 있는 형국이나, 외국인 지분이 85%에 달하는 만큼 '토종은행론'이 거북할 수밖에 없다. '덩치' 운운한 하나은행에 대해선 "막말"(한 임원)이라며 내심 불쾌해하고 있다.

◆은행 대전(大戰)의 서막

은행장들의 양보 없는 구두(口頭) 공격은 곧 본격 개전될 '은행대전(大戰)'의 서막이라고 은행권에선 해설한다. 현재 금융가엔 외환은행과 LG카드가 매물(賣物)로 나와 있는데, 두 곳을 누가 먹느냐에 따라 판도가 달라지고 여기서 탈락하는 은행은 바로 이류 은행으로 추락할 공산이 크다.

게다가 신한·조흥의 합병으로 과거 조·상·제·한·서(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신탁은행)의 '5강 시대'가 완전히 막을 내리고 '4강(국민·신한·우리·하나) 체제'로 질서가 재편됐다. 본격화될 4강 간 진검(眞劍) 승부에서 각 은행들이 '밀리면 끝장'이란 절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런 절박감은 각 은행장의 신년사에서 표출됐다. 황영기 우리은행장은 "사냥에 앞서 자신의 둥지를 부리로 깨부수는 '장산곶 매'처럼 비장한 각오로 출정하자"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고, 신상훈 신한은행장은 "이순신 장군이 물길이 좁은 견내량을 봉쇄해 적을 막아낸 것처럼 핵심 고객을 붙잡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미 막 올린 영업전쟁

치열한 금리 경쟁으로 집약되는 은행들의 영업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우리은행은 인터넷뱅킹·텔레뱅킹 수수료를 한꺼번에 50% 인하하며 서민은행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한편, 중소기업 무담보 대출 상품을 앞세워 기업고객 공략에 나서고 있다.

이에 맞서, 국민은행은 신규 주택담보대출 고객에게 대출금리를 0.6%포인트 깎아주기 시작했고, 신한·조흥은행도 장기주택담보대출 금리를 0.5%포인트 내리며, '개인 고객' 빼앗아 오기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특판(특별판매)예금을 앞세운 예금금리 올리기 경쟁도 치열하다. 우리은행이 연 4.65%(만기 1년 기준)짜리 특판 정기예금을 선보였고, 신한은행은 연리 4.5%짜리(만기 1년 기준)의 특판정기예금을 내놓았다. 은행에겐 피 말리는 싸움이나, 고객으로선 즐겁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