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 발자국이 또 있어?"
전라도 일대에서의 공룡 발자국 발견 소식에, 전공은 다르지만 항상 나의 연구에 관심을 갖고 있는 동료학자가 던진 말이다. 그만큼 우리나라에서 공룡 발자국은 이제 흔하다. 처음 공룡 발자국이 우리나라에서 발견됐을 때 느꼈던 신비감은 많이 희석됐다.
동료 학자가 "공룡 발자국이 이렇게 많으니, 그만큼 공룡들이 많이 살았다는 증거 아니냐"고 묻는다. 물론 그렇다. 한반도에 공룡이 번성했다는 사실은 거의 확실하다. 하지만 한반도의 공룡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보다 넓게 볼 필요가 있다. 전 세계 공룡의 생태를 머릿속에 넣고, 당시의 한반도를 바라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현재 한반도에서 발견되는 공룡화석들은 모두 중생대 백악기 지층에 묻힌 것들이다. 공룡들은 지금으로부터 2억3000만년 전인 삼첩기 후기부터 6500만년 전인 백악기 후기까지 약 1억6000만년 동안 지구를 지배했다.
시대적으로 보면, 공룡은 쥐라기 때가 훨씬 살기 좋았다. 영화 '쥐라기 공원'을 보면 거대한 초식공룡인 브라키오사우루스가 키 높이만큼 자란 삼나무 숲 속에서 먹이를 뜯고 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당시 공룡들의 쾌적한 생활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쥐라기의 온난한 기후와 풍부한 식물은 초식공룡 거대화의 바탕이 됐다. 하지만 막상 한반도에 공룡들이 찾아온 것은 공룡시대 후기인 백악기이다.
백악기의 지구는 어떠했을까? 아시아가 속해 있던 초대륙 '판게아'는 삼첩기 때부터 하나의 대륙으로 뭉쳐있다가, 쥐라기 후기부터 큰 대륙으로 갈라지기 시작한다.
백악기가 되자 하나의 대륙이던 아시아, 북미, 유럽은 서로 분리되기 시작했다. 당시 한반도는 일본, 중국과 하나의 대륙으로 뭉쳐있었고, 곳곳에는 커다란 호수가 산재한 환경이었다.
당시 화산 폭발과 운석의 낙하는 지구의 대기환경에 이산화탄소 등 유해물질을 채우고, 오존층까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유럽의 기후는 서늘해지고 곳곳에서 우기가 찾아왔다.
대형 초식공룡들은 방대한 양의 식물들을 먹어치워 산림을 황폐화시켰다. 못견딘 식물들은 키 작은 속씨식물로 진화했다. 이런 환경에서는 디플로도쿠스 같은 어금니가 없는 목 긴 공룡보다, 하드로사우루스 같은 어금니가 발달한 오리주둥이 공룡들이 훨씬 더 유리했다.
한반도는 위기에 몰린 공룡들의 '마지막 보루' 역할을 했다는 것이 현재 유력한 학설이다. 그럴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은 기후조건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의 한반도는 지금과 달라서, 미국의 오대호 같은 커다란 호수가 산재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호수 주변에는 각종 침엽수와 양치류 같은 식물들이 풍부했다. 공룡들도 용각(龍脚)류, 조각(鳥脚)류 등 골고루 분포했다. 공룡 주변에는 거북, 악어, 초기 포유류 등 각종 척추동물과 연체동물·절지동물 등의 화석이 풍부하게 발견되고 있다.
때문에 한반도의 공룡화석을 연구하다보면, 수많은 익룡들이 한반도 남부 호숫가에서 거대한 날개를 접고 먹잇감을 찾고 있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상상하게 된다. 당시 한반도와 비슷한 환경의 땅은 몽골 고비사막과 중국 북동부 정도였다. 같은 시기에 북미에서는 공룡들이 절멸의 길을 걷고 있었다.
'공룡의 피난처' 한반도를 증언하는 증거는 수없이 발견되고 있다. 해남·화순·여수·마산·울산 등 전라도와 경상도 곳곳에서 나타나는 세계 최대 규모의 공룡 발자국 화석이 대표적이다. 공룡 알은 하동·보성·시화호·통영에서, 익룡 발자국은 해남에서 무더기로 발견됐다.
보성·해남·하동·의성 등지에서는 공룡뼈 화석이 발굴을 기다리고 있다. 공룡 화석과 함께 산출되고 있는 식물 화석 및 각종 척추·무척추 동물의 화석도 백악기 당시의 한반도를 복원하는 데 큰 힘이 될 전망이다.
한반도 공룡 연구가 앞으로 풀어야할 첫 번째 숙제는 일단 공룡발자국 연구가 될 전망이다. 발자국은 공룡의 걸음걸이, 속도, 행동 습성 등 뼈 화석이 갖지 못한 다양한 정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네이처지에는 공룡 발자국 연구를 통해 티라노사우루스가 시속 20㎞도 달리지 못했다는 내용의 논문이 실리기도 했다. 통설은 시속 70㎞였다. 일부 학자들은 티라노사우루스가 죽은 동물만을 먹는 나약한 짐승이었다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한반도는 이러한 논쟁을 해결할 수 있는 무수한 공룡 발자국 자료를 갖고 있다. 최근 한반도의 공룡 연구가들이, 발자국 연구결과 공룡이 걷거나 뛰는 대신 종종걸음(trot)으로 걸었다는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백악기 후기의 수수께끼를 푸는 데 한국은 천혜의 땅이다. 기후 및 습도, 공룡과 다른 파충류와의 관계, 운석 충돌설의 진위, 공룡에서 조류로의 진화이론 등 '숙제'는 무수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학자들은 컴퓨터 단층 촬영을 통해 공룡알 내부 구조를 해석하는가 하면, 백악기
후기의 공룡 외 각종 동물들의 생태 분석을 진행 중이다.
●허민(許民) 교수는
△고려대 대학원 고생물학 박사 △전남대 지구환경과학부 부교수 △국내 각지 공룡 화석 발굴 참여 △2003년 영국 케임브리지국제전기센터 선정 △'2002년 올해의 과학자' 전남대 공룡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