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기지 대원들이 해빙으로 가득찬 웨델해에서 해양물리 조사활동을 벌이고 있다.남극 현지에서 획득한 시료들은 국내로 운반돼 정밀 분석을 거친 뒤 논문으로 발표된다.

제15차 세종기지 대원들의 월동도 이제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20일 후엔 16차 월동 대원들과 하계 연구원들이 임무 교대를 합니다.
기지는 보급품 하역과 손님맞이 준비로 밤낮없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가족들을 만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세계 각국은
왜 남극에 상주 과학기지를 설치하고 대원들을 파견하는 것일까요?

19세기 초 탐험시대 이후, 세계 각국은 남극권의 영토와 이곳에 존재하는
자원을 차지할 명분을 구축하기 위해 각축을 벌여왔습니다. 남반구
국가들은 지리적으로 인접했다는 근거로, 북반구 영국·노르웨이·프랑스
등은 식민지령과 탐사 기여도를 내세워 영유권을 주장했지요.


미국·러시아 등 영유권 주장을 유보한 열강들은 남극을 관리할
국제기구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1958년 남극연구과학위원회(SCAR)가 설립돼 국제협력과 정보교환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고, 이듬해 12월 미국 주도로 남극 진출국들이
남극조약(Antarctic Treaty)을 맺기에 이르렀으며, 각국이 주장했던
영유권 문제는 유보되고 개발 또한 추후 논의키로 합의했습니다.

남극조약은 가입국들만이 협의하고 기득권을 주장할 수 있는 배타적 정부
간 협의체이지요. 표결권은 남극조약협의당사국(ATCP)만 갖고 있으며,
모든 사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처럼 만장일치로 가결토록
돼 있습니다.

1978년 남빙양 크릴 시험조업을 기점으로 시발된 우리 나라의 남극에
대한 관심은 1985년 한국해양소년단연맹의 남극관측탐험대 파견 이후
국민적 관심을 불러 일으켰으며, 다음해 11월 세계 33번째로 남극조약에
가입했습니다.

1988년 2월 남극 킹조지섬에 첫 상주 연구기지인 세종기지를 준공했고,
1989년 10월 ATCP 회원국으로 선임됐습니다. 1990년 7월 SCAR 정회원국
자격을 획득, 남극 과학연구와 자원문제 등에 대한 국제적인 발언권을
인정받았습니다.

세종기지에서의 연구활동 중 월동연구는 장기간 환경변화를 현장
조사하는 업무 위주입니다. 하계연구는 바다와 육지의 얼음이 녹고
날씨가 양호한 여름에 과학자 40~50명이 한 달간 집중 투입돼 세부
항목을 연구합니다. 월동연구는 변화 양상 파악, 하계연구는 원인 분석에
초점이 맞춰지지요.

1년간의 월동연구는 적은 인원이 다양한 분야의 연구 시료를
채집·측정합니다. 남극 현지에서 획득한 시료들은 국내로 운반돼
정밀분석을 통해 논문으로 발표됩니다.

폭설이 내린 뒤 세종기지의 한 대원이 입구가 눈에 파묻힌 연료창고에 들어가기 위해 삽질을 하고 있다.

최근 세종기지 주변 대기온도는 지난 27년간 약 1℃ 상승했으며,
앞바다의 해안 빙벽은 1956년 이래 지속적으로 후퇴해 지난해 4월에는 폭
1.2km인 마리안 소만(小灣)의 길이가 3km에서 4km로 확장됐습니다. 이런
양상은 최근 급가속, 전지구적 온난화 여파인지 지역적인 온난화
현상인지를 규명하기 위해 다각적인 연계 분석을 하고 있습니다.

남극 성층권에 오존구멍이 형성되는 봄철(9~10월) 세종기지 상공의
오존량은 10년마다 약 14%씩 감소하며, 지표에 도달하는 자외선량은
반대로 약 23%씩 증가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런 변화에 따른
연안환경의 피해와 적응양상을 파악하기 위해 연안 해수특성 분석과
플랑크톤 생물량 조사가 매일 연속적으로 실시되지요.

여름에는 연구선을 이용해 생물자원·지하자원 분포와 자원량 탐사를
수행합니다. 축적된 자료와 기술은
오징어·파타고니아이빨고기(메로)·크릴 같은 생물자원의 어획량 확보와
미래 지하자원 개발 시 지역 분배와 개발권 선점의 근거가 될 것입니다.

최근 온실효과와 지구온난화로, 극지방 얼음이 녹아 해수면 상승이
우려되고 있습니다. 염화불화탄소(CFCs·일명 프레온가스) 과다사용에
따른 극지방 오존구멍으로 지표에 도달하는 자외선이 급증, 지구
생태계가 파괴되는 등 갖가지 폐해를 발생시키고 있습니다.

전 지구적 환경변화는 인류의 현대화에 따른 자승자박이며, 이에 따른
제반 현상들이 극지방을 중심으로 시발되고 있습니다. 전 인류가 공동
해결해야 할 지구 환경변화 감시와 예측을 위해 이기적 권리를 유보하고,
남극조약협의당사국회의·남극연구과학위원회를 중심으로 전 세계 극지
과학자들을 망라해 지구 환경 파수꾼 역할을 담당하게 됐습니다.

우리는 후발주자로 남극에 진출했지만, 활발한 연구활동과 체계적인 기지
관리로 최근 미국·노르웨이·영국·중국·캐나다 등으로부터 공동연구를
제의받고 있습니다. 이곳 킹조지섬에서 남미 국가들의 활동은 경제위기로
위축된 반면, 북반구 국가들의 활동은 오히려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중국의 약진은 단연 돋보입니다. 우리보다 3년 이른 1985년 이곳에
장성기지를 세웠던 중국은, 1989년 대륙에 제2의 중산기지를 마련했으며,
1993년 쇄빙선을 가동했습니다. 중국은 이달 건축기획단을 파견,
연구시설 증축 기본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러시아는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습니다. 원자력 쇄빙선을 포함한 쇄빙선 5척이 남극 6개 기지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그 속에 한국이 있습니다. 지구 미래의 꿈이 있는 남극에서의 활동은
그래서 힘들지만 자부심 가득한 '희망의 작업'입니다.

(鄭豪城·세종기지 제15차 월동대장 hchung@kord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