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자신의 재신임을 묻는 국민투표를 12월15일 무렵에 하자고 제안한 13일, 서울 금융시장의 외국인투자자들은 이번 재신임 건이 한국 경제의 근본적인 이슈는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특히 국민투표 일정이 제시된 데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 재신임 과정에서 구조조정이나 경기회복을 둘러싼 정부의 정책이 혼선을 빚거나 지연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우려하는 시각이 많았다. 국제신용평가기관인 피치는 이날 외환보유액 급증을 이유로 중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긍정적'으로 상향조정했지만, 한국의 신용등급은 그대로 유지했다. 피치의 국가신용등급 담당 애널리스트인 브라이언 컬튼은 국제 금융통신사인 다우존스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상황으로 인해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이나 등급전망을 수정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한국의 정치적 리더십에는 다소 실망했다"라고 말했다.

13일 서울 주식시장에서 외국인투자자들은 개장 직후 매도 우위를 보이기도 했지만, 이내 '사자'에 나서면서 1653억원(증권거래소 시장 기준) 매수 우위를 기록했다. 외국인들은 지난 금요일에도 3135억원의 주식 순매수(사들인 것에서 판 만큼을 뺀 것)를 기록, 재신임 발언 이후에만 4770억원 어치의 한국 주식을 사들였다.

정치 이벤트가 경제에 큰 영향 못준다는 의견 많아= 외국인투자자들은 이번 재신임 국민투표 자체는 한국 경제와 금융시장에 큰 변화를 가져오지 않을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템플턴투신운용 마이클 리드 대표이사는 "장기적인 전망을 중시하기 때문에 재신임 건 같은 단기적인 정치 이벤트에는 주목하고 있지 않다"라고 밝혔다. 하나알리안츠투신운용 오이겐 뢰플러 대표이사는 "정부의 경제정책 변화가 아닌 '정치 상황만의' 변화는 외국인들의 투자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외국인들의 관심은 세계적인 경기 회복에 쏠려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UBS증권 진재욱 지점장은 "최근 외국인들의 관심은 세계적인 경기 회복 국면에서 가장 빨리 반응하는 아시아 국가들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데 있다"라며 "한국뿐 아니라 일본·대만·태국 등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도 외국인들이 적극적으로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정책 혼선은 피해야= 외국인들은 이번 재신임 발표 자체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지만, 재신임 과정에서 정부 정책의 혼선이나 지연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높았다. 바클레이 캐피털(싱가포르 사무소)의 한국 담당 이코노미스트인 도미니크 프레코는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인 격변으로 인해 구조조정 노력이나 정부의 재정정책이 지연된다면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외국계 증권사 서울 지점장은 "지난 주 뉴욕에서 재신임 선언 뉴스를 접했지만, 현지 뉴스에서 크게 다뤄지지 않더라"며 "노 대통령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지도 회복을 위해 어떤 정치적인 승부수를 던질 것이라는 사실은 외국인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어느 정도 예견됐던 사실"이라고 말했다. 내년 4월 총선으로 정치권이 개편되고, 이에 따른 경제정책의 변화가 있기 전에는 외국인들의 시각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란 설명이다.

또 다른 외국계 투자회사의 서울 지점대표는 "노 대통령의 경제정책은 상당부분 전임 대통령의 정책을 이어받고 있다"라며 "누가 대통령이냐에 상관없이 경제 정책의 일관성만 유지된다면 경제 자체는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씨티그룹(싱가포르) 클리프 탄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재신임 국민투표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수개월이 지나야 나타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