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표적인 증권가(證券街)는 여의도다. 그러나 외국계 증권사들의
증권가는 '광화문 4거리'다. 현재 서울에 지점이 있는 17개의 외국계
증권사 가운데 16개가 시내 일대에 모여있기 때문이다.
작년 6월 오픈한 서울파이낸스빌딩에는 메릴린치와 바클레이즈캐피탈이
입주해 있고, 바로 건너편 광화문 빌딩에는 모건스탠리가, 500m쯤 옆에
있는 흥국생명빌딩에는 골드만삭스와 ING베어링증권이, 그 건너편
세안빌딩에는 CLSA, SG가 입주해있다. 이밖에도 광화문 일대의 고급
오피스빌딩에는 어김없이 1~2개씩의 외국계 증권사가 입주해있다.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이같은 빌딩에 100평의 사무실을 얻으려면 가장
비싼 경우 보증금 1억원에 매달 1000만원의 임대료(관리비 제외)를 내야
한다. 한국에서 제일 비싼 사무실을 외국계 증권사들이 쓰고 있는
셈이다.
광화문을 외국계 증권사들이 '점령'한 것은 92년 한국 증시 개방 이후
외국인의 주식투자가 급증함에따라 주식매매를 중개하는 외국계 증권사들
역시 급성장했기 때문이다.
증권업협회에 따르면 외국계 증권사 서울지점은 93년 8개에서 작년말
기준 17개로 늘어나고, 직원수도 207명에서 859명으로 급증했다. 17개
외국계 증권사 서울지점은 작년 한해동안 2914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서울지점 영업이 급신장하면서 외국계 증권사 내부에서 서울지점의 위상
역시 격상됐다. 90년대 중반부터 후반까지 외국계 서울지점에서 일했던
조흥투신 로이홍 사장은 "90년대 초반만 해도 외국계 증권사 서울지점
임직원의 연봉은 아시아의 여러 지점 중 중하위권이었지만, 지금은 최고
수준"이라고 말했다.
UBS 워버그증권 마이클진 서울지점장은 "한국 경제의 규모나 높은
성장률은 세계적인 외국계 증권사들이 한국을 무시할 수 없게 만든
바탕"이라고 말했다. 서울지점의 높아진 위상은 외국계 증권사 회장을
비롯한 고위 경영진과 스타 애널리스트들이 종종 한국을 찾는데서도
나타난다.
이제 외국계 증권사 서울지점들은 전통적인 업무인 주식 매매 중개
이외의 영역으로도 발을 넓히고 있다.
국내 기업들의 인수·합병(M&A)이나 해외 주식 매각 또는 해외 채권 발행
분야 업무는 외국계 증권사가 점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8월까지 진행된 1억달러 이상 규모의
대규모 주식 해외 매각 또는 채권 발행 건수는 7건인데, 7건 모두 외국계
증권사가 주간사 자리를 따냈다.
또 메릴린치는 2000년 10월 개인 고객 자산관리 서비스를 시작했다. 가입
대상은 100만달러(12억원) 이상의 현금 자산을 맡기는 고객. 메릴린치
최형호 부장은 "한국의 부(富) 자체가 성장하면서, 자산 관리 서비스가
크게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조흥투신운용 로이홍 사장은 "한국의 경제 규모가 세계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고려하면, 향후 외국계 투자은행들이 한국 금융시장의 전 영역에
걸쳐 적극적으로 뛰어들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