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 없이 잘 움직이는 자동차가 최고라고 생각하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 자동차는 이미지와 컨셉트로 가격이 결정된다.

예컨대 렉서스라는 말을 들으면 괜히 조용한 차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볼보라면 안전성이 뛰어날 것 같은 생각이 들고, 아우디에서는
알루미늄으로 만든 차체와 항시 4륜구동(콰트로)이 연상된다. BMW를 보면
강력한 파워와 첨단 편의 장비가 느껴지고, 캐딜락을 타면 침대 위에
있는 것 같은 부드러운 승차감이 기억난다.

이처럼 자동차 이름에서 풍기는 이미지 때문에 자동차 가격이 대당
수백만원 아니 수천만원 차이 난다. 영국산 재규어를 보면 과거 품질은
안정되지 못했지만, 재규어만이 갖고 있는 귀족적인 기품과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렇다면 현대자동차나 기아자동차는 브랜드에서는 어떤 이미지가
풍겨날까? 아마도 가치대비 가격(VALUE FOR THE MONEY)일 것이다. '이
정도 가격에 이 정도 품질이면 괜찮은 차'라는 뜻이다. 현대차가
주장하는 '가격에 비해 가치가 좋은 차'라는 개념은 과거에는 통했을지
모르지만, 앞으로는 현대차에 부담이 될지 모른다. 새로운 컨셉트를
만들어 소비자에게 다가가야 하는 때가 왔다.

이 점에서 혼다자동차는 현대차에 벤치마킹(좋은 것을 배우는 것) 대상이
됨 직하다.

그동안 현대·기아차는 덩치가 크고 고급스러운 차를 만들어야 잘
팔린다는 신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런 맹신을 깬 회사가 바로 일본의
혼다다. 혼다는 소형차 크기의 시빅과 중형차 어코드로 미국 시장을
제패했다. 시빅은 '작지만 안전한 차'라는 컨셉트로 미국 소비자에게
다가갔다. 대표적인 예가 시빅에 적용될 최첨단 충돌 방지 브레이크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운전자가 깜빡 졸거나 딴 생각을 하는 바람에 앞차에 빠르게
접근하거나, 도로를 벗어나는 경우, 전면과 측면에 장착된 레이더 센서가
작동한다. 그 다음 운전자가 정신을 차리도록 경고음이 울린다. 그래도
차가 제자리로 오지 않으면, 안전벨트에 달린 작은 모터가 작동, 벨트가
부르르 떨리게 해서 운전자를 깨운 다음, 브레이크가 자동으로 약하게
걸린다.

혼다 중형차에 채용될 자동 크루즈 컨트롤 기술도 BMW 최고급 모델과
같은 수준이다. 크루즈 컨트롤이란 가속페달을 밟지 않아도 일정속도로
주행하도록 하는 장치를 말한다. 자동 크루즈 컨트롤 시스팀은
일정속도로 주행을 하다가, 앞 차량과 거리가 가까워지면 자동적으로
속도가 줄어들고 브레이크가 작동하는 시스팀이다.

'작지만 안전하다'는 컨셉트를 강조한 혼다는 미국의 고령 운전자에게
좋은 반응을 끌어냈다. 그리고 미국 내 베스트셀러 카 자리를 몇 년간
유지한 원동력이 됐다.

조그만 변화를 통해 브랜드 이미지를 높인 예는 많다. 예전에는 CD
플레이어만 장착되면 고급차라고 생각했다. 그 후 6장, 9장, 심지어
12장짜리 CD를 한꺼번에 집어넣고 원하는 음악을 듣는 CD 체인저가
나왔다. 하지만 CD 체인저는 트렁크에 장착되거나 콘솔 박스 안에 달려
있어 CD를 바꾸려면 차를 세워야 했다. 도요타 렉서스는 별도의 CD
체인저 없이 운전자 옆에 달린 오디오에 직접 6장의 CD를 삽입하고 뺄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내서 운전자의 불편함을 덜어주었다.

물론 현대차나 기아차의 품질도 나날이 좋아지고 있다. 하지만 세계적인
브랜드로 자리잡으려면 미세한 부분까지 소비자들의 안전과 편안함을
배려하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김영수 자동차팀장 yskim2@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