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치동에 사는 전업(專業) 주식투자자 안경식(58·가명)씨는 매일
아침 8시 집 근처 H증권 지점으로 출근한다.

3억원이 조금 넘는 돈으로 주식투자를 하고 있는 안씨를 위해 지점에서는
객장 위층 별도 공간에 책상과 전화기·컴퓨터를 제공해준다. 많으면
한달에 20억원 이상의 매매주문을 내는 안씨는, 증권사로선 무시할 수
없는 큰 고객인 만큼 배려를 해주는 것이다. 안씨 외에도 이 지점에는
2명의 거액 전업투자자들이 하루도 빠짐없이 주식투자를 위해 지점에
나온다.

하지만 예전에 이 지점에 전업 투자자 6명이 자리를 지키던 것에 비하면
숫자가 절반으로 줄어든 셈이다. 증시 침체가 장기화된 탓이다.

안씨는 "99년 여름 코스닥 붐이 일면서 다니던 직장도 때려치우고
주식투자에 매달렸다"면서 "한때 수백%의 수익률을 올린 적도 있지만
2000년부터 슬금슬금 줄어들어 종자돈 5억원 중 2억원이 날아갔다"고
전했다. 그는 "답답한 마음에 요즘은 선물·옵션에까지 손을 대고
있지만, 생각만큼 수익률이 오르질 않아 답답하다"고 덧붙였다. 안씨는
요즘 들어 오전에만 주식 거래를 하고, 오후에는 아예 근처 골프연습장에
나가 스트레스를 푸는 날이 잦다.

또 작년 초까지 서울 여의도 오피스텔을 빌려 선물·옵션 전문
부티크(소수의 투자자들로부터 투자자금을 위탁받아 운용해 주는 소규모
투자자문사)를 운용했던 김진권(34·가명)씨는 석 달 전 중소기업
재무담당 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생각만큼 이익을 내주지 못하자 돈을 맡겼던 투자자들이 돈을 다시
빼갔고, 같은 사무실에서 선물·옵션 거래를 하던 동료 3명은 뿔뿔이
자신의 갈 길을 찾아 흩어졌기 때문이다.

김씨는 한때 집에서 홀로 선물·옵션 트레이딩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집중도도 떨어지고 수익률도 신통치 않자 지인의 소개로 지금 회사에
입사했다. 같이 일하던 사무실의 다른 멤버들은 증권사 지점에 자리를
잡아 여전히 전업투자자의 길을 가고 있지만, 김씨를 적잖이 부러워하는
눈치다.

"알고 지내던 투자자 중 일부는 아예 작년 초에 재개발 아파트 브로커로
돌아섰습니다. 투자자들 돈을 모아 일명 '떴다방'을 하고 있지요. 그
사람들이 돈 버는 걸 보면서 '나도 빨리 부동산으로 돌아설 걸' 하며
후회한 적도 많습니다."

한국에 전업 투자자가 급격히 늘어난 것은 98년부터 2000년 초반까지
주식시장이 대활황을 보일 때였다. 전업투자자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2000년 상반기에는 적어도 수십만명에 달했다는 것이 증권업계의
통설이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 구조조정의 여파로 직장을 잃은 샐러리맨,
특히 은행·증권업계 출신 실직자들이 대거 전업투자자의 대열에
합류하기도 했다.

그러나 주식시장이 장기 침체의 늪에 빠지자 전업 투자자 중 상당수가
돈을 벌기는커녕 몇 푼 안 남은 퇴직금조차 까먹고 증시를 떠나고 있다.
D증권 도곡동 지점장은 "강남 일대 대형 증권사 지점들은 2000년 한창
때에는 많게는 10명도 넘는 거액 전업투자자들로 북적댔지만, 최근엔
전업투자자들은 떠나고 그 자리에 펀드 판매 창구나 자산관리 상담
창구가 설치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H증권 대치동 지점장은 "아직도 주식시장에 남아서 전업 투자를 하는
사람들은 2000년 이후 큰 손실을 기록한 후 아직도 본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경우가 많다"며 "2001년 9·11 테러 이후 주가 상승기에
새로 주식시장에 들어온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