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봉한 SF영화 '아이 로봇(I, Ro bot)'은 로봇의 숫자가 인구 5명당 1대꼴이 된 30여년 뒤의 세상을 보여준다. 잔심부름에서 집안일까지 척척 해내는 만능 서비스 로봇이 생활필수품이 된 시대, 출시를 앞둔 최신형 모델인 로봇 '써니'는 제작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해 인간과 같은 '생각'을 갖게 된다. 그 결과는 인간과의 투쟁. 과연 로봇의 지능은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

동기 없인 생각 불가능

한국과학기술원(KAIST) 바이오시스템학과 정재승 교수는 "제작 과정의 오류로 인해 로봇이 인간과 같은 지능을 갖게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개봉 첫날 영화를 보았다는 정 교수는 그 이유를 인간의 뇌에서 찾았다.

인간의 뇌에는 학습 기억 시스템과 함께 감정 시스템, 그리고 동기를 부여하는 보상 시스템이 있다. 로봇은 이 가운데 기억과 초보적인 학습 시스템만을 갖추고 있다는 것. 정 교수는 "메모리에 지식이 늘어나는 것은 가능하지만 영화에서처럼 로봇이 '우리가 인간을 지배해야겠다' '로봇이 인간을 해칠 수 없다는 로봇 3법칙은 적절하지 않다'는 등의 생각을 하려면 감정과 이를 유발하는 보상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고려대 정보통신대 이성환 교수도 "현재의 인공지능은 어린아이 수준의 초보적 단계라고 흔히 말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는 그 정도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로봇의 인공지능은 고도로 학습된 지식을 갖추고 있어도 어린아이의 상식적 추론과 판단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것.

이 점에서 인간과 가장 유사한 지능을 갖춘 로봇은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인공지능연구소가 개발한 '코그(Cog)'라고 볼 수 있다. 코그는 몇몇 간단한 감각과 운동 프로그램만을 갖춘 채 '아버지는 아들보다 나이가 많다'는 등의 상식을 축적하고 사람의 행동에 반응하면서 지능을 키워가고 있다.

지식보다는 시각 발달이 먼저

인간형 로봇 '아미'를 개발한 KAIST 양현승 교수는 "인공지능이 한계에 부딪힌 이유는 이제까지는 사람이 생각하는 과정보다는 그 결과에만 집중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최근에는 뇌 구조와 기능을 모방해 프로그램을 만들고 이를 칩에 구현하는 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

양 교수는 "이제까지 로봇의 지능은 이른바 '전문가 시스템'으로, 주로 특정 전문지식을 축적해 사람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아무리 전문 지식을 많이 갖고 있어도 연구실 밖으로 나가면 새로운 정보에 적응하지 못해 혼란에 빠지게 된다.

김 박사에 따르면 현재 로봇이 하는 것처럼 복잡한 수식이나 논리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사람의 뇌에서 극히 일부분의 기능에 불과하다.

인간의 뇌기능의 60%가 시각정보 처리에, 20%는 청각정보 처리에 이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숲에서 하나하나의 나무를 구별해낼 수 있고 거리의 소음 속에서도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구별해낼 수 있다. 김 박사는 "로봇의 인공지능이 인간을 닮아가려면 바로 이러한 상식적인 정보를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MIT 인공지능연구소에서 만든 키스멧 코그의 머리에 다양한 표정 표현 기능이 추가됐다. 키스멧은 사람의 표정을 흉내 내는 식으로 로봇과 인간 사이에 초보적인 사회적 교류를 하고 있다. MIT제공



로봇의 지능은 인간과 다를 수도

반면 로봇의 지능은 인간과 다른 형태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과학기술부 21세기 프론티어 로봇기술개발사업단을 이끌고 있는 김문상 박사는 "신(神)이 인간에게 부여한 지능과 학습능력을 기계에 부여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많이 있으며,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인간복제 문제와 같은 윤리적 논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코그를 만든 MIT 로드니 브룩스 교수도 지능은 주어진 자극에 대한 반응의 합(合)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벌이나 개미가 지극히 낮은 수준의 지능만을 갖고 있지만 훌륭한 사회체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 실제로 브룩스 교수는 단순한 기능만을 탑재한 곤충로봇을 만들어 탐사와 같은 복잡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음을 입증한 바 있다. 이는 이후 미국의 화성탐사로봇 소저너의 기본원리가 되기도 했다.

김 박사는 "굳이 인간과 같은 지능을 갖지 않아도 특정한 서비스를 완벽하게 해내는 로봇이 미래 로봇 산업의 형성에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러워지면 청소해야 한다' '배가 고프면 (배터리가 바닥나면) 먹어야 한다(충전해야 한다)'는 등의 기본적인 공리만으로도 주어진 일을 잘하는 '지능 로봇'이 가능하다는 것.

영화에서 로봇 써니는 "나는 무엇인가"라고 절규한다. 써니와 같은 불행한 로봇이 나오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금 "로봇은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