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 산업 시찰 중이던 당시 중국의 주룽지(朱鎔基) 총리가 손톱깎이 하나를 들어 보이며 역설하는 모습이 관영 CCTV에 방송됐다.

“외국 제품은 이렇게 품질이 우수한데 우리 제품은 왜 안되는 겁니까. 우리도 노력해서 이처럼 훌륭한 품질의 제품을 만들어 냅시다.”

주 총리가 손에 들고 있던 손톱깎이는 ‘777’ 마크가 찍혀 있는 한국의 손톱깎이 제조업체 ‘㈜쓰리쎄븐’의 제품이었다. 쓰리쎄븐 손톱깎이는 그 해 중국 CCTV가 뽑은 ‘3대 수입 명품’에 포함됐다.

쓰리쎄븐은 손톱깎이 하나로 세계 시장을 정복했다. 쓰리쎄븐은 매년 8000만~1억개의 손톱깎이를 만들어 이 중 90%를 미국·중국·유럽 등 92개국에 수출, 세계 시장 점유율 1위(43%)를 기록하고 있다. 지구촌 사람들의 절반 가까이인 26억명이 ‘777’ 손톱깎이를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단가가 100~500원 정도인 손톱깎이로 쓰리쎄븐은 연간 3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으며 1975년 회사 설립 이후 단 한 번도 적자를 본 적이 없다. 2003년 2월 코스닥에 등록했다.

‘777’의 역사는 196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업자인 김형규(金炯奎·69) 회장은 6·25전쟁 때 월남해 잡화상을 운영하다 1960년대 중반 형님과 함께 손톱깎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미제 손톱깎이인 ‘트림(TRIM)’이 유행하는 것을 보고 손톱깎이 장사를 하면 큰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첫 제품은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드럼통을 자르고, 자동차휠로는 지렛대를 만들고, 미군 천막에 붙은 두꺼운 비닐창을 뜯어다 꽃무늬를 붙여 완성했다. 모양은 손톱깎이였지만 ‘손톱뜯기’라고 해야 할 만큼 품질은 엉망이었다.

충청남도 천안 쓰리쎄븐 공장에서 직원들이 손톱깎이를 만들고 있는 모습.

설립 이후 30년간 적자 한 번도 없어

김 회장은 이후 품질 개선을 거쳐 수출을 추진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수출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었던 터였다. 하지만 형이 반대했고 김 회장은 1975년 한 손톱깎이 회사를 인수해 독립했다. 1976년 40만달러어치를 미국에 수출했다. 처음에는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방식으로 수출했지만 품질이 입증되자 ‘킹스타(King Star)’라는 브랜드로 자체 수출도 했다. 하지만 1978년 우리 특허청에서 ‘킹스타’ 상표를 쓰는 회사가 있으니 다른 상표로 바꾸라는 통보가 왔고, 그래서 만든 게 ‘쓰리쎄븐(777)’이다. ‘7’은 행운을 의미하는 ‘럭키 세븐(Lucky Seven)’에서 유래했고, ‘쓰리(Three)’는 ‘천·지·인’을 의미한다고 한다.

쓰리쎄븐의 수출액은 1987년 500만달러, 1988년 1000만달러에 이어 1995년 2000만달러를 기록하는 등 가파르게 상승했다. 올해는 2800만달러 수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쓰리쎄븐 손톱깎이는 저렴한 가격과 우수한 품질을 무기로 현재 미국 시장의 75%를 점령했다. 미국의 손톱깎이 시장을 주름잡고 있던 트림·베이츠·라크로스·레블론 등 4대 손톱깎이 기업은 1990년 베이츠사가 자체 생산을 중단한 것을 시작으로 모두 생산 중단 또는 폐업을 선언했다. 김 회장이 손톱깎이를 처음 만들게 된 계기였던 트림사는 2001년 생산 설비를 철수했다. 전세계적으로는 OEM 수출과 자사 브랜드 수출의 비중이 반반이지만 미국 수출은 OEM방식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김형규 회장은 “미국 회사는 자신들의 상표가 없으면 살 수 없다고 해, 우리 상표를 고집하기보다는 일단 많이 팔아 제품의 품질을 알리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OEM방식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중국 수출은 1994년부터 시작됐다. 한때(1998년) 중국 수출은 1000만달러에 이르기도 했다. 중국 수출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40% 이상이다. 김상묵 쓰리쎄븐 사장은 “중국에서 쓰리쎄븐 손톱깎이 세트는 중국 내 다른 제품보다 10배 비싼 가격(한화 4만~5만원)에 팔리고 있고 대형 백화점 1층에 전시돼 명품 브랜드로 인정받고 있다”며 “중국에서 공무원에게 주는 선물로 인기”라고 말했다.

손톱깎이는 금속 가공기술의 결정판

쓰리쎄븐의 성공 비결은 사훈(社訓)에서 잘 드러난다. 바로 ‘신용·품질·창의·경쟁력’.

김형규 회장은 “납기일은 밤을 새워서라도 지켰다”고 말했다. 1980년대 미국 수출품 중 도금과 포장재 사이에 화학 반응이 생겨 손톱깎이 외장에 하얀 이물질이 묻어 있었다. 이물질은 닦으면 없어졌지만 김 회장은 10만개에 이르는 물량 전체를 폐기 처분하고, 새로 제작한 물건을 보냈다. 외국 바이어에 대한 신용 때문이었다.

이규형 기획실 과장은 “40여가지의 공정을 거쳐야 하는 손톱깎이는 자동차나 항공기 부품 등을 만드는 데 필요한 각종 금속가공 기술이 동원되는 데다 크기까지 작아 금속 가공기술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래 위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 몸통은 수백만 번의 반복 동작에도 탄성을 잃지 않도록 유연해야 하며 손톱깎이의 날은 쉽게 닳지 않으면서 아래 위 이빨이 맞물리도록 정교하면서도 높은 경도(硬度)를 유지해야 한다. 쓰리쎄븐은 열처리와 도금, 연마 공정에 있어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자랑한다. 국내에는 연삭기를 제조하는 업체가 없어 쓰리쎄븐은 수년간의 연구 끝에 기계를 자체 개발했다. 쓰리쎄븐의 기술은 손톱깎이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날에서 더욱 빛이 난다. 외국 제품이 손톱깎이 날의 위 아래가 정확히 맞물리는 것과 달리 쓰리쎄븐 제품은 아랫 부분이 0.02㎜ 길게 설계돼 있다. 아랫날이 조금 길기 때문에 손톱 절삭면이 손톱 안쪽의 살점을 향하게 돼손톱이 매끄럽게 깎이는 것이다. 인체 공학의 접목이다. 일찍부터 공장 자동화 설비를 갖춘 데 만족하지 않고 전사원이 품질 검사원이 돼 불량품을 방지한다. 김상묵 사장은 “하루에 직원 1명당 2만개 정도 제품을 만지게 되지만 15~20년 경력의 직원들은 한눈에 불량품을 구별한다”며 “소비자 입장에서는 1개만 불량품이어도 쓰리쎄븐 전체에 대한 이미지를 나쁘게 갖기 때문에 품질 관리에 각별한 신경을 쓴다”고 말했다.

아무리 좋은 품질이라도 늘 똑같은 모양이라면 소비자들은 싫증을 낸다. 쓰리쎄븐은 늘 변신한다. 1980년대 중반 쓰리쎄븐은 손톱깎이 외에 족집게·버퍼(손톱 표면을 갈아 광을 내는 도구) 등 5~6개의 품목을 넣어 ‘세트 제품’을 개발한다. 손톱깎이 한 가지만 팔 때보다 세트로 만들면 가격을 몇 배로 받을 수 있었다. 세트를 개발한 지 얼마 안 된 1988년 미국의 유명 화장품 방문 회사가 쓰리쎄븐에 100만개를 주문하는 등 세트의 인기는 높아갔다. 추수감사절·크리스마스 선물용으로 많이 나갔다.

1990년대 중반에는 제품을 원통에 꽂아 뽑기 쉽도록 한 ‘원통형 세트’를 개발했다. 기존의 손톱깎이 세트가 망치·드라이버 등 연장 도구 세트와 비슷한 형태로 돼 있어 제품을 뽑아 쓰기 불편한 점을 개선한 것이다. 주요 판매 세트 제품만 100여가지가 넘는다. 세트 제품은 편리한 형태의 디자인으로 국내외에서 700만개 이상 팔렸다. 날이 360도 회전하는 제품 등 주요 히트 제품을 개발한 황규빈 부장은 “미국·중국·유럽 등 지역별로 선호하는 형태에 따라 세트 디자인을 개발한다”고 말했다.

세트 제품은 중국 시장을 겨냥,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붉은색을 사용해 호리병 모양으로 제작되는 등 계속 진화하고 있다. 쓰리쎄븐은 손톱깎이 관련 신안과 의장이 130여건에 달한다. 손톱깎이 외에도 손톱 미용 도구 등 각종 미용 용품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올해에는 플라스틱을 이용한 펜시(fency) 제품을 내놓고 미용실을 공략중이다. 칼 등 주방용품과 등산용품 등 금속 가공 노하우를 살릴 수 있는 제품과 기존의 강철보다 외관이 깨끗한 스테인리스 제품 개발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이 같은 경쟁력은 연간 3억~4억원에 달하는 연구개발비를 투입한 결과다. 김형규 회장이 “1000원을 벌면 1000원을, 1만원을 벌면 1만원을 전액 투자했다”고 술회했듯 끊임없는 투자와 연구 개발은 중소기업이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지름길이었다.

'777' 마크가 새겨진 손톱깍이. 쓰리쎄븐 손톱깎이는 세계 시장의 43%를 점유.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중국 복제품 사들여 용광로에 부어

이런 쓰리쎄븐에도 걱정거리가 있다. ‘모방 상품’ 문제다. 김 사장은 “명품을 모방한 ‘짝퉁’이 유행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김상묵 사장은 2001년 중국 산둥성 지방에서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쓰리쎄븐의 불법 복제품이 현지에서 대규모로 유통되자 이를 사들여 고철처리 공장의 용광로에 쏟아부었는데 이 모습이 중국의 현지 지방 TV에 방영된 것. 김 사장은 “백화점에 공급되는 정품 외의 복제품은 끝까지 추적해 고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중국에서의 모방 제품은 줄지 않고 있다. ‘777’을 찍어 미국·캐나다에 수출을 하는 바람에 바이어들로부터 억울하게 항의를 받기도 한다. 인도네시아에 유통되는 제품의 80%, 러시아의 60%가 가짜라고 한다. 가짜 상품 제조업자를 일일이 잡을 수는 없는 만큼 쓰리쎄븐은 정품을 살 수 있는 매장을 많이 설치한다는 전략이다. 쓰리쎄븐에 대한 인지도가 있으므로 비싼 값이라도 진품을 사려는 사람이 많다는 분석이다.

이 전략은 쓰리쎄븐이 역점을 두고 있는 ‘브랜드 사업’과도 연결된다. 김 사장은 “쓰리쎄븐 전문 매장을 올 하반기부터 국내외 700여곳에 설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올해 처음으로 쓰리쎄븐 캐릭터를 개발, 전세계로 한층 더 쓰리쎄븐을 알린다는 목표다. 김 사장은 “품질·디자인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갖췄기 때문에 기업 이미지(CI) 통합 작업을 통해 브랜드를 알리는 데 힘을 쏟을 것”이라고 말했다. 태국의 경우 6000여곳에 이르는 ‘세븐일레븐’을 적극 활용하고 10억 인구의 인도 시장에도 진출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OEM 극복이라는 목표에도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쓰리쎄븐의 브랜드 전략은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미국 항공업체 보잉사와 벌인 ‘777’ 브랜드 상표권 싸움은 대표적인 일화다. 쓰리쎄븐은 1993년 미국 특허청에 상표 등록을 출원했지만 이듬해 불허 통보를 받았다. 보잉사가 보잉 777의 정식 출항에 대비, 1990년 상표등록을 해놨기 때문이라는 것. 하지만 쓰리쎄븐은 미국이 ‘선(先) 등록주의’가 아닌 ‘선 사용주의’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을 이용, 1980년대부터 이미 쓰리쎄븐이 ‘777’ 상표로 수출했다는 사실로 보잉사를 공격했고 보잉사는 1998년, 3년여에 걸친 싸움 끝에 상표를 같이 사용하자는 쓰리쎄븐의 제안을 수락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것이다.

쓰리쎄븐은 지난해 3월 홍콩의 하나야카사에 ‘777’ 브랜드를 사용해 중국과 홍콩에 물건을 팔 수 있는 권한을 주고 5년 동안 제조 원가의 8%를 로열티로 받기로 한 데 이어 중국의 보온병 제조업체와 상표권 사용 문제를 놓고 협의 중이다.

“우리 스스로가 시장 만들어간다”

한국에서 고급 제품을 만들고 중국 공장에서는 중저가 제품을 만드는 이원화 전략도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다. 중국에서는 쓰리쎄븐에 대한 이미지가 좋기 때문에 굳이 중국에서 싼 값에 생산한 제품을 팔 필요가 없이 한국에서 만든 고급 제품을 파는 게 이익이라는 설명이다. 대신 중·저가 제품을 원하는 지역에는 중국에서 만든 제품을 수출한다는 것. 연간 5000만개의 손톱깎이를 생산하는 웨이하이(威海) 공장이 오는 10월 가동한다.

손톱깎이는 한번 사면 오래 쓰고 또 ‘금속 제조업’인데 전망이 밝을까. 김 사장은 “아직도 세계 인구의 60%는 손톱깎이를 쓰지 않고 있고 손톱깎이는 필수품에서 기호품으로 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디자인과 기능성을 강조한 제품, 목욕탕 등에서 쓰는 일회용 등 개발의 여지가 많다고 했다.

황규빈 부장은 “쓰리쎄븐은 소비자들이 물건을 보고 결정하도록 새롭고 더 좋은 품질의 물건을 내놓는다”며 “우리 스스로가 시장을 만들어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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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77 손톱깎이와 가방

‘777 가방’은 1952년 설립된 다른 회사 제품

회사간 비슷한 이름으로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손톱깎이를 만드는 ‘쓰리쎄븐’과 가방을 만드는 ‘쓰리세븐’이다. 둘 다 ‘7’이 세 개인 ‘777(Three Seven)’이지만 사명(社名)의 한글 표기는 다르다.

쓰리쎄븐 관계자는 “쓰리쎄븐은 주로 수출을 하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쓰리세븐 가방이 더 유명해 가끔은 ‘무슨 가방 제조 회사에서 손톱깎이를 만드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두 기업 모두 각자 분야에서 오랜 명성을 자랑하고 있다. 역사는 쓰리세븐 가방이 더 오래됐다. 쓰리세븐은 손톱깎이를 만드는 쓰리쎄븐보다 23년 먼저 생겼다. 쓰리세븐은 1952년 서울 동대문에서 학생가방으로 사업을 시작한 이래 현재 서류가방, 여행용 가방, 골프가방등 1000여가지 제품을 제조·생산하고 있다.

* 이 기사는 주간조선의 허락을 얻어 게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