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증시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의 대만 편애(偏愛)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대만 증시에선 외국인들이 연일 주식을 사모으는 반면, 서울 증시에선 올
들어 꾸준히 주식을 팔고 있는 것. 이 때문에 올 들어 대만과 서울에서
외국인의 주식 누적 순매수 금액의 격차는 날로 커지고 있다.
올 들어 지난 17일까지 외국인은 대만 증시에선 1조8000억원어치의
주식을 순매수한 반면, 서울 증시에선 1조5000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외국인은 이달 들어서도 대만 증시에서는 5300억원어치의 주식을
순매수(17일까지)한 반면, 한국에서는 4500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지난주엔 북핵 리스크 완화 조짐으로 서울 증시에서도 모처럼 외국인
매수세가 살아나긴 했지만, 같은 기간 외국인이 대만에선 더욱 많은
주식을 사들인 탓에 격차는 줄어들지 않았다.
주가 역시 한국은 올 들어 1.6% 내린 반면, 대만은 2.9% 올랐다.
◆쌍둥이가 각기 다른 길로 간 이유
서울과 대만 증시는 작년까지만 해도 주가가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입도 비슷한 흐름을 보여 '쌍둥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비슷하게 움직인 것은 두 시장 모두 반도체 등
IT(정보기술) 산업의 비중이 높아 미국 반도체 시황과 주가에 민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 들어 서울과 대만 시장의 동조 현상이 깨진 것은 왜일까?
전문가들은 그 원인으로 북핵 파문으로 한국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진
점과, 정부 출범 이후 한·미(韓美) 간 이견이 불거진 점을 공통적으로
꼽는다.
그러나 두 시장이 차별화된 것을 단지 북핵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미국계 골드만삭스증권의 임태섭 전무는 "차별화를 부른 가장 큰 이유는
대만 기업들의 수익성이 한국 기업들보다 낫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차별화 요인으로는 대만의 반도체 산업이 D램 가격 하락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았다는 점이 꼽힌다. 미래에셋증권 이정우
투자전략실장은 "올 들어 대만으로 유입된 외국인 순매수세의 40%는
TSMC와 UMC 같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에 몰렸다"며 "이들
업체는 D램과는 무관한 무선통신용 칩 생산업체여서 D램 가격 하락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고 실적이 호조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또 삼성증권 오현석 연구원은 "SK글로벌 분식 회계 쇼크와 카드채 위기,
내수 침체 등 대만 증시에 비해 한국 증시의 매력을 떨어뜨린 요인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골드만삭스 임태섭 전무는 "외국인으로 하여금 대만 증시보다 서울
증시를 사랑하게 하는 한 가지 방법은 한국의 내수 경기가 대만에 비해
진작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경제 규모는 대만의 2배에 달하므로
내수 경기 회복시 파급 효과도 크게 나타난다는 것. 임 전무는 그러나
올해는 이 같은 일이 발생할 가능성 역시 낮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