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 넘었다고 박수치고 환호성 지르고…, 그거 다 옛날 이야깁니다." 여의도의 한 증권사 객장 직원의 말이다. 지난 7일 주가가 5년 반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지만 여의도 증권사 객장에는 몇 명의 단골 고객만이 시세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을 뿐 차분한 모습이다. 기업들도 예전 같으면 주가 오를 때 증자(增資)한다고 법석을 떨었을 텐데 왠지 조용하다. 한국 증시에 과거와는 다른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일부에선 "선진 투자문화가 본격적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나오고 있다.
지난 8일 종합주가지수는 1021.95로 마감했다. 사상 최고치인 1138.75(1994년 11월 8일)에 약 90%까지 근접한 수준이다. 이는 미국(89.1%)·대만(49.6%)·독일(57.0%)·일본(29.7%)·홍콩(76.3%) 등 세계 주요 증시와 비교해봤을 때 가장 높다.
하지만 개인 투자자들은 요지부동이다. 1999~2000년 지수 상승 때 개인투자자들이 대거 증시에 몰리면서 '묻지마 투자'로 달아올랐던 증시와는 확연히 다른 이변이다. 1999년 말 418만명으로 최대를 기록했던 주식투자 인구는 지난 연말 376만명으로 감소했다. 또 개인 투자자들의 매매비중(금액기준)도 1999년 76.14%에서 올 상반기 59.57%까지 낮아졌다.
개인들은 오히려 간접투자방식인 펀드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올들어 4조5000억원에 달하는 자금이 주식형 펀드에 몰리면서 전체 수탁고는 13조원을 넘어섰다.
대우증권 홍성국 투자전략부장은 "지수 1000대에 뒤늦게 뛰어들어 상투를 잡고 재산을 날렸던 경험이 있는 개인투자자들이 과거 '학습효과' 때문에 섣불리 들어오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변은 기업측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1999년 지수가 1000을 넘어섰을 무렵 기업들은 증시의 '진공청소기'나 다름없었다. 주가가 급등하자 하루가 멀다 하고 경쟁적으로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하며 시중자금을 빨아들였던 것. 이 해의 유상증자 건수는 228건에 달했다. 주가는 당연히 물량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곤두박질쳤다. 하지만 올 들어 7월까지 유상증자 건수는 15건에 불과하다.
기업들은 오히려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자사주를 매입하고 있다. 올 상반기에만 3조5000억원이 자사주 매입에 사용됐다. 이는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26.7% 증가한 액수다. 삼성증권 임춘수 상무는 "장기투자문화 영향으로 주식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는 반면, 대형 우량주의 주식 공급은 감소하는 복합적 요인이 최근 주가 상승을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주가 상승 양상에도 이변이 일어나고 있다. 1999~2000년에 주가가 1000을 돌파할 때는 일부 대형주만 상승세를 탄 반면, 일반 투자자들이 주로 투자하는 중소형주는 부진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일어났다. 그러나 작년 2분기 이후 삼성전자 주가가 부진한 흐름을 보였는데도, 종합주가지수는 계속 상승, 지난달 1000을 돌파했다.
굿모닝신한증권 김학균 연구원은 "삼성전자가 부진한데도 지수는 오르는 것은 90년 이후 경험하지 못한 특이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이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한국 증시가 독점·양극화에서 분점·다극화로 변모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 같은 변화에 대해 증시 전문가들은 "한국 증시가 한 단계 성숙해진 증거"라며 환영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 조홍래 전무는 "외환위기 이후 주주 중시 경영이 바람을 일으키면서 한국 증시의 후진성이 크게 개선된 점이 시장에서 본격 평가를 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올해 성장률이 4% 아래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되는 등 경제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증시만 유독 상승세를 보이는 것은 근본적으로 이 같은 증시 내부의 체질 변화에 기인한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증시 일각에서는 주가가 더 상승할 경우 예전처럼 개인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묻지마 투자가 되살아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입력 2005.07.10. 18:22 | 업데이트 2021.04.17.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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