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계 알리안츠제일생명은 서울 논현동에 있던 사옥을 올 연초 여의도로
옮겼다. 여의도에 거점을 두는 쪽이 금융 비즈니스에 유리하다는
판단이었고, 미셸 깡페아뉘 사장은 그 결정에 만족하고 있다.
올림픽대로에서 한눈에 들어오는 사옥 로고의 광고 효과만 해도 금액으로
환산하기 힘들 정도라는 것이다.
'현대상선 4000억원 사건'으로 시달렸던 국책은행 산업은행도 작년 7월
말 16년간의 종로 '3·1빌딩 시대'를 마감하고, 여의도에 빌딩을 지어
새 둥지를 텄다. 사무실 면적만 1만평에 육박하는 대형 빌딩이다. 여의도
공원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지상 8층짜리 산업은행 건물은 여의도의
스카이라인을 바꾸어 놓은 명물(名物)이 됐다.
'서울의 월스트리트' 여의도가 대한민국의 신(新)금융 중심지로
거듭나고 있다. 79년 증권거래소 입주와 함께 증권사를 중심으로
발전해온 여의도 금융가는 최근 몇년새 비(非)증권 업종의 금융회사들이
속속 진출하면서 종합적인 금융 중심지로 탈바꿈하고 있다.
여의도에 본사를 두고 있는 금융회사 수는 줄잡아 100개를 훌쩍 넘는다.
사실상의 본점을 여의도(옛 주택은행 자리)에 둔 국민은행과
산업·수출입은행 등 3개 은행이 여의도에 본점을 두고 있으며, 59개
국내외 증권사 중 33개, 39개 투신운용사 중엔 35개의 본사가 여의도다.
또 대한생명 등 두 곳의 보험사와, 한국기업평가 등 3대 신용평가회사,
27개 투자자문사와 8개 선물회사도 '여의도 클럽'의 멤버들이다.
요즘엔 세(勢)가 약화됐지만, 2~3년 전 벤처투자 붐이 한창일 때에는
유망 벤처기업의 장외주식을 중개해주는 업소들이 여의도에 50여곳이나
몰려들어 성황을 이루기도 했다.
여의도의 부상은 IMF위기 이후 진행된 한국 금융의 구조전환에 기인한다.
금융의 중심이 은행을 축으로 한 '간접금융'에서 증권시장 중심의
'직접금융'으로 바뀌었고, 덕분에 여의도로 자연스럽게 금융의
무게중심이 옮겨가게 됐다. 여기에다 금융감독원이 옛 증권감독원 건물에
자리를 잡은 것도 여의도의 '금융센터화(化)'를 가속화시켰다.
여의도 거리는 주식시장을 중심으로 한 금융인들을 떠나서는 상상할 수
없다. 점심시간이면 삼삼오오 모여든 넥타이 부대들로 식당마다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룬다. 주가 움직임에 따라 거리 표정이
오르락내리락 달라진다는 것도 여의도만의 특징이다.
주식시장이 활황을 달리면 여의도의 고급음식점들은 예약이 힘들 정도로
붐빈다. 작년말~올연초의 주가 상승기 때는 강남 등의 고급 술집
영업부장들이 여의도 증권가에 와서 고객유치에 나서는 광경도 드물지
않았다. 대신증권 조경순 실장은 "주가가 좋으면 밤 늦도록 골목골목
술집마다 그날의 증시 무용담을 늘어놓고, 다음날 투자전략을 짜는
증권맨들의 목소리가 넘쳐난다"고 전했다.
반대로 여의도 거리에 노점상이 늘어나면 주식시장이 부진하다는
표시라는 것이 여의도의 정설이다. 2년 전 주가 폭락사태 때 모 증권사
영업직원이 붕어빵 장사로 변신, 자기가 다니던 증권사 정문 앞에서 옛
동료를 상대로 붕어빵을 팔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여의도 금융가는 '실력주의 문화'다. 은행의 전통적인 연공서열 문화와
달리 여의도는 개개인의 실적과 능력으로 평가하는 분위기가 일찍부터
강했다. 여의도의 부상은 IMF 위기 이후 미국식 실력주의 시스템이
각광받는 시대적 상황과도 무관치 않다.
여의도는 정보의 유통속도가 한국에서 가장 빠른 곳이다. 한번 정보가
돌면 여의도 전역에 퍼지는데 반나절이 채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증시
정보지(紙)'로 상징되는 한국 최대의 '정보시장(市場)'이 형성된 곳도
여의도다.
각종 정보가 광속(光速)으로 전달되는 메신저 서비스(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는 여의도 금융인의 필수 장비다.
메리츠증권 송치호 팀장은 "메신저 서비스가 널리 보급되면서 정보의
유통 속도가 시(時)단위에서 분(分)단위, 초(秒)단위로 빨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시간 빠른 여의도 24시
여의도 금융가의 '시계 바늘'은 다른 곳보다 한시간을 앞서 달린다.
주식시장은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열리지만, 개장을 준비하는
증권맨들의 전쟁은 이른 새벽부터 시작된다. 특히 우리 시간으로 새벽
6시에 마감하는 미국 주식시장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면서 여의도의 아침
시간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굿모닝신한증권 주식선물운용부 박상수(32) 과장은 매일 아침 6시10분에
일어나 방금 마감한 뉴욕 시장 동향을 체크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회사까지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살지만, 아침 7시20분에 시작하는 팀미팅
시간에 대려면 출근시간은 늘 빠듯하기만 하다. 박 과장은 "여의도로
연결되는 도로와 지하철은 아침 7시 이전부터 증권사 직원을 중심으로한
금융맨들로 붐빈다"고 말했다
점심 시간도 다른 오피스 타운보다 30분 정도 일찍 시작된다. 일명
'먹자 빌딩'으로 불리는 여의도 종합상가는 오전 11시가 넘어서면서
5개층의 60여개 식당에 손님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동부증권 장영수
기업분석팀장은 "몇몇 음식점은 오전 11시30분에 가도 줄을 서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여의도 증권사들은 주식시장이 끝난 오후 4시 이후엔 자유퇴근을
허용하는 곳이 많다, 그래서 여의도에선 일찌감치 러시아워가 시작되고,
오후 5시만 되면 여의도를 빠져나가는 퇴근 차량으로 도로 곳곳이
북새통을 이룬다.
이른 퇴근 시간 덕분에 여의도의 밤 풍경은 명동·종로 같은 서울
중심가보다 상대적으로 한산한 편이다. 요즘처럼 주식시장이 침체인
시기엔 밤10시가 넘으면 증권타운 거리에 사람 통행조차 드물어 여의도
밤풍경은 한적하다 못해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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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의 어제와 오늘
79년 거래소 옮겨운뒤 급부상…'게이트 시리즈'파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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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비행장이 된 여의도는 해방 이후에도 한동안 군용
비행장으로 사용돼 왔다. 1968년 서울시가 윤중제(輪中堤)를 축조하고,
그 2년뒤 마포대교가 개통되면서 여의도는 비로소 사람이 사는 섬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여의도에 증권가가 형성된 계기는 79년 증권거래소의 여의도
이전(移轉)이었다. 이후 명동에 자리잡고 있던 증권사들이 뒤 따라 하나
둘씩 여의도로 본사를 옮겨왔다. 증권거래소를 중심으로
현대·대우·대신·동원·신영·우리·메리츠(옛
한진투자)·부국·한양증권 본사가 몰려 있는 일대를 구(舊) 증권타운이라고
부른다.
80년대 말 이후 여의도에 새로 입성한 굿모닝신한(옛
쌍용투자)·SK·동양·하나·서울·유화증권은 증권거래소를 길 하나
사이에 두고 둥지를 틀었는데, 이곳은 신(新)증권타운으로 불리고 있다.
여의도의 금융 파워가 커지는 것과 비례해 각종 사고도 잇따르고 있다.
최근만 해도 일부 물량이 적은 우선주(優先株)들이 보통주 주가의
수십배를 넘어설 만큼 이상 급등한 99년의 '우선주 파동'을 겪었고,
2000년 이후엔 권력과 벤처기업 간 유착이 잇달아 폭로된 이른바
'게이트 시리즈'가 이어져 투자자를 실망시켰다.
모든 거래가 전산화되면서 투자자들이 실수로 주문을 잘못 입력하는
바람에 한번에 수십억~수백억원의 손해를 보는 경우도 종종 일어나고
있다. (韓玧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