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둘을 둔 박인구(朴仁求·59) 동원F&B 사장이 자녀 경제교육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경쟁력'과 '자립'이다. "국제 경쟁력을 길러 어디에 나가도 독자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라"는 것이 핵심이다.
큰딸 여령(汝鈴·25)씨는 이화여대 경영학과를 나와 방송위원회 국제교류부에서 근무하고 있다. 유창한 외국어 실력을 바탕으로 한국 방송 콘텐츠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고, 방송시장 개방 관련 국제 통상업무를 맡는다.
고려대 국제학부 4학년에 재학 중인 작은딸 여훈(汝訓·22)씨 역시 영어에 능통하며, 유엔 같은 국제기구로 진출할 꿈을 키우고 있다. 모두 아버지 박 사장의 교육 방침에 잘 적응하고 있는 셈이다.
여령씨는 아버지의 가르침에 대해 묻자 "각 분야에서 성공한 여성에 관한 신문 기사가 나오면 꼭 스크랩해 보여 주시고, 성공한 여성들이 쓴 책도 사다 주셨다"고 말했다. 박 사장은 재계, 언론계 등에서 성공한 지인(知人)들을 딸들이 만나 대화할 수 있는 시간도 수시로 만든다.
여성이나 국내 인사에 국한되지도 않는다. 포럼 등 각종 모임에 딸들을 데리고 나가는 경우도 많다. 여령씨는 "콜린 파월 전 미 국무장관이 무역협회 초청으로 방한했을 때 초청장을 제 것까지 구해 오셔서 같이 가서 강연을 듣고 질문도 해 두고두고 기억에 남아요"라고 말했다.
여령씨가 미국 매사추세츠주 스미스칼리지에 교환학생으로 가 있을 때 미국으로 출장을 갔던 박 사장은 거래처에 딸을 데리고 다니기도 했다. 딸에게 비즈니스 실무를 경험해볼 기회를 주려고 한 것이었지만, 미국인들은 부녀가 함께 방문하는 모습을 감명 깊게 받아들이기도 했다.
작은딸 여훈씨도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다. 동원F&B가 미국의 한 회사로부터 건강식품을 수입하는 사업을 시작할 때, 박 사장은 딸들에게 그 건강식품 회원으로 가입해 서비스를 직접 경험해 보고 고쳐야 할 점을 찾아 보라고 했다. 여훈씨가 전하는 일화. "처음 뉴스레터가 왔는데 그냥 하얀 종이에 검은색 글씨로 인쇄된 안내장이 왔어요. 전혀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살릴 수가 없었죠. 제가 그 말씀을 드렸더니 편지가 예쁜 컬러 용지로 바뀌었고, 봉투도 고급스러워졌죠."
박 사장이 딸들의 국제경쟁력을 강조하는 것은 양성(兩性) 평등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모임 'GS리더포럼'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박 사장은 "양성 평등이 이뤄져야 남성들의 경쟁력도 높아지고, 우리나라의 국제 경쟁력이 높아진다"면서 "여성 차별은 경쟁력의 반을 잃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경쟁력과 자립 이외에 박 사장이 또 하나 강조하는 것은, 떼를 써서 뭘 얻지 못하도록 하는 것, 즉 원칙의 중요성이다.
주(駐)EU와 미국 상무관을 지낸 박 사장은 처음 외국에 나갔을 때 유치원에 가지 않으려는 딸들에게 굴복하지 않았다.
"말도 못 알아듣는 아이가 얼마나 힘들까 애처롭기도 했지만 눈을 질끈 감고 유치원에 밀어넣고 돌아섰습니다."
용돈도 어머니 김숙희(金淑姬·50)씨가 정해진 금액만 준다. 여훈씨는 "다른 집 아빠들은 좀 늦게 들어오셨다든지 기분 좋은 일이 있다든지 할 때 '보너스 용돈'을 주시기도 하는데 아빠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며 웃었다. 대신 용돈은 쥐어짜는 식보다는 조금 넉넉히 줘서 관리하는 능력을 길러 주도록 했다. 적금을 들고, 친구들에게 밥도 사고, 불우이웃도 돕는 등 남에게 베풀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을 시켰다. 소액의 주식 계좌도 만들어 경제 흐름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외국 생활을 많이 하면서도 박 사장은 자녀들에게 강압적인 교육을 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단 하나, 한자(漢字)는 매를 들면서 공부를 시켰다. 박 사장은 "한국에서 공부를 하는 데 한자가 가장 기본이라고 생각했다"면서 "한자만 알면 독학을 할 수도 있다는 걸 느꼈기 때문에 그 기반은 분명히 닦아야 한다고 믿었다"고 말했다.
(박인구 동원 F&B 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