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대 민간은행인 국민은행이 최근 '그레이 존(Gray
Zone·회색지대)'에 대한 공격적인 마케팅 공세를 펼치면서 다른
은행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국민은행은 최근 기업금융점포(RM) 150개를 신설하고 각 지점에 1300명을
투입, 다른 은행들에 비해 저렴한 금리와 수수료 면제 등을 내세우며
'저인망식'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국민은행이 특히 타깃으로 삼은
대상은 기업의 신용등급이 '정상(正常)'과 '요주의(要注意)'사이에
있는 이른바 '그레이 존'의 중소기업들이다. 반도체와 서비스업종 등
성장 가능성과 사업 전망은 좋지만 당장 담보나 재정 상태가 불안한
중소기업들이 주공략 대상이다.
국민은행 이남규 신용평가팀장은 "정상을 의미하는 B등급과 요주의를
의미하는 C등급을 보다 세분화, 기업신용평가 등급을 12단계로 나눠
중소기업들에 대한 신용대출을 늘리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국민은행은
"고객 확보를 위해 필요하다면 '노마진(무수익) 대출'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민은행이 '그레이존' 확보에 나선 것은 한동안 짭짤할 이자 수입을
안겨줬던 개인 대출이 거의 포화상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들도 은행 돈을 빌리기 보다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해 자금을 직접
조달하는 추세다.
경쟁 은행들은 수성(守城) 전략에 고심하고 있다. 조흥은행은 최근
기업금융지점 86개를 신설했으며, 중소기업은행도 현재 40개인 기업금융
지점을 이달 중 80개로 두배 늘리기로 했다. 중소기업은행 기업고객1부
노희성 팀장은 "올 하반기 중소기업 대출 규모를 작년보다 4조원이
늘어난 7조5000억원으로 늘려 잡았다"고 밝혔다.
우리은행도 현재 390명인 중소기업영업 전문가를 연말까지 150명 늘리고,
기업들에게 자산·부채·세무·외환 등 '토탈(종합)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원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다. 우리은행 중소기업 전략팀 윤상구
부장은 "통상적인 재무제표상으로는 대출 자격이 안되는 기업들도
업종별 상황과 전망을 정확히 평가, 과감히 대출해 줄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문제는 대부분의 시중은행들이 국민은행에 비해 자금력이 달려
금리 경쟁에 뛰어들기를 주저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거대은행들이 다른 은행과 거래하는 기업들을 찾아가 기존 대출
금리보다 무조건 1% 포인트 싸게 대출해주겠다거나 우량 기업들에는 연
5%대의 금리까지 제시하는 등 시장 질서를 교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40억~50억원을 빌려 쓰는 중소기업의 경우 대출 금리가 1%
포인트만 낮아져도 연간 4000만~5000만원의 이자 절감 효과가 있기
때문에 상당수 기업들이 거래 은행을 바꿀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은행업계는 보고 있다. 우리은행 정태웅 부행장은 "은행 입장에서
'그레이 존'에 있는 중소기업들은 마지막 남은 시장으로 볼 수 있어
중소기업 유치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자금이
모자라 은행을 찾아 다니던 중소기업들은 요즘엔 돈을 빌려주겠다는
은행들의 '구애(求愛) 작전'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