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 무교지점 김동수(金東秀) 지점장이 4년6개월 전 처음 지점장을 시작했을 때 지점장의 개인대출 전결한도는 1억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1000만원. 지점장이 사무실에 앉아 도장이나 찍으며 결제할 시간 있으면 세일즈하라는 게 본점의 주문이다.
김 지점장은 "실적에 따라서 연봉과 인사이동이 결정되기 때문에 앉아 있으면 뒤처지는 기분이다"고 말했다. 김 지점장은 '고객상담실'이란 팻말이 붙은 지점장실에 오전·오후 1시간 정도씩 머무를 뿐 나머지 시간은 거래처를 찾아 대출 세일즈를 하고 있다.
서울 시내 중심가의 한 국민은행 지점장은 5년 전 지점장이 됐다. 옛날 같으면 목에 힘주고 앉아있을 '고참 지점장'이지만 요즘은 거래처 관리를 위해 지점별 경계선을 넘어서 장안동 부품상가를 뒤지고 경기도 안산까지 가서 업체 사장들을 접대한다. 그는 개인대출 전결한도가 아예 없다.
과거 대출 권한을 무기로 예금을 끌어들이며 지점의 실적을 대부분 올리던 은행 지점장들이 이제는 발로 뛰는 '대출 세일즈맨'으로 변신하고 있다. 은행들이 최근 2~3년 사이 '후선(後線)업무 집중화'를 추진하면서 대출 결제 권한을 본점에 집중시키는 대신 실적주의를 앞세워 지점장들을 채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국민은행의 경우 이미 후선업무 집중화 시스템 확충 경쟁이 불붙은 상태다. 우리은행은 작년 6월 첨단 업무자동화 시스템을 갖추고, 대출승인 등 서류 업무는 본점에 집중하는 대신 지점은 상품 판매와 상담 위주의 진정한 '영업점'으로 바꾸고 있다.
국민은행도 2002년 7월 후선업무를 집중 처리하는 영업지원센터를 출범시켰다. 영업지원센터에선 대출 실행 등 후선업무를 맡아서 한다. 지점에서 고객의 연봉·담보 등을 입력하면 온라인으로 대출 가능 금액과 금리가 자동으로 계산돼 나온다. 지점장이 대출 금액을 더 주고 말고 할 권한이 아예 없어진 것이다.
2001년 국내에서 가장 먼저 후선업무 집중화를 시작한 제일은행도 아예 지점장에게 대출 금액과 금리 전결권을 주지 않고 있다.
또 지점장 연봉도 근무연한에 따라 자동적으로 올라갔던 과거와 달리 성과급이 정착되고 있다. 국민은행은 지점장에게 실적에 따라 S·A·B·C·D 등 5개 등급으로 나눠 차등 성과급을 지급하고 있다. 우리은행도 지점장급은 M1~M5로 나눠 차등해서 연봉을 결정하고 있는데, 등급 간 연봉 차이는 연 1000만원 가까이 난다.
게다가 작년 하반기부터 지점에선 예금·대출업무 외에 보험·휴대전화까지 판매하게 됐다. 방카슈랑스(은행에서의 보험 판매), 모바일뱅킹 등이 도입됐기 때문. 지점장들의 경우 할당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후선으로 발령나는 경우가 많아 스트레스는 더욱 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지점장은 "지점장 됐다고 운전기사·개인비서가 나오고 '폼' 잡던 시절은 모두 지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