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 기술(Nano Technology·초미세기술)이 생활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여성들이 매일 사용하는 화장품, TV보다 친숙해진 컴퓨터엔 이미 나노
기술이 적용되고 있다. 강철보다 단단한 나노 복합재료는 자동차 범퍼
등에 쓰이고 있으며, 적의 레이더에 걸리지 않는 스텔스 전투기에서도
나노 기술을 찾을 수 있다. 나노 기술은 더 이상 미래의 신기술이 아닌
셈이다.

먼저 화장품 뚜껑을 열어보자. 주름살 제거 화장품, 자외선을 차단하는
선크림, 피부를 희게 만드는 미백 화장품엔 모두 나노 물질이 들어있다.
나노미터(10억분의1m) 크기의 나노 구조체는 주름살 제거나 노화 방지의
기능을 가진 생리 활성물질(화장품 성분)과 쉽게 결합한다. 그리고
생리활성 물질을 머금은 나노 구조체는 크기가 피부 세포의 간격보다
작기 때문에 피부에 쉽게 흡수된다.

따라서 나노 화장품은 미백 및 노화 방지 물질을 가장 효과적으로 피부
세포에 전할 수 있는 것이다. 또 나노 구조체는 화학적으로 안정돼 있을
뿐 아니라 피부 세포층을 선택적으로 통과할 수 있기 때문에 화장품에
적용될 수 있는 폭이 넓다.

나노 구조체가 첨가된 화장품은 이미 백화점 등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으며 고급 화장품 이미지를 굳히고 있다. 미국의 나노페이스
테크놀로지사(社)가 주도하고 있는 나노 화장품 시장은 연간 10억달러
규모로, 우리나라 화장품 회사들도 나노 기술을 이용한 기능성 화장품을
속속 내놓고 있다.

화장품에 쓰이는 나노 구조체처럼 특정 성분을 몸 속에 전달하는 기능을
가진 나노 물질을 '나노 전달체'라고 부른다. 쉽게 말해 나노 전달체란
필요한 약 성분을 싣고 몸 속에 침투한 뒤, 약 성분을 특정한 신체
부위에 전달하는 나노미터 크기의 물질을 말한다. 약 성분을 위나 심장
같은 특정 기관의 세포에 정확히 전달하는 우편 배달원인 셈이다.

그러나 피부에만 작용하는 화장품용 나노 전달체와는 달리, 몸 속 깊숙히
침투해 질병을 알아내고 치료약을 전달하는 나노 전달체의 개발은 쉽지
않다. 영화 '이너 스페이스(Inner Space)'처럼 나노 크기의 잠수함이
탄생하지 않는 한, 몸 속에서 사람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전달체는 없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바이러스가 몸 속에 쉽게 침투한다는 데 착안, 인공적인 나노
전달체 대신 독 성분을 제거한 바이러스를 전달체로 사용하기 위해 오랜
기간 노력했다. 그러나 안전성에 대한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됐다.

예를 들어 지난 99년 제시 겔싱거(Jesse Gelsinger)라는 미국인은 대학
병원에서 유독 성분을 제거한 '아데노바이러스'란 전달체로 유전자
치료를 받다가 4일만에 사망했다. 이 때문에 미국 식품의약청(FDA)은 그
분야의 연구를 중지하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바이러스보다 위험성이 훨씬 적은 나노 기술을 이용한
인공적인 나노 전달체 개발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머지않아 화장품
뿐만 아니라 질병의 진단과 치료에 이용할 수 있는 나노 전달체가 탄생할
것이다.

나노 기술이 생활 속에 침투한 예는 화장품이 전부가 아니다. 컴퓨터의
하드디스크 드라이브 헤드에 쓰이는 '거대자기저항(GMR)'이란 물질에도
나노 기술이 사용됐다. 이 물질은 PC 하드디스크에 빽빽하게 저장된
정보를 예민하게 읽을 수 있는 성질을 가진 것으로, IBM은 물리학자들이
'GMR'을 개발한 지 수 년만에 상업적으로 응용하는 데 성공했다.

IBM은 'GMR'을 이용한 하드디스크 드라이브 헤드로 전세계 시장을
석권, 과거에 쓰이던 하드디스크 드라이브를 쓰레기로 만들어 버렸다.
이것은 과학자가 신물질을 발견한 뒤 가장 빠른 시간에 산업에 응용,
시장을 점령한 사례로 남을 것이다. 현재 IBM은 연간 20억달러 규모의
하드디스크 드라이브 헤드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나노 기술은 자동차와 전투기에서도 찾을 수 있다. 시멘트·자갈·모래를
물과 잘 배합하면 단단한 콘크리트가 만들어지 듯, 플라스틱과
세라믹(도자기 자료)을 나노미터 크기의 가루로 만들어 잘 섞어 놓으면
강철보다 단단한 나노 복합소재가 탄생한다.

이 나노 복합소재는 기존의 금속 합금보다 충격에 10배 이상 강하지만
무게는 3분의1에 불과하다. 자동차 메이커들은 가볍고 튼튼한 나노
복합소재를 이용해 연료 탱크나 범퍼 등을 시험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나노미터 크기의 가루를 자동차 표면에 입히면 페인트가
균일하게 칠해져 잘 벗겨지지 않으므로 자동차 도장(塗裝) 작업에 나노
기술이 응용되기도 한다.

항공기나 선박을 위한 나노 복합소재의 개발도 한창이다. 미국의 스텔스
전투기는 특수한 나노 물질을 발라 전자파를 흡수함으로써 적의 레이더에
걸리지 않기 때문에 '안보이는 전투기'란 별명이 붙었다.

나노 기술은 이제 과학이 아니라 생활이 됐다. 나노 기술을 이용한
신제품들은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개발 경쟁이
뜨겁다. 다행인 것은 우리나라에서도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개발된 나노 기술이 세계인들의
필수품에 적용되는 날을 기대한다.


( 대표집필=임지순·서울대 물리학과 교수, 반도체 및 탄노 나노튜브
이론 전공)

( 신승구 포항공대 화학과 교수, 질량분석 및 반도체 나노 양자점
분광학 실험 전공)
( 장이섭 태평양화장품 기술연구원, 피부과학연구소 소장, 생화학 물질
및 나노 전달체 개발 전공)