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자신과 했던 약속,'매일2만원씩저축 '을 하루도 어겨본 적 없다는 황무씨가 생활터전인 구두미화원 부스 안에서 활짝 웃고 있다.<a href=mailto:cjkim@chosun.com>/김창종기자 <


'올해의 저축왕' 황무(黃武·60·서울 성동구 금호동)씨. 그는 기자가
찾아간 지난달 31일 오전에도 두 사람이 들어가면 꽉 차는 좁은 부스
안에서 열심히 구두를 닦고 있었다. 그는 기자와 악수를 나누고는
"요즘엔 구두닦는 사람이 드물어 하루종일 닦아 봐야 10켤레가 안될
때도 많다"며 얼굴 가득 주름살을 만들며 씨익 웃었다. "저같이 하찮은
사람에게 훈장을 주시다니…. 가문의 영광이긴 하지만 아직도 실감이
안나고 얼떨떨합니다."

황씨는 한국은행이 매년 저축의 날(10월29일)을 맞아 저축 유공자들에게
주는 상 중에서 최고의 영예인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다. 하지만
그가 전국 금융기관에서 추천한 400여명의 후보자 중 '1등 상'을 받게
된 것은 저축을 많이 해서라기보다 저축에 대한 남다른 열의가
심사위원들을 감동시켰기 때문이라는 게 한국은행측 설명이다.

황씨는 12년 전만 해도 전북 고창군에서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살던
가난한 농부였다. 그런 그가 무작정 상경을 결심하게 된 것은 "못 배운
게 한이 돼 자식만이라도 교육을 시키기 위해서"였다. 지난 90년 서울에
올라올 때 그의 재산은 논밭을 팔아 마련한 2000만원이 전부였다. 친척이
사는 금호동 달동네에 20평짜리 전세집을 마련하고, 아파트 경비원으로
취업했다. 당시 경비원 월급은 70만원. 도저히 생활이 안돼 고민하던
황씨는 집 근처에 구두닦이 부스가 매물에 나왔다는 얘기를 듣고
400만원을 주고 인수했다.

"아무 기술도 없이 무턱대고 시작한 일이라 처음엔 손님이 오면 겁부터
났어요. 구두를 닦다 태워먹어 변상해 준 일도 많았지만 한 보름쯤
하니까 일이 손에 익더라구요. 차차 구두수선일까지 배워 이것 저것
하니까 수입이 조금씩 늘어가더군요."

이런 그가 대한민국 최고의 저축왕이 된 계기는 단순했다. 구두미화원이
되면서 "하루 매상 중 2만원은 따로 떼 매일 저금을 한다"고 결심을
했고, '자신과의 약속'은 이후 단 하루도 어긴 적이 없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기자가 묻자 그는 공구 틈바구니에 숨겨둔 은행예금
통장을 꺼내 보여주었다. 통장에는 한번에 2만~6만원씩 찍혀 있는
입금내역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평일엔 꼬박꼬박 2만원씩 저축하고
주말엔 은행이 문을 닫으니까 그 다음주 월요일엔 사흘치인 6만원을
넣죠. 또 매상이 많이 오른 날엔 돈을 미리 조금 떼 놓았다가 매상이
적은 날 보충해 넣는 식으로 매일 2만원을 채웠습니다."

그는 이렇게 모은 돈이 1000만원 단위가 되면 무조건 만기 1년 이상의
정기예금으로 옮겨 담았다. "돈을 묶어 놔야 함부로 안 쓰게
되니까요." 그는 이렇게 모은 돈으로 2남3녀의 자녀 중 셋을 대학에
보냈다. 자녀 셋을 대학에 보냈으면서도 그는 그 흔한 학자금 대출도
한번 안썼다. "한 학기 등록금을 내면 바로 다음 학기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별도 적금통장을 만들었죠. 그러니 대출을 받을 일이
없지요."

그는 이렇게 모은 돈으로 5년 전 살던 전셋집을 집주인으로부터
3500만원에 인수해 '내집 마련'의 꿈을 이루었다(현재 이 집은 재개발
사업이 추진되고 있어 머잖아 40평형대 새 아파트로 변모할 예정이다).

황씨가 저축왕이 될 수 있었던 데는 파출부나 공장일 등을 통해 살림을
도운 아내 김경림(55)씨의 공이 컸다. "제가 번 돈의 60%는 무조건
저축을 했고, 나머지 돈과 아내의 수입으로 생활을 했습니다. 대신
점심은 반드시 집에 가서 먹고, 술담배도 끊으면서 제 씀씀이는 최대한
줄였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쓰는 돈에 인색했지만, 남을 돕는 데만큼은 결코 박하지
않았다. 매월 5만원씩 교회에 기부해 불우이웃을 돕고 있고,
실명(失明)환자들을 위해 매년 1명의 수술비를 지원해 주고 있다. 수상자
선정을 위해 세 차례나 현장 답사를 하며 그를 뒷조사(?)한 한국은행
경제홍보팀 채병득(蔡秉得) 과장은 "쉬는 날에도 동네사람들이 버린
우산이나 구두를 주워다 수선해 부스 앞에 놔두고 가난한 외국인
근로자들이 가져가 쓰게 하는 등 봉사활동을 열심히 한 점이 후한 점수를
받았다"고 전했다.

하루아침에 유명인사가 된 그는 "요즘 인생 공부를 새로 하고 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매스컴을 통해 그의 수상 소식이 알려지자
여기저기서 "도와달라"는 요청이 쇄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
몸만 성하면 뭘 해도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인데, 남한테 구걸부터 하는
자세는 정말 이해가 안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