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4일 미국 샌디에이고 근처 휴양지인 라호야에 자리잡은 메리어트호텔은 나노 벤처 사업가들로 붐볐다. 10억분의 1m의 크기에 아주 작은 분자를 다루는 기술을 활용한, 기발한 발명품이 쏟아졌다.

전세계에서 엄선된 44개 나노 벤처기업들은 라호야에서 열린 '나노테크 벤처페어(Venture Fair)'에서 차세대 디스플레이 장치에서부터 인조 다이아몬드 제조기술, 초소형동력장치 등 생활밀착형 제품을 선보였다. 이 제품들은 앞으로 5년 안에 일반 소비자들이 사서 쓸 수 있는 상용 제품이 대부분이다.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나노 벤처 기업들은 대기업들이 성공 확률이 적어 망설이고 있는 나노 상용제품 개발에 과감히 도전, 새로운 '대박'을 꿈꾸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에머리빌에 자리잡은 나노믹스(Nanomix)사가 대표적인 예다.

이 회사는 탄소 나노튜브(Nanotube)를 이용한 가스탐지용 센서(Sensor)와 수소저장장치(Hydrogen Storage)로 나노벤처페어에서 '유망기업'으로 뽑혔다. 가스탐지용 센서는 유독가스를 포착하여 위험에 대비하게 하는 장치로 산업용 또는 군사용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수소저장장치는 수소를 안전하게 대량 저장했다가 산소와 융합시켜 에너지를 얻는 장치로 자동차, 노트북, 휴대전화기 등에 널리 사용될 미래의 동력원이다.

UC버클리대의 저명한 물리학자 마빈 코언 교수와 알렉스 제틀 교수가 2001년에 공동 창업한 이 회사는 11개 국가에서 모인 최고급 인재들이 신 제품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나노믹스의 연구원인 지승훈 박사는 "탄소 나노튜브를 활용한 유독가스 탐지용 센서를 올해 시장에 내놓고, 2~3년 안에 자동차용 수소저장장치를 상용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앤티악에 자리잡은 나노머슬사는 형상기억합금(SMA)원리를 이용한 극소형 동력장치(Actuator)로 세계 소형 모터시장에 일대 판도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나노머슬의 초소형 동력장치는 기존 전동모터보다 힘이 좋으면서도 크기가 20% 가량밖에 되지 않는다.

이 동력장치는 정보기기·장난감 등 소형전동모터가 들어가는 모든 시장이 공략대상이다. 이를테면 카메라에는 소형 모터가 5개 들어가고 자동차에는 100여개 들어간다. 나노머슬사는 기존 모터 대신 나노기술로 만든 초소형 동력장치를 사용하면서 소음과 제품 크기를 크게 줄였다. 머리카락 1000분의 1 크기의 분자를 다루는 나노기술을 응용하여 새로운 제품을 만들려는 벤처기업들의 도전은 2000년 이후 많아지고 있다. 특히 벤처기업들은 나노 기술을 대학 실험실에서 시장으로 끌어내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벤처 캐피털도 2000년 이전까지 나노 기술의 불확실성 때문에 투자를 꺼렸으나, 2001년부터 조기 상용화가 가능한 분야부터 투자를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이를테면 미국 벤처캐피털의 나노 투자는 99년 1억달러에 그쳤으나 2002년에는 약 10억달러로 증가했다.

나노 벤처투자는 실리콘 밸리의 유명한 벤처캐피털사인 DFJ를 포함, 50여개 벤처캐피털들이 주도하고 있으며, 이 중 럭스캐피털과 아데사캐피털은 나노 전문투자를 지향하고 있다.

또 인텔·듀폰 등 초일류 기업들도 장래성 있는 나노 벤처들을 골라 투자하거나 회사를 사들이고 있다. 인텔자회사인 인텔캐피털의 경우 차세대 디스플레이 기술을 개발 중인 이스라엘의 나노레이어스(Nanolayers.com)에 거금을 투자했다.

나노 벤처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서로 협력하여 산업을 키우려는 모임이나 행사가 자연스럽게 늘어나고 있다. 2001년 미국에서는 나노기술 관련 벤처와 기업들의 모임인 '나노 비즈니스 얼라이언스(nanobusiness.org)'가 발족했다. 또 샌프란시스코에서 나노사이언스익스체인지(nanoscienceexchange.org)를 이끌고 있는 짐 허드씨는 나노 기술과 관련해 정부, 대학, 산업계를 이어주는 활동을 하고 있다.

나노 전문투자사인 럭스캐피털의 공동창업자인 조지프 울프씨는 "누가 뭐라고 해도 나노는 확실한 미래 물결"이라며 "3~5년 안에 나노 상용 제품들이 쏟아져 나와 산업계를 바꿔놓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