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전 정상업무에 복귀한 조흥은행 본점 직원들이 업무 시작 직전 모두 일어나 창구에 있는 고객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a href=mailto:krchung@chosun.com>/정경렬기자 <

나흘간의 파업을 끝낸 조흥은행은 23일부터 전 점포가 정상운영에 들어갔으나, 여전히 유동성(현금) 부족 상태가 이어지는 등 '파업 후유증'이 계속되고 있다. 이날 조흥은행은 한꺼번에 빠져나간 7조원대의 예금을 다시 끌어오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예금 금리를 최대 0.4%포인트 올렸다.

또 한은의 유동성 대출 3조원을 지원받은데 따른 조건으로 조흥은행은 기존 대출금이 회수되는 범위 내에서만 신규대출이 가능해지는 등 영업 위축이 불가피해졌다. 이날 주식시장에서는 노·사 합의에 실망한 국내외 투자자들이 신한지주·조흥은행 주식을 내다 팔아 양쪽 주가가 동반 폭락했다.

◆ 모든 점포 정상영업 재개

조흥은행 본점을 포함한 전국 557개 영업점(출장소 포함)이 23일 오전 9시30분부터 모두 문을 열고 정상영업에 들어갔다. 전산망 마비 위기의 진원지였던 서울 역삼동 중앙전산센터에도 직원 300여명이 일요일인 22일 오후 4시부터 업무에 복귀, 밤샘 작업을 통해 전산 시스템을 재정비했다.

IT운영실 이태준 실장은 "파업기간 중 결제대금이 제때 처리되지 못한 것 등 일부 민원성 업무 처리만 조금 남아있는 상태이며, 전산망 자체는 정상 가동되고 있다"고 말했다. 예금 이탈 사태도 진정되는 모습을 보였다. 은행측은 "더 이상의 예금 인출 사태는 없었으며, 기업고객의 경우 인출한 자금을 재예치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 은행 유동성 위기 여전

조흥은행은 파업기간 중인 지난 18~22일 은행 예금계정에서 3조1000억원, 외화예금 2000억원, 종금계정(발행어음+CMA) 2조원, 신탁계정 230억원 등 총 5조4000억원의 예금이 인출된 것으로 최종 집계됐다고 23일 밝혔다. 그러나 파업 직전에 빠져나간 예금까지 모두 합하면 파업사태 관련 예금 인출액은 총 7조~8조원에 이른다.

은행측은 빠져나간 예금의 재예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파업사태로 은행에 대한 고객들의 불신이 깊어져 예금 재예치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서울 모 지점장은 "오전 내내 주요 고객을 찾아가 예금을 재예치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고객들이 '또 안그런다는 보장이 어디 있느냐'며 냉담한 태도를 보였다"고 전했다.

예금 재예치의 성과가 저조할 경우 은행의 자금난은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다. 조흥은행 지동현(池東炫) 부행장은 "현재 6조2000억원 정도의 자금부족 상태이며, 오늘(23일)은 지난 금요일 교환에 돌린 자기앞수표 결제가 일시에 집중되는 날이어서 한국은행에 3조원의 유동성 지원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한은은 이날 오후 3조원의 유동성조절대출(유동성 부족을 겪는 금융기관에 지원하는 긴급대출·연리3.75%)을 실시했다. 한은의 유동성 대출은 지난 2000년 말 제주은행과 수협에 이어 2년여 만이다.

조흥은행 측은 앞으로 2주일 안에 파업기간 중 인출된 예금의 70~80%가 되돌아오지 않으면, 채권·주식 등 보유자산을 매각해야 할 것으로 예상했다.

◆ 은행 경영에 큰 부담

조흥은행은 이탈한 고객 예금을 다시 끌어들이기 위해 이날 정기예금 금리를 최대 0.4%포인트 인상했다. 또 파업기간 중 예금을 중도해지한 고객들에겐 이달 말까지 재예치할 경우 중도해지를 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해 주고, 은행 파업 탓에 대출이자를 제대로 못내 연체한 고객들에겐 23~24일 중 대출이자를 갚을 경우 연체이자를 물리지 않기로 했다.

이같은 예금금리 인상과 연체이자 면제 조치는 은행 수익 악화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또 한은의 유동성 대출을 받은 조흥은행은 한은으로부터 대출동결 조치를 받음에 따라 신규 예금 금액을 초과해서 대출을 할 수 없게 돼 대출영업이 당분간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같은 파업 후유증과 노조에 파격적인 고용보장과 임금인상을 약속한 협상안이 전해지면서, 신한지주와 조흥은행 주식은 이날 모두 폭락세를 보였다. 신한지주 주가는 외국인 매도세에 밀려 7.6% 급락한 1만2850원을 기록했고, 조흥은행도 지난 주말보다 5.1% 급락, 4510원까지 떨어졌다.
대우증권 이준재 연구원은 "신한지주가 조흥은행 노조 요구를 다 들어줌으로써 합병 시너지(상승)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시장의 평가가 주가에 반영됐다"고 분석했다.

한 외국계 투자은행 관계자는 "기업 인수합병(M&A)의 주 목적은 구조조정과 인력감축인데, 임금은 올려주고 인력감축도 안한다는 합의안만 보면, 신한지주가 왜 조흥은행을 인수하려 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더구나 이같은 합의안이 노사정 3자 합의형태로 나온 것을 보면 향후 한국의 기업구조조정에 상당한 나쁜 선례를 남긴 셈"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국제 신용평가회사 피치는 이날 조흥은행의 신용등급을 종전대로 BBB(안정적)로 유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