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말 디지털방송장비업체 '디지피아' 직원들은 셋톱박스 2만대를 선적(船籍)했다는 전화가 걸려오자 환호성을 질렀다. 디지피아 임직원들은 수출 물량을 수주하고도 무역자금이 부족해 발만 동동 굴렀다. 그러다 수출입은행 덕분에 어렵게 자금을 구해 천신만고 끝에 납기를 맞췄으니 기쁠 수밖에 없다.

지난 2000년 설립된 디지피아는 셋톱박스와 차량용 디지털영상 수신기 등을 만드는 중소업체. 그러나 당시 회사가 자본잠식 상태여서 시중은행에서 대출받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이때 디지피아에 힘이 되어준 곳은 수출입은행이었다. 수출입은행은 무역 자금 15억원을 무담보로 긴급 수혈해줬다.

26일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디지피아 사의 제품 전시실에서 이 회사 직원들이 모여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디지피아는 회사 설립 때부터 차량용 디지털 오디오, 방송장비 등 첨단을 걷는 제품 연구·개발(R&D)에 힘써 왔다. 하지만 중소기업이 미래 성장형 사업에 투자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매출 대금의 거의 전부를 연구·개발에만 집중 투자하다 보니 자금 흐름에 무리가 가기 시작한 것. 급기야 지난해에는 부채 비율이 500%로 치솟았다. 시중 은행에선 자본 잠식에 빠진 기업에는 자금 지원이 불가능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디지피아는 수출입은행에 자금 지원을 신청했다. 수출입 은행 중소기업금융본부 이동훈 과장은 "새로운 기술을 사업화하려면 반드시 고비가 있게 마련"이라며 "자본 잠식의 원인이 2년에 걸친 연구개발 때문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대출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수출입은행은 전문가에 의뢰해 디지피아가 개발한 셋톱박스의 성능을 평가한 결과, 매출 전망이 밝다는 결과도 받았다.

수출입은행의 금융 지원에 힘입어 디지피아의 실적은 정상 궤도에 올라섰다. 올 상반기 매출액만 23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매출액이 457% 증가했다. 재무 지표도 좋아져 부채비율이 200%대로 내려갔다. 디지피아는 요즘 차량용 위성DMB 단말기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내년 위성DMB서비스가 시작되자마자, 바로 제품을 내놓을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마쳤다. 중소기업이 수출입은행 덕분에 대기업보다 한발 앞서 미래형 성장 산업을 선점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