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외환위기 이후 해외 자본의 국내 진출이 크게 늘어나면서 최근 들어 외국 자본과 국내기업 간에 '역차별'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경제계는 "국내 기업들이 출자총액 제한 등 역차별 규제에 묶여 외국 자본과 경쟁할 힘을 잃어가고 있다"며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시민단체는 "재벌 오너의 전횡 등 지배구조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 논란과 현황, 그리고 대책은 무엇인지 긴급 시리즈(3회)로 알아본다.



현재 국내 주요 기업의 외국인 지분율은 포스코 70%, 현대자동차 56.5%, 삼성전자 54.4%, SK㈜ 61.4% 등 50%를 넘어선 곳이 많다. 통신·방송 등 일부 기간산업만 외국 자본의 지분 한도를 49%로 제한하고 있을 뿐이다.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상장 기업에 대한 외국인 점유율은 한국이 42.4%로 경쟁국인 대만(23%), 인도(9%), 태국(33%)이나 미국(10%), 일본(18%), 영국(32%) 등 선진국들보다도 훨씬 높다. 외국인이 30% 이상의 지분을 보유, 사실상 지배력을 확보한 국내 상장회사도 전체 상장회사 559개 중 14.3%인 80개에 달한다.

외국 투자 유치는 안정적인 자금 확보와 경영을 글로벌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무능한 경영진을 퇴진시켜 기업 회생에 큰 역할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해외 자본이 경영 간섭과 경영진 교체를 시도하면서 현 경영진과 심각한 마찰을 빚는 경우도 있다. 유럽계 투자회사 소버린자산운용과 SK㈜ 간에 벌어지고 있는 갈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소버린은 작년 3~4월 SK㈜의 지분 14.99%를 매입해 2대 주주가 됐다. 주식 매입을 끝낸 소버린은 "SK㈜의 기업가치를 개선하고 투자 수익을 높이려면 최대주주인 최태원(崔泰源) 회장이 퇴진, 기업 투명성이 더 높아져야 한다"며 줄기차게 경영권 장악을 시도하고 있다.

이에 맞서 SK㈜측은 "소버린은 시세 차익을 노리는 투기 자본"이라며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국가 에너지 확보' 차원에서 정유회사에 대한 외국인 직접 투자를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SK㈜측은 "연말 결산과 새해 사업 계획을 짜느라 할 일이 태산인데, 소버린의 공격에 대응하느라 거의 일손을 놓고 있다"며 울상이다.

한화증권 고민제(高民濟) 애널리스트는 "투기 자본의 공세가 시작되면 기존 대주주가 정규투자를 중단하고 자금과 인력 등 회사의 모든 자원을 경영권 방어에 쏟아붓게 된다"며 "회사의 경쟁력이 급속도로 약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자금력이 탄탄한 외국 자본의 활동은 자유로운 반면, 국내 기업들은 각종 규제에 묶여 마땅한 대응책이 없다는 것이다.

경제계가 대표적인 역차별 사례로 꼽는 것은 지난 18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우리당이 단독 처리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다. 전경련·대한상의·무역협회·경총 등 경제 4단체는 "개정안의 핵심 조항인 출자총액 제한 및 금융계열사 의결권 제한 조치가 기업활동을 심각하게 방해할 것"이라는 공동성명을 냈다. 이 법안은 국회 법사위를 거쳐 본회의에 상정된다. 한나라당이 반대하는 가운데 정부 여당은 이번 국회 회기 내에 법안을 통과시킨다는 방침이다.

이에 비해 외국 자본은 출자총액 제한에 걸릴 만큼 기업 규모가 크지 않고, 의결권 제한을 받는 금융계열사도 거의 없다. 또 국내 자본과 달리 자신을 투명하게 공개할 의무도 없다. 소버린이 SK㈜의 지분을 인수한 자금이 어디서 왔는지, 주주가 누구인지 아무도 모르고 있다.

재계는 이에 따라 국내외 기업의 형평성 차원에서 출자총액 제한제도를 전면 폐지하고, 금융사 의결권도 현 수준으로 유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SK경영경제연구소 왕윤종(王允鍾) 박사는 "일본은 상호 출자와 금융기관의 주식 보유 등을 통해 기업이 30% 이상의 안정적인 지분을 확보함으로써 적대적 M&A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경련 강신호(姜信浩) 회장과 현명관(玄明官) 상근부회장은 29일 열린우리당 천정배(千正培) 원내대표 및 한나라당 김덕룡(金德龍) 원내대표를 잇따라 만나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관한 재계 의견을 전달할 예정이다.

이규황(李圭煌)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는 "의결권 제한은 미국·일본·독일 등에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면서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 조치로 경영권이 외국에 넘어가고 국부(國富) 유출이 심화되면 누가 책임질 것이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