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자동차산업 정책이 뚜렷한 방향을 잡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디젤승용차는 정부 주무 부처가 국내 도입을 허용키로 결정했으나
환경부의 반대로 판매 시기가 불투명해졌다. 또 픽업트럭 무쏘 스포츠와
관련된 정부 방침은 끊임없이 변경되면서 생산업체와 소비자 모두 혼란에
빠졌다.
신(新)차종 개발에 최소 2년의 개발기간을 필요로 하는 자동차업계는
자꾸만 뒤집히는 정부 정책 때문에 신차 개발 투자를 하지 못하고 있다.
자동차는 지난 4월을 기점으로 반도체를 제치고 수출 1위 품목으로
떠오르는 등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일관성 없는 정부 정책으로 경쟁력을 상실할 위기에 처했다.
◆ 화물차에서 승용차로 변한 무쏘 스포츠
건설교통부는 지난달 28일 "자동차 관리법 시행규칙을 개정, 화물차의
적재함 면적기준을 기존 '1㎡ 이상'에서 '2㎡ 이상'으로
조정한다"고 밝혔다.
규정이 바뀌면 현재 적재함 크기가 1.74㎡인 쌍용자동차 무쏘 스포츠는
화물차에서 승용차로 분류돼 소비자는 특소세를 부담해야 한다.
이번 결정은 건교부가 지난 2월 자동차 관리법 시행규칙을 개정, 화물
적재함 면적이 1㎡ 이상이면 화물차로 인정해 무쏘 스포츠가 특소세
혜택을 받도록 한 이후 3개월 만에 또다시 규정을 바꾼 것이어서 일관성
없는 정책이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건교부의 발표로 무쏘 스포츠를 생산하고 있는 쌍용차 경영진은 혼란에
빠졌다.
비록 2005년 말까지 유예기간을 두긴 했지만 적재함 크기를 바꾸려면
막대한 투자비가 들기 때문. 쌍용차 관계자는 "개정된 화물차 기준을
맞추려면 적재함 길이를 약 20㎝ 늘려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차량의 뼈대인 프레임과 휠베이스 등도 바꿔야 하기 때문에 수백억원의
비용이 든다"고 말했다.
소비자들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건교부 발표 직후 쌍용차 매장에는
"무쏘 스포츠를 타고 있는 사람도 특소세를 내야 하느냐?", "출고를
기다리고 있는 경우에는 어떻게 되느냐?"는 등의 고객문의 전화가
빗발쳤다.
지금까지 무쏘 스포츠와 관련된 정부 정책은 말 그대로
변화무쌍(變化無雙)했다.
지난해 9월 출시된 무쏘 스포츠는 처음 건교부에 의해 화물차로
분류됐다. 하지만 판매가 한창 진행 중이었던 10월 국세청은 이 차를
'승용차'로 분류, 특소세를 부과했다. 소비자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국세청 상급 기관인 재경부는 12월 무쏘 스포츠를 다시 '화물차'로
분류, 특소세를 면제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거둬들인 특소세는 환급해
주지 않았다. 소비자들을 대신해 54억원의 특소세를 부담했던 쌍용차만
피해를 입었다.
이번 자동차 관리법 시행규칙 개정으로 정부의 무쏘 스포츠 차종 분류는
불과 8개월 만에 화물차→승용차→화물차→승용차로 바뀌었다.
정부는 또 올 3월 '무쏘 스포츠'의 명칭을 '무쏘 픽업'으로 바꾸라고
구두(口頭)로 요구했다. '스포츠'라는 명칭 때문에 화물차보다
승용차라는 이미지가 강해져 소비자들이 화물 적재함에 덮개를 설치하는
등 개조를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쌍용차는 정부와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차량 명칭을 바꾸기로 했지만, 사기업의 상품명에 대해 정부가 관여하는
보기 드문 전례를 남겼다.
◆ 디젤승용차 정책도 오락가락
정부는 지난 3월 27일 열린 경제정책 조정회의에서 2005년부터
디젤승용차 판매를 허용키로 결정하고, 승용차 배출가스 기준을 현재
유럽에 적용되는 유로3 수준으로 완화하기로 결정했다. 현행 디젤승용차
배출기준은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수준이어서 디젤승용차 판매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경부는 지난 5월 11일 "현행 배출가스 기준을 완화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밝혀 디젤승용차 개발을 추진하던 자동차업계를
긴장시켰다. 업계의 우려가 높아지자 정부는 다시 5월 30일 경제장관
간담회에서 디젤승용차의 국내 시판을 허용하기 위한 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 개정에 착수하기로 결정했다.
정부 부처 간의 손발이 안 맞는 바람에 디젤승용차 허용이 3개월간
표류한 셈이다.
내년 초부터 조정되는 자동차 특소세율도 문제다.
정부는 현행 1500㏄ 미만(7%), 2000㏄ 미만(10%), 2000㏄이상(14%) 등
배기량별 3단계인 특소세율을 두 단계로 통합, 내년 초부터 적용키로
했다. 하지만 시행이 6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은 현재까지 기준 배기량과
세율을 얼마로 할 것인지 확정하지 않고 있어 자동차업체들이 애를
태우고 있다. 특소세율 기준 배기량이 중요한 것은 자동차 엔진 제작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특소세율 기준 배기량이 1600㏄로
정해질 경우 현재 배기량 1500㏄급 차량은 1600㏄급으로 엔진 크기를
바꾸는 작업이 필요하다.
◆ 신차 개발 보류하는 자동차업계
정부의 자동차정책이 오락가락하면서 업체들은 신차 개발 계획을 세우지
못한 채 발만 구르고 있다.
기아자동차는 SUV(스포츠 유틸리티 비클) 쏘렌토를 개조해 무쏘 스포츠
크기의 승용형 픽업트럭을 개발할 계획을 세웠으나 건교부가 화물차
기준을 변경함에 따라 포기했다.
기아차 관계자는 "정부가 기준을 바꾸는 바람에 픽업트럭 개발이 차질을
빚게 됐다"며 "개정된 기준에 맞는 픽업트럭은 현재로선 미국산 차량인
'닷지 타코다'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도 기대했던 디젤승용차 내수 판매 결정이 오락가락하면서
개발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디젤차의 수출 경쟁력
확보에도 비상이 걸렸다. 현대차는 유럽 수출용으로만 디젤승용차를
만들기에는 생산대수가 너무 적어 수익성을 맞출 수 없는 상태다.
자동차공업협회 허완 이사는 "정부가 최소 10년 앞을 내다보는
자동차정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