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PDA 비즈니스 컨설턴트 최준혁입니다.

저는 책을 꽤 많이 읽는 편에 속합니다. 계산을 해 보면 적어도 일년에 300권 이상은 읽는 것 같습니다. 이 독서의 습관은 제가 국민학교에 갓 입학할 무렵, 외할아버지께서 선물로 사 주신 한 질의 전집에서 비롯된 것인데, 바로 '아이디어 회관'이라는 출판사에서 펴낸 'SF 세계명작 시리즈'라는 책이었습니다.

'SF 세계명작 시리즈'는 세계 각국의 주요 SF 소설을 아동들이 이해하기 쉬운 수준으로 재편집하여 펴낸 것으로서, 총 60권의 분량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제가 선물 받은 것은 처음의 10권이 한 질로 구성된 선물용 세트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이야기가 너무나 재미있고 신기하여 밤이 새는 줄 모르고 책을 읽었고, 결국 나머지 시리즈들도 수년에 걸쳐, 구입하거나 혹은 친구들에게 빌려보는 식으로 모두 읽어버렸습니다.

나이가 조금씩 들면서 아동용이 아닌 원본 그대로를 번역한 작품들을 접하게 되었고, 어렸을 때와는 또 다른 생각과 느낌으로 SF의 세계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SF를 읽던 습관은 그대로 남아, 결국은 장르 구분 없이 탐독하는 버릇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저를 책의 세계에 빠져들게 한 장본인인 SF, 즉 Science Fiction을, 사람들은 흔히 '공상과학소설'이라고 번역합니다. 그리고 'SF소설'이라는 표현도 가끔씩 봅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SF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SF는 말 그대로 '과학소설'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습니다. 애당초 '공상'이라는 단어가 끼어 들 틈이 없다는 얘깁니다. 'SF소설'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분명 F가 fiction의 F가 아니라, fantasy의 F인 것으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SF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우주선이나 외계인이 나오고 광선총이 불을 뿜는 장면을 묘사한 문학일까요? 초능력자들이 대결을 펼치고 영웅적인 과학자가 지구를 지키는 과정을 서술한 소설일까요?

많은 전문가들이 SF라는 문학 장르를 정의합니다. 유명한 작가들이나 평론가들의 정의를 웹에서 찾아 소개할 수도 있겠지만, 저 자신도 다년간 SF를 접해온 사람이라고 자부하고 있기 때문에 나름대로 SF에 대한 정의를 내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마도 전문적인 문학활동을 하고 계시는 분들이 이 정의를 보시면 지적하실 말씀이 많으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순수 아마추어 SF 독서광의 '노력'이라고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SF는 변화 될 사회 환경에 대한 인간의 반응을 기록한 문학이다."

지나치게 포괄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전설적인 SF 작가들이 남긴 주옥과도 같은 작품들을 읽다 보면, 이정도의 거창한 정의가 결코 아깝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실제로 과학기술은 사회 환경을 변화시킵니다. 철기 문화, 화약의 발명, 원자력의 등장, 유전공학의 발전, 인터넷의 일반화 등, 몇몇 천재들에 의해 만들어진 기술에 의해 세계가 변화되어버린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잘 만들어진 SF 작품들은, 이러한 과학기술의 등장과 그에 따른 사회의 변화, 그리고 그러한 변화에 따라 반응하는 인간의 모습을 상세히 그려냅니다.

SF 작품들은 어떠한 형태로도 표현될 수가 있습니다. 변화하는 사회와 인간의 모습을 다루는 과정이 남녀간의 사랑에 맞춰질 수도 있고(연인), 추리물의 형식을 빌릴 수도 있으며(강철도시), 전쟁의 기록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스타쉽 트루퍼즈). 경우에 따라서는 대체역사물의 형태를 띨 수도 있고(높은 성의 사나이), 완전히 학술 리포트 같은 형태를 띨 수도 있으며(중력의 임무), 과학과는 별 상관없는 환상문학의 성격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앰버연대기).

중요한 것은, 이질적인 사회 환경 속에서의 인간의 반응을 고찰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사회 환경을 배경으로서 창조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SF에서는 과학적이고 논리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배경을 만들어내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되며, 그 배경과 인간과의 상호 작용을 고찰하는 과정이 주된 이야기를 이루는 것입니다.

SF 팬들이 '스타워즈'를 SF라고 부르지 않고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일종의 활극으로 치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스타워즈'는 단지 배경만이 고도의 문명화 된 우주일 뿐, 실제로는 '왕자'와 '공주' 그리고 '여왕'과 '기사'가 등장하는 중세적 로맨스물의 특성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습니다. 배경을 서부시대나 사막, 혹은 정글로 바꿔놓더라도 이야기의 전개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얘깁니다. 따라서 '스타워즈'는 SF가 아닙니다.

우리는 훌륭한 SF 작품들을 통해 비현실적이지만 논리적으로 충분히 존재의 개연성이 있는 이질적인 사회나 현상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곳과는 다른 곳을 상상함으로써, 보다 자유롭고 융통성 있는 사고를 할 수 있게 되는데, 이것이야말로 SF가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끼칠 수 있는 가장 긍정적인 효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아이디어 회관'의 'SF 세계명작 시리즈'는 우리나라가 한창 고도의 성장을 이룩하고 있던 1971년 12월에 출판되었습니다. 이를 축하하는 격려사가 당시 과학기술처 장관의 명의로 작성되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과학기술의 발전이 국가의 미래와 직결된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던 당시로서는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SF이거나 혹은 유사 SF의 장르에 속하는 영화들이 '주말의 명화' 시간을 통해 종종 방영되곤 했습니다. 고립된 토성의 위성에서 벌어지는 인간과 사이보그 간의 갈등을 그린 '새턴3호'라던가, SF의 불후의 명작으로 일컬어지는 '멋진 신세계'같은 작품들을 TV를 통해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고 아이작 아시모프 박사의 원작에 기초한 '마이크로 특공대'를 보았던 기억은 20년이 훨씬 넘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요컨대 당시에는, 이유야 어쨌든 SF라는 요소를 통해 사람들의(특히 아동들의) 과학기술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의 국내 출판계에는 'SF는 팔리지 않는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습니다. 흔히 '통신문학'이라고 알려진 많은 판타지 소설들이 SF라는 이름을 달고서 출판되고 있지만, 용과 기사, 마법사와 요정 등이 등장하는 이런 소설들은 SF와는 전혀 다른 장르에 속합니다.

현재 국내에서 SF를 출판하고 있는 출판사는 한 손으로 꼽기에도 부족할 지경이고, SF를 좋아한다는 말을 주변 사람들에게 하면 "그런 만화 같은 책을 읽지 말고 마음의 양식이 되는 순수문학에 관심을 기울여라"라는 대답이 돌아오기 일쑤입니다.

좀 지나친 비약일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이러한 SF의 퇴조 현상이 '이공계 기피현상'이라는 최근의 사태와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출판사가 SF 작품을 내놓지 않는 것은 당연히 그것을 찾는 사람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마음 속 깊이 과학과 기술을 좋아하고 지적 상상력을 충족시키기 위해 SF를 읽는 사람이 줄어들었다는 것은, 당연히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온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일지도 모릅니다.

최근 일본의 노벨 과학상 수상과 관련해 우리나라의 기초과학 수준을 가늠하는 특집 프로그램들이 많이 방송되었습니다. 이 프로그램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한 바는, 우리나라에서 기초과학을 하는 사람들의 사기가 더 이상 떨어질 데가 없는 밑바닥 수준이라는 점입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장래 희망을 묻는 질문에 서슴없이 대답했던 그 '과학자'라는 동경의 대상이, 이제는 일개 회사원만도 못한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 있는 현실은 가히 충격적이라 할 만 합니다.

거품과도 같은 벤처 붐이 휩쓸고 지나갔던 그 기간동안에도, 돈의 흐름을 아는 사람들은 온갖 수단으로 재산을 증식 시켰지만, 정작 '없던 것을 만들어 낸' 프로그래머와 하드웨어 기술자들은 여전히 밤을 새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면서, 나오거나 혹은 나오지 않는 월급에 만족하며 경영자들의 '전략적' 판단에 일희일비 해야만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공계 지망생이 크게 줄었다고 떠들어 대는 것은 넌센스에 불과합니다. 대우 받지 못하고 자부심을 갖지 못할 직업을 선택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요.

과연 그들은 회계나 증권, 경영기법과 정치기술을 배운 사람보다 뒤떨어지는 사람들일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반도체 재료공학자 없이 증권시장을 움직이는 컴퓨터가 존재할 수 있을 것이며, 자동차용 부품을 설계하는 기계공학자 없이 선거 유세나 나다닐 수 있겠느냐고 말입니다. 진정으로 이 사회를 '보다 더 낫게' 만들어 나가는 것은 바로 '과학자'와 '기술자'들입니다.

우수한 인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흔히 드는 예로, 30년 전 '철완 아톰'을 보고 자라온 일본의 어린이들이 지금은 자기부상열차와 계단을 오르내리는 인간형 로봇을 만들고 있습니다. 지금 '에반게리온'을 보고 자라난 어린이들이 앞으로 30년 후, 유전공학적으로 제조된 인공장기를 통해 인간의 수명을 수 십년씩 연장시킬 수 있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장래에 제가 아이를 키우게 된다면, 그 아이가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을 때 SF전집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비록 바보 같은 상상일지라도 소중히 하는 습관을 길러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남이 생각하지 않는 것을 생각하고, 또한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게 도와주고 싶습니다.

부디 그때쯤에는 30년 전에 외할아버지에게서 선물 받은 것 같은 아동용 SF 전집이 출판되어 있기를 진정으로 기원합니다.

지난 주에 올슨 스콧 카드의 '엔더 위긴' 시리즈를 모두 읽었습니다. 우주의 모든 존재를 한데 연결한다는 필로트 진동은 마치 지금의 인터넷을 묘사하는 것 같습니다. 필로트 진동 속에 살고 있는 미지의 지능체 '제인'과 인간인 '엔더'와의 관계에 대해 읽으며, 모바일 시스템과 연결되는 지능형 에이전트 오거나이저에 대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이 달 말 정도면 꽤 그럴듯한 기획서가 하나 나올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IT클럽 리포터 시삽 최준혁 arthur4pda@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